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중국의 명감독 장이머우가 연출을 맡은 베이징 장애인 올림픽 폐막식의 하이라이트는 중국장애인예술단의 공연이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극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공연에 관객들은 잠시 숨 쉬기를 잊었다. 그 천상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진실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다큐멘터리 감독 김해영이 500여 일의 밀착 취재에 뛰어들었다.


사진_그리고 그들은 무대에 올랐다ㅣ김해영 지음ㅣ한국방송출판 펴냄.jpg <샹그릴라를 찾아서> <록키~안데스 아메리카 대탐험> <남극점을 가다> 등 오지와 극지에서 인간 냄새 물씬한 이야기를 담아온 김해영 PD은 EBS 다큐멘터리<천상의 춤, 기적의 무대 천수관음>을 통해 장애에 대한 편견을 무색하게 하는 단원들의 아름답고 장렬한 삶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이 다큐멘터리는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시각․청각․지체장애인으로 이뤄진 중국장애인예술단원들이 선보이는 금빛 찬란한 무대 뒤편엔 더 깊고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가 펼쳐졌다.


김해영 PD는 2008년 봄, 올림픽 준비에 한창인 베이징을 찾았다가 우연히 중국장애인예술단의 ‘마이드림-천수관음’ 공연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개폐막식 공연을 맡아 보안이 더 철저해진 장애인예술단의 촬영 허가를 얻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결국 단원들의 무대 뒤편의 삶에 동참할 수 있었고, 1년 반의 동고동락 끝에 다큐멘터리를 세상에 선보였다.


1987년 중국의 장애인 청소년 서른 명이 장애인예술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13년 동안 순수 아마추어 동아리 활동을 해나가던 그들은 ‘무용계의 기인’으로 불리는 중국의 대표적 무용예술가 장지강을 연출자로 맞아들이며 새로운 변신을 모색한다. 2000년 여름, 열두 명의 여성 청각장애인 단원들이 미국에서 ‘천수관음 - 나의 꿈’을 선보였다. 장지강은 작품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신에게 선한 마음이 있어 그 속에 사랑이 깃든다면, 두 팔을 벌려 다른 이들을 도와줄 수 있다. 당신에게 선한 마음이 있어 그 속에 사랑을 간직한다면, 천 개의 손이 당신에게 자비의 손길을 뻗을 것이다. 이런 세상이 바로 태평성세이다. 이것은 중국장애인예술단 모두의 꿈이며, 곧 나의 꿈이기도 하다.”


큰 찬사를 받으며 공연을 마친 뒤에도 장지강은 끝없이 ‘천수관음’을 갈고 다듬었다. 열두 명이었던 무용수는 남자 단원까지 추가돼 스물한 명으로 늘어났고, 중국 최고의 작곡가와 조명감독, 패션디자이너, 무대미술가 등 수많은 대가들이 ‘천수관음’에 합세해 신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중국장애인예술단은 중국인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예술단이 되었고, ‘미의 사자’, ‘세계 6억 장애인들의 사절’, ‘유네스코 평화 예술가’라는 찬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30여명으로 출발한 예술단 식구도 150명을 훌쩍 넘었고, 대표 공연인 천수관음 이외에도 ‘황토지’, ‘새싹친친’, ‘삼차구’ 등 다양한 소공연이 만들어져 마침내 ‘나의 꿈’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공연이 탄생했다. 지금까지 세계 60여 나라에서 430회가 넘는 공연을 치르는 동안 장애인예술단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경이로운 사람들’의 대명사가 됐다.


“안 괴로운가?”, “장애가 힘들지 않은가?”, “제일 많이 울었을 때가 언제인가?” 다큐 제작진이 집요할 정도로 묻고 또 물었지만 황양광은 시종일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젓기만 했다. 김해영 PD는 ‘새싹친친’ 공연의 주역인 양팔이 없는 무용수 황양광을 취재하며 그가 지나칠 정도로 낙천적인 것에 당황했다. 극 구성을 지닌 다큐멘터리 영화를 구상했던 만큼 큰 장애를 지닌 이에게서 눈물과 한과 절망의 모습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믿었던’ 그에게서 오히려 큰 웃음과 유머, 농담과 희망밖에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이러다간 눈물도 한숨도 하나 없는 ‘즐거운 장애인 다큐’가 될 것 같은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회상한다.


“황양광 씨가 왜 자꾸 자기 그림을 보여주려 하는지 아세요?”

“그러게, 왜 그런 거지?”

“그림을 팔아야 하니까요.”

나는 동작을 뚝 멈추고 말았다.

“화가는 그림을 팔아서 생활하잖아요. 황양광 씨는 자신을 화가로 생각하는 거예요. 장애인화가가 아니라 진짜 일반인 화가 말이에요. 그만큼 정당하고 냉정하게 평가받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저 사람, 무용수잖아? 그것도 아주 유명한…….”

“언제까지 무용수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B팀 무용수들은 자꾸 치고 올라오고, 공연수당 받을 기회도 점점 적어지고 있어요. 저 사람, 넉살좋게 웃고는 있지만 사실은 매순간이 전쟁이에요. 야오족 후손답게 끝없이 생존 방법을 찾는 중이죠. 게다가 황양광 씨한테 그림이란 플랜 B입니다.”

“플랜 B?”

나는 돈을 찾아 다시 자전거에 오르는 황양광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또 씩 웃어보이고는 신나게 자전거를 몰기 시작했다. 스텝들은 또 다시 분주하게 그를 뒤쫓았다.



<그리고 그들은 무대에 올랐다>는 다큐멘터리 <천상의 춤, 기적의 무대 천수관음>을 엮은 것으로, 다큐멘터리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에피소드와 후일담도 사진과 함께 실었다. 예술단의 주역인 타이리화를 비롯해 양 팔이 없는 춤꾼 황양광, 베이징 장애인 올림픽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청각 장애 소녀 왕이메이 등 동정의 대상이길 거부하며 치열한 예술인이자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단원들, 운명을 바꾼 아름다운 승리자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