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12월 7일 새벽, 태안의 청정해역에 1만 500톤의 검은 기름이 쏟아졌다. 1995년 씨프린스호 사고 당시 유출량의 두 배에 달하는 데다 지난 10년간 발생한 크고 작은 기름 유출 사고 유출량을 합한 것보다 많은 양의 기름이었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라는 이 대규모 참사는 삼성이 바다에서의 안전수칙만 준수했다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사진_태안은 살아 있다ㅣ노진철 박진섭 위평량 이재은 박동균 지음ㅣ동녘 펴냄.jpg 사고 책임자인 삼성은 검찰 수사와 기소과정을 지켜보며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사고 조사가 끝나고 항해일지 조작까지 탄로난 시점에서야 일간지에 사과 광고를 통해 사고 이유가 불가항력적인 천재였던 것처럼 발표했다. 또 현대오일뱅크의 기름을 운송하던 사고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는 사고 위험이 높아 2011년부터는 운항을 금지하도록 돼 있는 단일 선체 유조선이었다. 기름 유출 사고 당시 정부의 초기 대응에도 허점이 많았다. 정부는 사고 당시의 기상 악화 때문에 방제 작업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항변했지만 이후 방제 물자의 비축과 관리, 장비의 부족으로 인해 방제 작업이 늦어졌고, 초기의 현장 지휘 체계 역시 혼선이 있어 그에 따른 여파가 더욱 심각해졌다.


이제 어민들은 갯벌과 바다의 주인에서 온통 기름 방제 작업과 공공근로에 얽매인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 사고 이후 주민이 생계를 의지해온 것은 긴급 생계지원금, 방제 작업 비용과 굴살 철거비용, 공공근로비 등이었다. 앞으로 주민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줄 자원은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이 지불할 피해보상금과 삼성중공업이 지불할 배상금이 될 전망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자원의 총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제한된 자원의 분배 과정에서 이미 주민들은 심각한 갈등을 경험했고 앞으로 또 다른 갈등을 경험해야 한다. 게다가 사고 이후 어민의 주 소득원이었던 굴 양식, 어선어업 등 생업활동이 아직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주민에게 한정된 자원의 배분에 얽매이도록 강제한다. 어선어업과 굴 양식업, 치어 양축업을 하던 어민들은 어업활동의 중단으로 수협, 농협 등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생활했지만, 늘어나는 이자와 독촉장 때문에 웃음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겨울 한철 굴 까기로 수입을 올리던 어민들도 피해를 입지 않은 다른 지역에서 굴을 들여다가 까는 날품팔이를 하고 있다. 저소득층, 노년층, 장애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들은 지난 겨울에도 지겹게 기름을 봤건만 정작 언 몸을 녹일 기름이 없어서 추위 속에서 떨었다. 생활이 어려워져도 우선 생계비 중 식비와 주거비를 줄이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난방비를 줄여 추위 속에서 떠는 선택을 하게 된다. 고남면사무소에서는 지난 1월 ‘사랑의 쌀독’을 설치해 이웃의 자발적인 도움으로 생계를 위협받는 이들을 지원하는 고육지책을 내놓았다. 이래저래 지난 겨울은 태안 주민에게 너무 혹독한 겨울이었다.



3년의 세월이 흘렀다. 3년 전 당시 태안의 바다는 절망 그 자체였다. 밀려드는 파도에도 양식장에도 갯벌과 모래사장에도 어느 곳을 가도 기름 범벅이었고, 기름 냄새로 호흡이 곤란할 지경이었다. 양식업자, 어선어업인, 식당업자, 숙박업자, 맨손어업인들은 기름 유출로 인해 당장의 생활이 위협받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나 살아 있는 사람이나 그 마음은 다를 바가 없었다.


무려 6000억 원 이상의 피해규모에도 불구하고 사고 가해자인 삼성중공업은 법원에 손해보상을 50억 원으로 제한해 달라고 신청한 상태였고, 공범자인 현대오일뱅크에는 무죄가 선고된 상태였다. 우리나라가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에 가입돼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보상에 적극적이어야 할 이들은 현지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대신 자신들이 파견한 집단을 통해 터무니없는 보상금을 제시하고 있었다.


