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거나 사기꾼이거나, 폴 존슨, 이문희, 이마고


영국의 언론인이자 역사가인 폴 존슨이 지은 <위대하거나 사기꾼이거나>는 요한 바오로 2세를 비롯해 사르트르, 헤밍웨이, 숀 코너리 등, 그가 직접 만난 각계각층의 유명인사 100여 명에 얽힌 일화와 촌평을 모은 책이다.


지은이는 대통령과 총리, 교황, 왕족, 학자, 예술가 등 20세기를 풍미했던 여러 유명 인사들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회상하며, 일반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그들의 포장되지 않은 ‘맨얼굴’을 때로는 독설로, 때로는 유머로 경쾌하게 스케치한다.


지은이는 몇몇 인물들에 대해선 거의 명예훼손 소송 감인 독설을 날리기도 하는데, 코코 샤넬이 대표적이다. “날카롭고 성질이 고약하고 자기밖에 모를 뿐만 아니라 도덕성도 없어 보였다. 나는 도대체 남자들이 무엇을 보고 그녀를 좋아하는지 확인하려고 그녀를 세심히 살펴보았으나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미국의 여성작가 매리 메카시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하다. “제대로 아는 것 없이 고집만 세고 생각 없이 입만 살아 있는 정말로 매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여자로, “게다가 입 모양이 얼마나 추한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저절로 이목을 끌었는데 그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피카소는 악한?
보수주의자의 까칠한 인물탐구


지은이가 보수주의 역사가인 만큼 그의 인물 평가도 남다르다. 특히 좌파적 인사에 대해 혹독한데, 지금도 많은 중국인들이 존경하는 저우언라이(周恩來)에 대해선 “진통제 같은 지루한 얘기를 능수능란하게 늘어놓으며 많은 이들을 현혹시킨 협잡꾼”이라고 하며, 이집트의 민족주의 지도자 나세르에 대해선 “아랍 민족주의의 무익함과 어리석음을 잘 보여준 독재자”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또한 인도의 지도자 네루에 대해선 “브라만 출신으로, 자신의 우월적 위치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 군중 속을 지날 때면 늘 지니고 다니던 단단한 막대기로 사람들을 후려치면서 길을 냈다”고 전한다. 네루는 평생을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다고 자랑스레 말했지만 지은이가 보기에 카슈미르, 고아 등을 침략해 “주민들의 저항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제국주의자”로, “정직하지 못하며 일관성 없고 비열하고 허위적이고 위선적”인 인물이었다.


한때 위대한 역사가로 명망 높았던 아널드 토인비에 대해선 더 가혹하다. 그의 역작 <역사의 연구>에 대해 “전반적으로 역겹기 짝이 없는 내용의 가식적 사기극”이라고 평가절하하면서 “일중독자로서 섹스도 절대 10분을 넘겨서는 안 된다고 한 나폴레옹의 말을 금과옥조로 삼은 얼간이”였으며, 아들 필립이 ‘나의 유년을 파괴한 대가’라는 제목으로 항목별로 길게 정리한 거액의 청구서를 그에게 보낸 사연도 들려준다.


물론 이 모든 험담을 다 합쳐도 피카소에 대한 짤막한 한 문단의 평가에는 미치지 못한다. 지은이는 “피카소야말로 내가 실제로 만났던 사람 중에 가장 사악한 사람”이라며 “고트족, 반달족, 청교도 혁명가들과 전체주의 악당들의 해악을 모두 합해도 그가 예술에 끼친 해악은 따라올 수 없다”고 단언한다.


지은이는 이제까지 잔혹한 독재자로 여겨졌던 프랑코와 피노체트 등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는 한편, 워터게이트로 물러난 닉슨을 “예리한 통찰력을 지닌 대가” “자기 얘기를 하기보다 배우기를 훨씬 더 좋아했던 사람” “직업 정치인 특유의 자아 집착이 없었던 인물”이라고 추억한다.


지은이는 주로 직접대화를 통해 간결하고도 생생하게 인물을 캐리커처하는데, 그 속에 언뜻 비치는 풍자적 유머가 이 책의 읽는 맛을 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