<지데일리 손정우기자> 단순히 시중에서 만들어진 음식(패스트 푸드)을 피하고, 직접 요리한 음식(슬로 푸드)만을 먹는 것이 건강에 좋을까.  


한 주부가 있다. 그는 패스트푸드가 몸에 해롭다기에 손수 장아찌를 담그고 멸치 국물을 우려내고 콩을 불려 갈아내어 밥상을 차렸다고 한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 한 일이었지만, 어느날 ‘유전자 조작 콩’과 관련한 신문기사를 보고 이내 낙담했다고 한다. 


<슬로 푸드 슬로 라이프> 김종덕 지음, 한문화 펴냄.


패스트푸드가 해로우니 된장국을 끓여 먹으면 슬로푸드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는 말이다. 그 된장 역시 ‘빠르고 편리한’ 것을 목표로 한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무늬만’ 슬로 푸드인 패스트푸드이고, 설령 자기가 집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콩을 사다 장을 담근다 해도 그 콩 역시 ‘빨리, 먹기 좋게 성장시키기 위해’ 인간의 편의에 맞게 조작되거나 개량된 품종일 가능성이 크니 패스트푸드를 면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는 얘기다.


패스트푸드는 이미 우리의 운명이 돼버린 것일까. 이제 그 주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슬로 푸드 슬로 라이프>는 이 물음에 대해 대답하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의 일환으로, 관련 단체에서는 ‘2시간 동안 점심 먹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여유로운 식사 시간을 갖는 것도 슬로푸드의 철학을 실천하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한번은 슬로푸드 코리아 홈페이지에 ‘점심시간을 길게 갖자’는 글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반발과 비난이 줄을 이었다. 점심을 2시간 동안이나 먹으면 언제 일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런 여유는 부자들에게나 가능한 사치라는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맨 처음 점심 시간을 1시간으로 정한 이는 누구인가?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워 한 손에는 햄버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사람이 누구인가?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재촉해서 밥을 먹고 후다닥 올라와 곧바로 책상에 앉아 서류를 뒤적거리는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보면 점심을 1시간 동안 먹느냐 2시간 동안 먹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문제이자 문화의 문제이다. 먹거리의 이력서란 지금의 원산지 표시보다 더 진전된 방법으로, 생산 과정과 수송 및 유통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이렇게 세세히 기록해 놓으면 먹거리에 대한 정보가 투명해진다. 또한 생산자가 노출되므로 생산에 더 신경을 쓰게 되고, 소비자는 먹거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 먹거리에 이력서를 붙이는 것은 먹거리의 선순환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책은 ‘슬로 푸드’에 대해 연구하고 활동해 온 지은이 김종덕이 문화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우리 사회 특유의 ‘빨리 빨리’ 병을 알리며, ‘우리가 왜 그렇게 됐는지’ 반성할 것을 촉구한다. 나아가 우리의 생활이 왜 ‘슬로 푸드’ 식탁에서 시작돼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 1989년 11월 9일 파리에서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 서명한 ‘슬로푸드 파리 선언’ 전문.


<슬로푸드 선언문>


산업 문명의 이름 아래 전개된 우리의 세기에 처음으로 기계의 발명이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 기계는 우리 생활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되었으며, 우리 습관을 망가뜨리며 우리 가정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우리로 하여금 패스트푸드를 먹도록 하는 빠른 생활, 즉 ‘패스프 라이프’ 라는 음흉한 바이러스에 굴복되어 가고 있습니다.


호모사피엔스라는 이름에 상응하기 위해서, 인류는 이제 종이 소멸되는 위험에 처하기 전에 속도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보편적인 어리석음인 빠른 생활에 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물질적인 추구를 자제하는 것입니다. 속도와 효율성에 도취한 흐름에 전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느리고 오래가는 기쁨과 즐거움을 적절하게 누려야 합니다.


우리의 방어는 슬로푸드 식탁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역 요리의 맛과 향을 다시 발견해야 하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낮추는 패스트푸드를 추방해야 합니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이름으로, 빠른 생활이 우리의 존재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고, 우리의 환경과 자연 경관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금 유일하면서도 진정한, 용기 있는 해답은 ‘슬로푸드’입니다.


진정한 문화는 미각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미각을 발전시키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데는 경험과 지식 그리고 국제적인 교환 프로젝트가 필요합니다. 슬로푸드는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합니다. 슬로푸드의 상징은 작은 달팽이이며, 슬로푸드운동은 국제적으로 나아가기 위해 능력 있는 지지자들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