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엔 힘이 있다. 오늘날의 경제를 이해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해 한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묘안이 담겨 있다.


사진_경제학 세계명저 30선ㅣ마쓰바라 류이치로 지음ㅣ최선임 옮김ㅣ지식영행 펴냄.jpg 애덤 스미스, 칼 마르크스, 존 케인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칼 폴라니를 거쳐 피터 드러커, 장 보드리야르, 아마르티아 센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각 시대마다 경제 문제를 직시함으로써 당대의 경제현상을 파악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그들이 지은 경제학 고전에 오롯이 담겨 있다.


<경제학 세계명저 30선>은 한 학파의 학설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각 고전이 담고 있는 사상을 정리하고 있다.


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의 관찰과 사색을 바탕으로 현재를 지배하는 생각에 다른 논리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논의가 담긴 지평 그 자체가 다르므로, 먼저 그것을 이해해야만 반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점 지향이 강한 탓일까? 경제학에서는 너무 많은 학자가 오해한 채로 반론을 시작한다. ‘경제학의 진보’라고들 말하지만 학자들의 반론은 대부분 다른 학설을 호해하여 배제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학파의 학설을 체계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자신의 학파와 전혀 다른 발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고전을 읽는 매력이다.

이렇듯 존 밀은 모든 일을 확실히 끝내지 않았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파멸과 순화를 주장한 마르크스주의와 신고전파의 ‘극단’ 이 끊임없이 경제성장을 지향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하면, 정체를 즐기자는 그의 생각이야말로 현대사회에서 재조명되어야 하지 않을까?

많은 사회주의자가 노동자의 빈곤의 원인을 자본의 사유화와 임금 노동이라고 판단하고, 자본을 공유하고 임금 노동을 폐지해 ‘결과의 평등’ 을 주장했다. 그러나 발라는 자본축적, 인구증가와 함께 상승하는 것은 토지 대금과 토지 가격뿐이며, 자유방임에 따른 착취로 번영하는 것은 지주 계급뿐이라고 간주하고 프루동, 생시몽과 대립했다.

케인스에게 있어 경제는 실물이 교환되는 네트워크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불확실함 속에서 상품이 반드시 팔린다고 할 수 없고, 설비투자로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할 수 없다. 장래가 낙관적일 때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고, 사람은 화폐를 사용하며, 이로써 수요가 확대된다.



지은이 마쓰바라 류이치로는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공화주의와 상업주의를 잇는 동감’을, <국부론>은 ‘자연스러운 시장 활동을 부르는 풍요로움’을,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화폐와 노동의 신화에 대한 해석’을, 존 케인스의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은  ‘화폐경제를 움직이는 확신과 불안’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