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0년 미국에서 출간된 <바보들의 결탁>은 ‘걸작 코미디’ ‘대단한 서사 코미디’ ‘지성과 세련된 기교의 고급 코미디’ ‘가장 웃기는 책들 중 하나’와 같은 평가와 함께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이듬해 퓰리처상까지 거머쥐었던 작품이다.

 

사진_ 바보들의 결탁ㅣ존 케네디 툴 지음ㅣ김선형 옮김ㅣ도마뱀출판사 펴냄.jpg 작품이 쓰이고 우여곡절 끝에 출간되기까지 무려 십오 년 동안, 지은이 존 케네디 툴의 원고는 줄줄이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지은이는 컬럼비아 대학 석사 출신으로, 군 복무 주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이 작품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었던 만큼, 출간의 꿈이 계속 좌절되자 급속히 건강을 잃고 차츰 심각한 우울증과 편집증에 빠져들었다. 거기다 아들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지배적인 성격을 가진 어머니와의 끊임없는 불화가 더해져, 그는 끝내 서른둘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들이 죽고 나자 이번엔 어머니 셀마가 아들의 원고를 들고 출판사들의 문을 두드렸지만 다시금 줄줄이 퇴짜를 맞았다. 하지만 불굴의 여인 셀마는 당시 대학 강의를 위해 뉴올리언스에 거주 중이던 미국 남부문학의 대가 워커 퍼시에게까지 찾아가 막무가내로 그 해묵은 원고를 내밀었고, 결국 작품에 감탄한 퍼시의 중재로 이 책은 작가 사후 11년 만에 출간에 이르게 된 것이다.

 

“고아들 자선사업도 끊고 불쌍한 청소부한테 도움의 손길도 안 내미는데, 수수료 챙기느라 아등바등 손님들 등쳐먹는 이 불쌍한 아가씨한테 아량 좀 베푸는 게 어떠냐고요. 옘병!” 존스는 달린이 춤 연습을 하는 동안 새가 무대 위에서 퍼덕거리며 돌아다니는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평생 그보다 더 한심한 공연은 본 적이 없었으니, 달린과 새는 합법적인 사보타주로 손색이 없었다. “여기저기 손 좀 보고 때깔 좋게 광 좀 내고, 한두 박자 비틀어주고 두세 박자 흔들어주고, 아쉬운 데 낄 거 끼고 군더더기 뺄 거 빼면, 쇼는 아주 대박이지, 대박. 이야.”


 

왜 세상 바보들은 천재를 환영하지 않을까? 이 책의 주인공 이그네이셔스는 가르강튀아와 돈키호테, 변태적인 토마스 아퀴나스를 한데 뭉뚱그려놓은, 미국 문학사상 전례가 없는 독특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뚱뚱한 거구에, 기이한 행색에, 게으르고, 거만하고, 호통 치기 일쑤며, 중세 철학을 신봉하고, ‘신학과 기하학’이 부재하는 현대문명에 대해 조롱과 분노를 쏟아내길 서슴지 않는다. 아울러 석사 학위까지 받고서도 하는 일이라곤 방안에 틀어박혀 ‘우리의 세기를 비판하는 장문의 고발장을’ 쓰면서 어머니에게 얹혀사는 서른 살 청년이다.

 

이그네이셔스는 그 자신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자신의 독특한 세계관을 남들은 두려워하고 증오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면에서 지금껏 만년 백수로 살아온 그에게 드디어 돈을 벌러 나가야만 하는 위기가 닥쳤으니, 이 책은 바로 1960년대 초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이그네이셔스가 그 자신이 ‘변태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바로 그 자본주의 체제와 난생 처음 정면 대결함으로써 겪는 불운의 궤적을 좇는다.

 

공장 직원으로, 핫도그 노점상으로, 이그네이셔스는 일하는 곳마다 그만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사회변혁을 획책하고, 그만의 지성과 망상이 빚어내는 기이한 세계 속으로 뉴올리언스의 온갖 인간군상을 빨아들인다. 종국에는 본의 아니게 핵폭탄처럼 터뜨리는 사건을 통해 그간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직소퍼즐처럼 완벽히 짜 맞추는 구심점 노릇을 하게 된다.

 

“그랬나?” 이그네이셔스가 흥미를 보이며 말했다. “당연히 내 행동거지와 몸가짐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겠지. 그래서 날 알아들 보는군. 내가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민권운동을 너무 성급히 포기한 게 아닌가 싶군.” 이그네이셔스는 몹시 기뻐했다. 이제 을씨년스러운 날들은 가고 화창한 날이 오려는 모양이었다. “내가 일종의 순교자가 된 건지도 모르겠는걸.” 그가 끄윽 트림을 했다. “핫도그 하나 들겠나? 난 인종과 종교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정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파라다이스 핫도그는 공공 편익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지.”


 

이그네이셔스는 사회부적응자요 어릿광대에서 영웅이요 구원자가 된 걸까? 유머와 웃음 뒤로는 저릿한 비애감이 스멀거린다. 그가 내지르는 고함과 허세 밑에는 세상 속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머니와 영원히 집 안에 틀어박힌, 세상으로부터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는 부적응자의 그늘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세상 바보들이 아무리 결탁해도 한 천재의 거대한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법. 이그네이셔는 결국 모두를 구하고 탈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