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관한 책들’을 둘러싼 세 가지 통념이 있다.

 

사진_어느 책중독자의 고백ㅣ톰 라비 지음ㅣ김영선 옮김ㅣ현태준 그림ㅣ돌베개 펴냄.jpg 우선 근사하다. 지은이들은 방대한 독서 편력을 자랑하고, 남다른 독서 취향과 독서 체험을 과시한다. 책을 다르게 읽는 감수성과 깊은 통찰력, 유려한 문장을 내세운다. 이들 대부분은 역사적으로 유명하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이며, 어떤 이들은 이미 훌륭한 작가다.

 

미심쩍다. 지은이들은 ‘바른’ 독서법을 알려주겠다며 속독법과 슬로 리딩, 초병렬 독서법 등 다양한 기술들을 판매한다.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해 어려서부터 책을 읽어야 하며, 세상을 지배하는 0.1%의 비밀을 알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고 현혹하기도 한다.

 

아득하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질병’에 걸려 희귀한 책들을 수집하는 책 사냥꾼, 서점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는 전직 서점 직원이자 출판사 외판원, 헌책방 직원과 20년간 편지를 주고받은 가난한 작가, 출판 산업의 황금기에 유명 출판사 편집자로 일했던 사람의 이야기는 분명히 낭만을 자극하지만, 이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은 평범한 애서가가 일상에서 포착한, 책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위에 나온 통념과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를 ‘책중독자’라고 밝히는 지은이 톰 라비는 처절한 자기 고백에서 출발해 주변 책중독자들의 경험과 전설적인 책중독자들의 이야기를 두루 섞어낸다.

 

책방에만 가면 ‘정신줄’을 놓는가? 잠시 시간을 때우기만 할 요량으로 들어갔다가 한참 후 적지 않은 책들을 옆구리에 끼고서야 책방을 나선 적이 있는가? 차곡차곡 쌓여 보기 좋게 진열된 수많은 책들 사이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상하게 마음이 달뜨는가? 그 때문에 기분이 좋은가? 어쩌면, 좋아 죽을 지경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그렇다’이면, 당신의 앞날이 심히 험난할지 모른다. 나는 안다. 내가 그랬으니까. 나는 그 심원한 기쁨을 맛본 적이 있다. 그 힘이 유혹적이어서 포기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안다. 그렇다. 나는 책중독자다.


자기가 뭘 샀는지 기억 못하고, 헌책방에서 양팔 가득 책을 껴안고 나오고, 충분한 검토 없이 책을 사들이고, 사들인 책을 나르려면 외바퀴 손수레가 필요하면서, 정작 자기가 사는 책들을 읽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맹세컨대 무분별한 중독자다. 이들은 책중독자, 다시 말해 책을 사들이는 데 극성인 문제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만족할 줄 모르고 책을 사들이는 바람에 저축해둔 돈을 모두 써버린다. 나? 나는 아직 은행에 통장 잔고가 조금은 남아 있다. 하하! 내가 책중독자일 리 없다. 나는 단지 이따금 책 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전자책이 출판계를 지배하게 되든, 세상 사람들이 일제히 개선될 수 없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든, 또는 가상 책과 실물 책이 혼합된 어떤 책이 마침내 승리를 거두든, 문장이라 불리는 단위로 예술적으로 배열된 글들을 읽는 걸 사랑하고 이들 글을 방대하게 수집하고 방에다 진열해두는 데 열중하는 우리가 그리 많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책을 읽고 사들이리라. 아마도 심히 많이.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 책들을 사랑하리라. 역시 심히 많이. 그게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는 책중독자인 것이다.


 

지은이는 고전과 현대소설,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아우르며 영문학을 편애하는 책중독자답게 문학적 소양을 십분 발휘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음지에 서식하는, 대놓고 책에 탐닉해 가족과 친구, 직장 상사에게 핍박받는 책중독자들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