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무엇을 느끼는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여행을 하는 동안 엄청난 일이 있었다고, 나는 정말 많이 배웠고 성장했다고 이야기한다. 이와는 반대로 여행을 마친 후 오히려 담담하고 겸손해지는 사람도 있다.

 

 평범한 영국 청년 롭 릴월. 그는 안정적인 지리 교사라는 일을 그만두고 자전거 여행길에 올랐다. 이국적인 곳에서 국제학교 선생님을 하면 어떨까라는 물음에 친구 앨의 ‘이메일로 이력서를 보내는 것보다 자전거를 타고 국제 학교를 찾아가는 게 더 좋을 방법’일 거라는 대답을 들은 후였다.

 

준비는 조촐했다. 이베이에서 값싼 옷과 장비를 구입했다. 몸을 만들기 위해 퇴근 후에는 동료와 배드민턴을 쳤다. 경험한 최악의 추위는 주말 캠핑 갔을 때의 날씨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여행준비가 그때 끝났다는 이유로 한겨울 시베리아로 출발했다. 오로지 자전거로만 달린 여행. 국경을 넘어갈 때도 배는 이용했지만 비행기는 타지 않았다. 그리고 1년을 계획했지만 3년이나 걸리고 말았다.

 

우선 침낭을 펴고, 즉석국수를 끓이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쓴다. 지금 아주 무섭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로워진 느낌도 든다고 쓴다. 이제는 나 때문에 속도가 느려진다며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이 나만의 속도로 자전거를 탈 수 있다. 사람들로 가득 찬 땅에서 이렇게 철저히 혼자가 되는 것이 묘하게 짜릿하다. 내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 빨리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고향에 도착하려면 오늘 같은 밤을 수백 번이나 더 보내야 할 것이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시베리아의 추위는 이성을 잃게 만들 정도였다. 온몸에 피가 돌지 않는 느낌은 두려움을 넘어 패닉 상태에 빠지게 했다. 그렇다고 몸을 너무 열심히 움직여 땀을 내서도 안 된다. 습기가 얼어붙어 몸이 얇은 얼음으로 뒤덮이면 더 큰일이 나기 때문이다.

 

모험가들의 우정도 시험대에 오른다. 시베리아를 거쳐 일본에 도착했을 때 함께 여행하던 친구와 파경(?)을 맞았다. 서로의 다른 자전거 속도를 맞춘다는 것은, 누구의 탓을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우정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매일 자전거를 탄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끔 지긋지긋하도록 자전거가 싫었지만, 끝내기 위해서라도 자전거를 계속 탈 수밖에 없었다. 파푸아뉴기니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지나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던 것은 어찌 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즐거운 순간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세상에는 ‘생각과 달리’ 타인을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 롭은 가치관과 문화, 종교가 다른 사람들과 만났던 순간들을 가장 소중하게 기록하고 있다. 28개국을 다니는 동안 21개 언어의 인사법을 배웠으며 200여 명이 처음 만난 그에게 잠잘 곳을 허락했다.

 

<자전거로 얼음 위를 걷는 법>은 여행지에 대한 낭만도 없고, 쓸데없이 센티해지는 감상도 없다. 이동 거리, 자전거 타이어가 펑크 난 횟수, 자전거를 고칠 때의 최저 기온 등 극한의 조건에서 지은이 롭이 겪어야 했던 치열한 순간들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가 여행 중 기록한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말다툼한 회수, 먹어치운 즉석 국수의 개수, 기차역/공중화장실에서 잔 날 수, 샤워하지 않고 가장 오래 버틴 기간 등등. 사람이 정작 ‘중요하게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위트 넘치는 기록들이 더 눈길을 끈다.

 

고향에 돌아온 지금은 내가 왜 이곳에 오려고 그토록 애를 썼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실 애당초 내가 왜 이 여행을 시작했는지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여행이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된 것은 확실하지만, 내 마음속 깊숙한 곳의 불만을 휘저어놓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불만 때문에 인생에 온 마음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다지 나쁜 결과는 아닌 것 같았다.


 

지은이는 여행을 하는 도중에 여러 나라에서 자신의 어이없는 모험에 관해 70여 차례 강연을 했다고 한다. 그는 그 강연료를 받아 고급 호텔에서 자는 대신, 그 나라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일에 기부했다. 그리고 영국으로 돌아와 이 특별할 것 없는 여행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것이다.

 

현재 지은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의 요청으로, 지리 교사를 그만두고 전 세계를 다니며 모험가로, 강연자로, 자선사업가로, 그리고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