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일본 나고야에서 폐회된 제10차 ‘생물 다양성 협약(CBD) 당사국 총회’에서 생물 다양성 보존과 관련해 역사적인 국제 합의가 이뤄졌다. ‘유전 자원 접근 및 이익 공유에 관한 나고야 의정서’가 채택된 것이다.

사진_바이오필리아ㅣ에드워드 윌슨 지음ㅣ안소연 옮김ㅣ사이언스북스 펴냄.jpg 1992년 생물 다양성 협약 체결 이후 18년 만에 체결된 나고야 의정서는 생물자원을 개발할 경우 원산지 국가와 이익을 나누도록 함으로써, 지금까지 일부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의 독무대였던 생물자원 개발에 세계 각국이 합의 가능한 ‘룰(Rule)’을 도입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재한 자원인 생물 다양성의 보전과 개발을 위한 진정한 진전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생물 다양성의 보전과 개발을 위한 과학적, 철학적, 실천적 논의는 아직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생물 다양성이 돈 몇 푼이 된다는 경제 지상주의적 논의나 환경 보존을 위해서는 개발을 포기해야 한다는 근본주의적 주장의 양극단 사이에서 생물 다양성 논의가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우리나라는 나고야 의정서 이후의 세계 환경 질서에 특히 취약한 게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이 지은 <바이오필리아>는 생물 다양성의 보호와 개발에 대한 논의를 한층 더 깊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주고 있다.

 

생명 사랑, 생명 호성, 호생성 등으로 해석되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는 ‘생명 사랑’으로 통일돼 있다. 지은이가 제안하는 가설적 개념으로 ‘생명과 생명과 유사한 과정에 가치를 두는 타고난 경향’을 가리킨다. 지은이는 인간의 본능이나 본성 속에 이 경향이 내장돼 있으며, 우리가 하는 선택과 행동에 무의식적으로 강하게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어린이들이 개와 고양이 등 살아 있는 것들을 보고 가지게 되는 호감, 관심, 자연스러운 호기심, 주말이면 수만 명의 어른들이 몰려드는 산과 공원 같은 적절한 자연 환경 속에서 느끼는 안도감과 편안함, 자연물이 결여된 인공 환경에서 발생하는 아토피와 정서 장애 등 수 많은 이상 반응에 대해 지은이는 바이오필리아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는 진화 생물학자와 심리학자 그리고 인지 과학자들이 손을 잡으면 인간 본성에 내재돼 있는 바이오필리아 경향을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입증해 낼 수 있을 것이며, 이 바이오필리아 경향에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사랑, 환경 보전의 윤리를 재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바이필리아 가설이 그저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장차 뼈와 살을 가지고 생물 다양성 보존과 개발의 근간이 될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개념임을 일깨워준다.

바이오필리아 경향, 인간이 가진 생명 사랑의 본능은 수리남의 베른하르츠도르프나 브라질의 아마존 분지의 열대 우림 속에서뿐만 아니라, 현대 도시 속에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지은이는 이 증거들을 현대 과학과 예술 작품 속에서 찾아나간다. 특히 뱀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와 뱀을 모티프로 한 수많은 신화와 전설과 예술 작품을 사례로 들며 바이오필리아 경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한다.


지은이는 또한 서식지 선택, 즉 생물이 서식지를 선택할 때 보여 주는 어떤 경향성에서 바이오필리아의 존재를 입증해 낸다. 세균에서 식물은 물론이고 고등 동물까지 모든 생물들이 적절한 서식지를 선택하지 못하면 생존에 실패하고 만다. 때문에 자연 선택은 생물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적합한 서식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나 적절한 서식지를 선호하는 경향을 심어 주게 된다. 지은이는 이에 근거해 인류 역시 본능적으로 선호하는 서식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지은이의 바이오필리아 개념은 단순하게 인간의 심리적 기제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 바이오필리아 개념을 자연 과학과 인문․사회 과학을 연결하는 고리로, 그리고 환경 보존주의, 생물 다양성 보존과 개발을 위한 윤리의 기초로 발전시킨다.


지은이는 생명을 둘러싼 자연 과학자와 인문학자의 논의가 유전자 조작이나 인공 장기 개발 문제 등 피상적 주제를 논의하는 수준에 머물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는 생명이라는 논의 주제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 인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른 논의로, 심지어는 종교를 대체하는 논의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인류라는 종이 침팬지는 물론이고 저 미세한 세균과 유전자적으로 극도로 가까운 친척이라는 사실과 인류가 자연과 함께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자연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를 한데 아우를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어떻게 인간 정신의 보호와 계발에 도움이 되는지, 자연을 세밀하게 분해하고 해부하고 분석함으로써 자연이 두르고 있던 신비한 아우라를 해체하는 과학이 어떻게 자연과 생명에 대한 진정한 애정과 관심을 부활시킬 수 있는지를 자연 과학자와 인문학자,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모여 논의하지 않는 한 생명 보전의 담론은 한 단계 더 성숙하기는 힘들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러나 “지식이 늘어나면 윤리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우리가 무엇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할지,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저 감성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분명하게 이해하게 될 때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됨을 역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