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나란히 입원해 있는 형과 자신 중 형만 좋은 병실로 옮겨주고 떠난 아버지, 남편의 출장에 따라가기 위해 어린 딸을 기숙사에 홀로 내팽개쳤던 어머니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겉으로는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가정생활도 원만해 보이는 성숙한 어른이 가끔씩 불쑥 머리를 내미는 어린 시절의 어떤 기억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면 그는 아직 진정한 성인이 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깊은 내면에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를 품고 살고 있으면서도 이를 인지하고 있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상처를 헤집어 봐야 좋을 것 없다는 회피 심리와 자신의 부모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 싫다는 방어기제가 작용해 자신에게 고통과 아픔을 준 부모와 어두웠던 어린 시절을 미화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마릴린 먼로, 오프라 윈프리, 엘튼 존, 마이클 잭슨, 스티브 마틴, 영국의 전 수상 대처의 딸인 캐롤 대처, 로미 슈나이더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인 이 유명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어린 시절이 남달리 불우했다는 것. 하지만 그들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의 힘을 길렀으며 마침내 선망 받는 분야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심리 상담사 겸 부부치료 전문가로 활동하는 심리학자인 우르술라 누버는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에서 부모의 죽음·이혼·별거·다툼·학대로 인한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낸 유명 인사들의 실화와 천여 건에 달하는 일반인 대상의 풍부한 내담사례, 그리고 어린 시절을 다룬 전문서의 고증을 통해 어린 시절의 경험과 성인이 된 후의 삶 사이의 관계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던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이클 잭슨이 성형중독과 아동학대 혐의에 시달리다 급작스런 죽음을 맞게 된 것, 케네디 전 대통령을 비롯한 무수한 남성과 염문을 뿌렸지만 전 남편 아서 밀러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가엾은 여자’로 표현됐던 세기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은 유년기의 상처가 성인이 돼서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다는 가설을 입증하는 사례로 여겨져 왔다.

그렇지만 오프라 윈프리, 캐롤 대처, 엘턴 존 등 그 반대의 사례와 풍부한 상담 사례를 통한 심리학적 분석을 통해 실제로 과거의 기억과 싸우면서 자신의 힘을 기른 사람에게는 그런 상처가 큰 의미가 없으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권한을 스스로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설파한다.


누구나 자신 안에는 아직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또 다른 자아, 즉 ‘어린 아이’가 자리하고 있다. 그것도 한두 살배기 유아와 세 살에서 열한 살까지의 어린 아이, 그리고 10대 청소년기까지의 어린 시절이, 누버의 표현에 따르면 마치 ‘잠자는 사람’처럼 우리의 깊은 내면에 자리 잡고 있다가 특정한 상황이 되면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고개를 들곤 한다는 것이다. 나이든 부모를 위해 헌신적으로 호화로운 칠순 잔치를 준비하다가 부모의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이처럼 울어버린다거나, 능력을 인정받는 직장인이지만 출장을 가야할 때가 되면 아파서 몸져 누워버리거나 하는 행동들은 모두 어린 시절의 상처와 관련이 깊다.


책은 부모 역시 자신이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것을 자녀에게 기대하고 요구하며, 자식보다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식에게 의도하지 않은 고통을 주기도 한다는 사실, 그리고 부모는 자식의 삶의 지배자도 심판자도 아닌 불완전한 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이끈다. 이를 통해 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온 당신이 부모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부모를 용서하고 행복한 진짜 어른이 되는 길을 안내해준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부모의 폭력 학대, 이혼과 별거, 정신질환 등 유명인들의 잘 알려진 극단적이고 극적인 사례들뿐 아니라, 무관심·편애·과잉보호·간섭·권위의식 등 어느 부모와 자녀에게나 한두 개쯤은 해당될 수 있는 매우 현실적이고 디테일한 케이스들이 등장하여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누구나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책은 매번 같은 이유로 연애에 실패한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도 승진에 누락되어서도 불만을 표시하지 못한다면, 또는 사람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심리치료를 받거나, 어린 시절의 자신을 괴롭히던 것들을 용서하거나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로부터 분리할 힘을 기를 것을 강조한다. 부모나 주변인으로부터의 영향이 결정적이던 어린 시절과 달리 자기 삶의 시나리오를 스스로 써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따른 자아형성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우리가 좀 더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