정부는 2007년 12월13일 충청남도에 생계비 300억 원을 지원했지만 이 자금이 시·군으로 전달된 것은 2008년 1월21일께였다. 더욱이 읍·면·리 단위에서 다시 심의위원회의 결정을 거쳐 주민에게 전달된 것은 1월 말에서 2월 초순이다. 중앙정부에서 자금이 전달되고 나서도 약 40일 동안이나 생계비가 지급되지 못한 것이다. 중앙정부, 지자체, 언론, 시민사회가 기름 제거와 자원봉사 활동 지원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동안 주민들은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었다. 긴급 생계비 지원금과 국민들의 성금이 모였지만 배분 기준이 없는 지급은 마을공동체에 갈등을 몰고 왔다.


3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태안에는 아직까지 풀지 못한 숙제들이 산재해 있다. 지난 2월 말까지 보상 청구된 주민들의 피해 건수 7만2402건 중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의 사정이 완료돼 보상금이 지급된 것은 0.9퍼센트인 653건에 불과하다. 급기야 지난 2월26일에는 전피해민연합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성정대 씨가 자살로써 생을 마감했다. 성 씨는 양식업 실패에 대한 절망감에다 2년 동안 피해의 1퍼센트도 보상을 받지 못한 지지부진한 성과에 대한 자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을 택했던 것이다. 그의 죽음은 2년 전 피해 어민 3명이 자살했던 고통스런 시절에서 무엇 하나 뚜렷하게 나아진 것이 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자연은 놀라운 생명력으로 다시 푸른 바다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모든 주민들의 삶이 기름 재앙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지는 못했다. 진정한 생태계의 복원은 인간 공동체가 함께 복원됐을 때 가능한 것. 태안의 파괴된 삶이 복원될 때 비로소 생태계의 치유와 다른 문제들이 함께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태안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330여 가구에 630여 명이 살고 있는 마을에 사고 이후 15명의 암환자가 발생했다. 피해 주민들은 “암 환자 대부분이 당시 방제용 마스크가 없어 헝겊으로 된 일반 마스크에 손수건 한 장을 덧대고 장기간 방제 작업을 했고, 특히 고압 세척기를 이용한 방제 작업에 참여했다”며 기름 유출 사고와의 연관성을 제기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제 보상금을 문제를 떠나 자신과 가족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과 싸우고 있다. 방제 작업을 하면서 유해물질에 노출된 것이 과연 암 발병의 직접적인 원인인지의 여부는 쉽게 가리기 어렵지만, 지금부터라도 자료를 충실히 보존하고 연구해 다음 피해에는 대비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그 산 증인인 주민들에게 우리는 최선을 다해 관심과 지원을 쏟아야 함을 잊어선 안되는 것이다.


<태안은 살아 있다>는 2007년 사고 당시 구성된 재난관리 전문가 조직이 사고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연구하기 시작한 데서 출발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구자들이 애정을 가지고 태안을 지속적으로 방문하며 연구한 자료를 모은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의 총체적 보고서다.


태안의 가장 큰 문제는 생활에 대한 만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기름 재앙 앞에 할 말을 잃었기 때문이다. 억울함만 가득할 뿐 달리 할 말이 없는 상황에서 소득이 3분의 1 이하, 혹은 10분의 1 이하의 참혹한 수준으로 떨어져 버렸다. 이런 현실 앞에서 삶의 질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3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시점에서 본 태안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들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라도 자연은 복원력, 치유력, 그리고 생명력의 힘으로 기름 재앙 이전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태안에는 과거의 되새기고 싶지 않은 슬픈 추억과 아픔만이 가득한 상처받은 주민들이 남겨져 있다. 진정한 생태계의 복원은 인간 공동체의 복원과 동시에 이루어질 때 가능한 것이다. 태안의 파괴된 삶이 복원될 때 비로소 생태계의 치유와 다른 문제들이 함께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태안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책은 우선 거대한 환경 재앙이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떻게 사회적 재난으로 발전하는지를 사회학자, 생태학자, 경제학자의 눈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어 행정학자들이 모여 초기 재난관리의 실패를 반성하고, 소방행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또 사회적 재난이 번지면서 마을공동체를 위협하는 갈등 상황을 분석하고 해결 방향을 제시한다.


책은 주민 인터뷰와 현수막으로 보는 사고일지를 통해 철저하게 주민의 시각에서 목소리를 담고 있다. 사고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태안은 예전의 아름다움과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지만, 주민생활의 완전한 복구는 미진하기만 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