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0년 광주의 대학살을 겪으며 지난한 민주화 역정을 거쳐 온 우리에게 1989년 6월 4일 일어났던 중국 톈안문(天安門) 광장의 대학살과 중국의 민주화 운동은 단지 이웃 나라의 정치적 사건으로만 치부할 수 없었다. 이는 우리에게 광주의 아픔과 같은 분노와 고통을 안겨줬다.

 국민을 지키라는 군대가 국민을 학살한 이율배반적 사태는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현대사의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이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이야 말로 진정한 민주와 자유를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경우는 미흡하나마 5.18 학살 당사자들에 대한 단죄가 이뤄졌지만, 중국의 경우는 아직도 6.4와 관련된 모든 담론들이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劉曉波)는 민주와 자유를 이념으로 중국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정권을 비판하면서 목숨을 걸고 6.4 사태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의 거대한 권력구조와 맞서 싸우는 류사오보의 지난한 투쟁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무모한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의 불요불굴의 정신으로 말미암아 한 가닥 남은 중국의 민주와 자유, 그리고 인권과 양심의 빛이 새롭게 되살아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민주와 자유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현대 국가의 시민이라면 진보든 보수든 막론하고 응당 류샤오보의 목숨을 건 투쟁에 관심을 기울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민주와 자유라는 이념을 위해 지금 그는 순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근래 오히려 민주와 자유의 퇴행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여러 현상들이 만연하고 있다. 류샤오보 시의 세계 최초 번역 시집인 <내사랑 샤에게>는 우리의 민주와 자유를 다시한번 근본에서 점검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동시에 그의 사상과 문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잘 알려진 대로 류샤오보는 중국의 유명한 반체제 인사다. 그는 1989년 컬럼비아대학 방문학자로 미국에서 연구를 수행하다가 톈안문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급거 귀국했다. 6.4 당시 톈안문 광장 인민영웅기념탑 앞에 장막을 치고 학생들을 성원하며 중국 당국을 향해 단식으로 민주화 개혁을 요구했다.

 

당시 단식 농성에 참가한 류샤오보·저우퉈(周舵)·허우더젠(侯德建)·가오신(高新)을 ‘톈안문 단식 4군자(天安門絶食四君子)’라고 부른다. 그러나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와 류샤오보의 단식 농성은 탱크를 앞세운 중국 당국의 강제 진압에 의해 피의 참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 중국 당국은 6.4 톈안문 사태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당시 시위에 참여했거나 당국의 진압 과정을 직접 목격한 베이징 시민들은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음을 증언해주고 있다.

 

6.4 톈안문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자식과 가족을 잃은 ‘톈안문 어머니(天安門母親)’ 모임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까지 무려 201명의 학생과 시민이 학살당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적수공권의 중국의 인민들이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인민해방군에 의해 참살당한 6.4 톈안문 사태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도덕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사건이었다. 이후 6.4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중국 당국의 박해가 끊임없이 계속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감시ㆍ연금ㆍ투옥을 당했고, 또 상당수 6.4 주도자들은 중국을 탈출해 해외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됐다.

 

그러나 류샤오보는 오히려 해외에서 중국으로 돌아와 톈안문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고, 6.4 피의 참극 이후에도 중국을 떠나지 않고 학살 진상의 규명과 민주화 실현을 위해 지금까지도 고난의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모든 공직을 박탈당했으며, 여러 차례의 가택 연금과 3차례의 체포 구금, 5년여의 감금 생활을 거쳐 지금은 2008년에 공표한 ‘08헌장’ 주도자로 지목돼 1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랴오닝성 한 감옥에서 복역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류샤오보의 투쟁과 문학은 6.4 톈안문 민주화 운동과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이 책에 실린 류샤오보의 시 85수와 ‘08헌장’ㆍ‘나는 적이 없다- 나의 최후 진술’ㆍ‘나의 무죄 변론’ 등의 글은 모두 6.4 투쟁 정신에 입각해 있다. 6.4 투쟁 정신이란 중국의 경제적 개혁ㆍ개방 정책 추진에 걸맞게 정치와 법률 등 사회 모든 부문에서도 민주와 자유의 전면적인 확대를 요구하는 중국 시민의 민의를 가리킨다.

