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무엇일까? 왜 동양과 서양, 원시 미술과 중세 미술, 현대 미술은 그토록 다른 함의를 지니고 있을까? 예술을 읽어 내는 데 왜 철학과 진화론, 기하학이 필요한 걸까?

 

사진_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ㅣ한명식 지음ㅣ청아출판사 펴냄.jpg 예술은 예술가가 표현한 것을 감상자에게 전달하는 일방적인 관상품이 아니다. 역사와 철학, 과학과 같은 학문은 물론 예술 역시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윤택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 본능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지금, 예술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집트의 파라오는 특별하고 신성한 존재였다. (…) 하지만 이런 완전함의 미학은 그리스로 넘어오면서 완전히 뒤바뀐다. 오직 파라오만이 취할 수 있던 경건함과 근엄함의 형태를 인간이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모델만 바뀐 것이 아니라 모델의 외모도 바뀌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의 몸으로 말이다. (…)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 고대 문화에서 신의 존재는 항상 세계의 중심이며 경건함과 완전함, 신비로움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그리스에 와서 신은 한낮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는 그리스 인들의 기질로 설명할 수 있다. 자유분방한 그리스 인들의 태도가 그림의 형식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현대 미술은 심오하기 그지없어 일반 대중에게 ‘공부해야 하는 것’이 됐고, 디자인이나 건축이 아니라 순수 회화나 조소 작품들만이 예술이라는 선입견이 팽배해 있다. 이런 어려운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들은 일반교양서부터 다큐멘터리까지 다양한 수단을 통해 파편화되고 정형화된 ‘작품’ 공부를 한다. 뿐만 아니라 예술을 하는 사람들조차 성과와 치적에 얽매여 정형화되고 관료화된 작업 방식을 고수한다. 관행적인 절차를 따르는 관성적인 작업 행태가 지적인 특성이라고 믿고, 그 안에서 안심하는 이런 풍조는 예술가는 물론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도 예술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예술에는 사물과 존재의 의미가 담겨 있다. 예술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각각의 작품은 왜 그러한 형태로 나타나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당대 사람들에게 중요했는지 알아야 진정한 예술과 인간의 본질을 알 수 있게 된다.

 

루마니아의 조각가 콩스탕탱 브랑쿠시에 따르면 “예술은 단순한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며, 그렇게 하고자 의도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본질 자체가 이미 단순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추상은 자연의 형태를 증류시키고 남은 최종 결정체이며, 그것으로서 형태는 완벽함에 다다른다.


 

<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은 예술 작품을 이루는 근본인 ‘형태’를 통해 동서양 미술과 문화를 읽는 시도를 하고 있다. 특정 작품에 한정되기보다는 형태를 이루는 동서양의 비교문화, 예술사적 해석부터 진화론적, 철학적 해석을 통해 예술과 문화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책은 형태라는 가장 기본적인 조형요소와 그 형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면 단순히 특정한 작품이나 사조가 품고 있는 내외적인 상황을 넘어 보다 체계적이고 본질적으로 예술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또 이러한 예술의 ‘본질’을 탐구함으로써 독자들은 파편화되고 단편적인 예술 지식을 통합하고, 정형화된 작품 설명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사유를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