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데일리 한주연기자> “어떤 지적 노동보다, 어떤 사무직 일보다 오토바이 수리가 훨씬 지적으로 풍요로운 일이다.”


정치철학박사이자 워싱턴 싱크탱크 소장. ‘지식인’이란 명예와 고액 연봉, 성공을 보장하는 이 자리를 박차고 나와 오토바이 수리공이 된 사람이 여기 있다. <모터사이클 필로소피>는 오토바이 수리공이 된 철학자 매튜 크로포드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의 가치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사물을 보는 것이 늘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다. 심지어 우리가 전문으로 다루는 비교적 초기에 나온 구형 오토바이만 해도 진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변수가 너무 많다. 또 어떤 증상은 원인이 너무 불분명하기 때문에 명쾌한 분석적 추론에 실패하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오직 경험에서만 우러나오는 판단이다. 규칙보다 직감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나는 싱크탱크에 있을 때보다 오토바이 정비소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매튜 크로포드 지음, 정희은 옮김, 이음 펴냄.


오늘날 기업이 상품 대신 브랜드 이미지를 생산하고 학교도 그에 맞춰 학생을 교육하면서, 현대인은 “모든 걸 다 아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돼가고 있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손으로 하는 일의 가치’를 되살리는 게 이 기형적인 상황을 치유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사무직 일의 ‘공허함’과 다르게 기계 수리, 목공, 농사 같은 손일은 일하는 사람과 세상을 연결시키고, 그 세계의 일부를 책임지고 있다는 감각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무한 경쟁사회로 치닫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는 너무 ‘한가한’ 주장 아닐까? 지은이는 손일이 경쟁력 면에서도 지식노동을 훌쩍 앞서갈 거라고 이야기한다. 


세계경제체제가 발달하고 인터넷이 널리 퍼지면서, 공산품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은 해외로 이전되고 사무직 노동도 해외 위탁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목공, 기계 수리 같은 삶과 밀착된 일은 해외에 맡길 수도, ‘다운로드’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후기산업사회 세계경제를 향해 급격하게 나아가면서, 직업 시장에서는 극단적인 승자-패자 구도가 양산되고 있다. 동시에 한 케이블 프로그램을 통해 수리공에서 가수가 된 청년에게 붙은 ‘인생역전’이란 푯말 뒤편에 자리한 직업 차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야말로 ‘무딘’ 사회이기도 하다. 


지은이가 보여주는 새로운 일의 비전이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며 절실히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일 당신이 학문에 타고난 소질이 있다면, 즉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데 가장 어려운 책들에 끌리며 그 책들을 읽는 데 선뜻 4년을 바칠 수 있다면, 대학에 가라.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4년을 더 교실에 앉아서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당신을 소름끼치게 만든다면, 나는 이렇게 충고한다. 단순히 남부럽잖은 삶을 살기 위해 마지못해 대학 가거나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할 필요는 없다. 어쩌다 대학에 간다 하더라도 방학 때마다 기술을 배워둬라. 물론 이런 충고에 귀 기울이다보면 계속해서 반대 의견에 부딪힐 것이다. 이 충고는 다른 사람들이 의무적이고 불가피한 것으로 짜놓은 인생경로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지식노동(사무직) 대 육체노동(손일)”이라는 이분법을 받아들이곤 한다. 지은이는 이것이 근본적인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꼬집는다. 


즉, 칸막이 사무실 일은 무조건 머리를 쓰고, 육체노동은 생각 없이 몸만 쓰면 된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분법을 자기도 모르게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손을 써서 일하는 순간, 우리는 이 세상과 훨씬 풍부하고 지적인 교류를 시작한다. 지은이의 전문 분야인 오토바이 수리를 통해 이를 살펴보자. 


우선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소리, 냄새, 감촉’의 미세한 차이들을 구분해낼 줄 알아야 한다. 이는 ‘직감’의 형태로 주어지지만, 이 직감을 갖추기 위해선 ‘오랜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다. 이는 또 세계에 대한 지적 탐구에서 나온다. 지은이는 나아가 이런 육체노동과 세계의 만남이 자연과학의 탄생을 이끌었다고 말한다.


사회적으로는 ‘역사적’ 지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머릿속 경험의 자료실부터 오토바이 애호가・골동품기계 수집가・수리공 모임의 집단적인 기억에 이르는 다양한 정보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 정보가 쌓이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이루어지면서 기억의 아카이브를 형성하게 된다.


이처럼 ‘지식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손일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사무직 노동자들은 세상이나 사람들과 점점 단절돼가고 있다. 지은이는 ‘우리가 해가 지날수록 멍청해지는’ 이유가 이처럼 세상과 맞닿은 생생한 앎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책은 세상과 분리된 지식을 삶 속에서 다시 발견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지은이는 자신이 어릴 적 속했던 공동체에서의 경험, 전기기사로 일하던 시절의 경험, 차를 거칠게 몰고 다니던 날라리 시절, 이른바 ‘지식노동자’로 일하면서 느낀 염증, 그리고 한 사람의 오토바이 수리공으로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삶과 맞닿은 진정한 지식의 참모습을 발견한다. 


이는 아이가 세상 속에 뛰어들어 지식인이자 생활인으로서 성장해가는 모험담인 것이다. 그리고 그 모험 끝에 그는 앎과 삶이 조화를 이루는 길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