 

그러나 1989년 중국의 6.4 민주화 운동은 중국 당국의 무자비한 무력 진압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채 역사 속으로 잠복하고 말았다. 이후 지금까지도 중국에서는 6.4와 관련된 담론이 엄격하게 금지돼 왔고, 6.4 관련 인사들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 계속되면서, 6.4 참극의 진상 규명이나 복권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류샤오보는 바로 이러한 불의한 현실, 즉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 당국의 인권 무시 정책으로 천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모든 인권 재난과 6.4 참극에 대해 신랄한 비판의 화살을 쏟아 붓고 있다. 특히 비폭력 6.4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강제 진압하며 200 명이 넘는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고도 진상을 왜곡하고 있는 중국 당국에 대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망각에 의해 황량해져가는 무덤

 

이 광장은, 겉보기엔 아주 완벽하게 아름답다

마오타이와 브랜디와 전복 파티에 의해

의식(儀式)과 보고와 3개 대표이론에 의해

세컨드와 정액과 붉은 손톱에 의해

가짜 담배와 가짜 술과 가짜 학위에 의해

경찰차와 철모와 전기 곤봉에 의해

완벽하게 새로워졌다



류샤오보의 인식에 의하면 피의 참극 위에 세워진 중국의 고도 경제 성장은 ‘부패한 자본주의, 죽음에 직면한 공산주의, 몰락한 봉건주의’일 뿐이다. 탱크와 총칼로 학살된 인권의 무덤은 찬란한 경제 발전에 의해 장식되고 있지만, 그 내면에서는 아직도 저승으로 떠나지 못한 6.4 원혼들의 핏빛 아우성이 들끓어 오르고 있다.

 

인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민의 정부가 비무장ㆍ비폭력의 인민을 탱크와 총칼로 학살한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이런 불의와 부도덕을 화려한 현대화로 치장하는 것은 부패한 일당 독재의 끝없는 탐욕을 숨기기 위한 허위와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입장에서 류샤오보는 중국 당국이 1970년대 말부터 추진해온 개혁ㆍ개방 정책이 인간의 권리를 박탈하고 인성을 부식시키고 인간의 존엄을 파괴해온 재난의 과정이었다고 비판하면서, 자유ㆍ평등ㆍ인권이라는 인류 공통의 보편 가치에 바탕을 둔 민주ㆍ공화ㆍ헌정의 현대 정치를 시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6.4 피의 참극에 대한 류샤오보의 분노가 그의 시의 출발점이라면, 그의 아내 류샤(劉霞)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은 그의 시의 모든 것이며 종착점이라고 할 수 있다. 6.4 추모시를 제외하고 그가 쓴 모든 시의 제목에는 아내 류샤에게 바치는 작은 제목이 달려 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류샤오보의 모든 시는 아내 류샤에게 바치는 애정시다.

 

지금, 나는 감옥에 갇혀 있어

그대의 손발을 녹여줄 수 없다

그러나, 그대에 관한 기억은

모두 빙설(氷雪)과 인연을 맺고 있다…


 

시란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 류샤오보의 시에 드러난 분노와 사랑과 갈망에도 불구하고 저 철옹성 같은 중국 당국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 당국은 노벨평화상의 철회를 요구하며 류샤오보와 류샤에 대한 탄압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또한 시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류샤오보와 류샤 부부는 서로 사랑의 시를 주고 받으며 그 온기와 열기로 저 철옹성을 녹이려는 무망(無望)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그 ‘무망(無望)’은 ‘희망 없음’이 아니라 ‘무가지보(無價之寶)’의 ‘무(無)’자처럼 ‘가없는 희망’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진정한 혁명은 ‘사랑’이란 말에 다름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