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다른 색으로 옷을 바꿔 입는 산과 한여름 무성하게 뒤엉켜 정글을 이루는 수풀, 단풍으로 물들면서 익어가는 숲,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칡덩굴, 켜켜이 쌓인 낙엽들. 이런 자연의 형태는 자연을 노래한 시와 산문을 만나 화음을 이룬다.


사진_나무가 되고 싶은 책 책이 되고 싶은 나무ㅣ강진숙 지음ㅣ글을읽다 펴냄.jpg <나무가 되고 싶은 책 책이 되고 싶은 나무>는 지은이 강진숙이 독일 유학시절부터 지금까지 북 아트를 하면서 얻은 다양한 경험과 지금까지 만들어온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산문과 사진으로 풀어낸 책이다.


그렇다고 종이를 반품할 수도 없고 어렵사리 책으로 완성은 했지만 너무나 어렵게 완성된 책이라 공연히 이 책에 눈을 흘기게 된다. 그랬던 책인데 이 작품이 내가 낸 첫 책의 표지에 실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책도 우리네 인생 같아서 그 책이 어디에 어떻게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가 보다. 이 책을 만들며 어떤 고생을 했는지 알 리 만무한데 과연 이 책의 종이를 두고 아름답다는 이가 종종 있는 걸 보면 이 종이의 선택은 옳았던 것일까?



지은이는 그동안 책과 상자와 나무와 풀과 숲과 같은 주제에 집요하게 매달리며 북 아트를 해왔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그의 책은 사각의 상자와 산천초목에서 빌려온 형상들이 많다.


지은이는 책에서 독일 유학시절 경험한 독일의 스승과 학생, 학교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일 학생들은 실기 담당자에서 공방의 전문가와 교수까지 단계마다 여러 스승들의 자상한 지도를 받으면서 훌륭한 시설에서 맘껏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아무런 장비도 없이 모든 과정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때문에 독일 학생들은 묻고 또 묻고 하면서 ‘왜’ 작업을 하는지 궁극적인 질문을 하는데 반해 우리나라 학생들은 작업을 왜 하는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막연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칼로 그림을 그린다. 사실 칼로 그림을 그리는 건 내 전공이 아닌데 칼로만 작업하는 전문가도 아닌데 왜 이렇게 하기로 계획을 잡았을까 하면서도 연필로 그림을 그리듯, 그려진 선 따라 샤삭 칼로 그림을 오려낸다. 아슬아슬 피해가기도, 스르륵 미끄러져가듯 유연하게 칼날이 나가기도 하면서 정신을 모아 그림을 따라 칼을 움직인다. 이런저런 생각도 함께 모아서 손가락이 찌릿하기도 하지만 지나온 길 돌아가지 않듯 달리는 칼의 길은 멈추지 않는다.



지은이는 또 스승 요흔을 추억한다. 실기를 지도했던 요흔은 자신의 작업에 손을 놓지 않으면서도 학생들의 일이라면 언제나 기꺼이 남다른 상상력으로 이끌어줬던 진정한 스승이었다.


지은이는 이와 함께 유학시절 자신이 만든 책을 들고 독일의 여러 도서관을 찾아 작품을 알려서 도서관에 작품이 소장되는 행운도 얻고 북 아트 페어에 나가 작품을 팔았던 기억도 떠올린다. 전통이 남달랐던 라이프치히의 독일도서관과 헤어쪽 아우구스트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도 전한다.


유학시절 만들었던 지은이의 작품은 판화기법을 이용해 사각의 책 형태를 하고 있는데 반해 귀국 후의 작품은 형태와 색감이 제각각이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독일에선 판화시설이 갖춰진 작업실에서 맘껏 작업을 할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여건에서는 판화작업이 어려워 저절로 손작업에 의존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