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이후 100년은 유례없는 진보의 시기였다. 이전 세기에 비해 연평균 성장률이 열 배 이상 높아졌고, 기술 발전과 지식의 향상으로 인간은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게 됐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영양 상태가 좋아지고 전염병을 퇴치하면서 평균 수명이 길어졌다. 1900년 이후 80년간 대도시 인구는 두 배가 넘게 증가했고, 사람들은 더 효율적인 노동으로 이전보다 세 배가 넘는 시간을 여가 생활에 활용할 수 있게 됐으며, 민주주의와 복지의 개념이 널리 확산됐다.

 하지만 이 20세기를 지배한 두 번의 세계 대전에서 이전의 그 어떤 전쟁에서보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2차 세계 대전은 어떤 기준으로든 역사상 인간이 일으킨 최대의 재앙이다. 그런데 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제외하고도 20세기에는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캄보디아의 독재자 폴 포트, 1차 세계 대전 당시 청년투르크당 정권, 1920~1950년대 소련 정권, 1933년~1945년의 나치 정권의 인종 학살을 비롯해 멕시코혁명 전쟁, 러시아 내전, 중국 내전, 한국 전쟁, 에티오피아 내전, 나이지리아 내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모잠비크 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란 이라크 전쟁, 수단, 콩고, 르완다, 부룬디 등에서 계속되는 내전들로 인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잘살게 된 20세기에 놀랄 정도로 규모가 크고 격렬한 폭력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진보가 대량 학살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니얼 퍼거슨은 <증오의 세기>에서 20세기의 극단적인 폭력성의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즉, 인종과 민족 갈등, 경제적 변동성, 그리고 제국의 쇠퇴다.

 

지은이에 따르면, 20세기에 인종상의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유전 법칙이 널리 보급되고, 인종이 뒤섞인 이주 지역의 분쟁지가 정치적으로 분열되면서 인종과 민족 갈등이 증폭됐다. 국내외 이주 집단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과 동질적인 정치 조직의 수립이라는 이상의 간극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1940년대 대량 학살이 자행된 지역들이 곧 여러 민족이 정착해 살고 있던 지역들과 일치한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갈등은 경제적 변동성과도 관련이 있다. 경제적 변동성이란 경제 성장률, 가격, 금리, 고용 변화의 빈도와 진폭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사회적 압력과 긴장을 의미한다.

 

경제 변동은 사회적 갈등을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어려워지거나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 소수 민족 집단들을 적대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커진다.

 

한편 20세기는 그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등 다민족 거대 제국이 해체되면서 새로 등장한 소련, 독일, 일본 등의 제국 국가가 등장한 시기다. 이전의 제국들이 쇠퇴하면서 분쟁 지역이나 권력의 공백 지대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하는 정권이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이들 제국 국가는 과거의 제국들과 달리 중앙 집권적인 권력과 경제적 통제, 사회적 동질성을 추구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역시 치명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1900년 당시 서양은 실제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터키의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베링 해에 이르기까지, 당시 동양으로 알려진 거의 모든 지역은 어떤 형태로든 서양 제국주의의 지배하에 있었다. 영국은 오래전부터 인도를 지배하고 있었고, 네덜란드는 동인도를,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지배했다. 미국은 필리핀을 수중에 넣었고, 러시아는 만주를 차치하려 애썼으며, 제국주의 열강들은 중국을 갈라 먹기에 바빴다.

 

그렇다면 20세기 세계 전쟁의 승자는 누굴까? 우리는 ‘서양’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미국의 세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20세기의 가장 거대한 격변은 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지배력이 쇠퇴한 현상이다. 이는 1904년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거둔 승리로부터 시작해 1978년 이후 중국의 경제 부흥에서 절정을 이룬다. 지은이가 역사상 유례없는 진보의 시대인 20세기가 피로 물든 세 가지 이유 중 하나로 지적한 제국의 쇠퇴는, 그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이야기하는, 현재에도 진행 중인 ‘서양 세계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20세기 말 냉전이 끝나자 자유 민주주의의 승리를 예견하며 ‘역사의 종언’이 선언됐지만, 실제로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지은이는 역사의 종언을 선언한 것을 두고 “기본적으로 지난 100년의 궤적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다시 동양으로 방향을 튼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소득 격차는 좁혀지기 시작했고, 서양의 상대적인 하락은 막을 수 없는 현상이 됐다. 이는 1500년 이후 4세기 동안 무너졌던 동서양의 균형이 회복되면서 세계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책은 기존 역사관에 도전해 동시대인들의 시각에서 역사를 서술한다. 역사가들은 1차 세계 대전 발발 이전의 기간을 고조되는 긴장과 위기의 시기로 묘사하려 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1914년에 일어난 사건을 정확히 포착하는 것보다, 이후 4년간 발생한 중요한 사건에 부합하는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확대되는 위기를 얼마나 적절히 서술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역사가에겐 너무나도 친숙한 외교 위기에 대해 동시대인들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사건의 전모를 이미 알고서 과거를 해석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의 역사가들에 의해 역사가 얼마나 왜곡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1차 세계 대전은 오래전부터 예상돼 온 위기가 아니라 충격 그 자체였다. 때문에 전쟁은 세계를 뒤흔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인간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자신들에게 위기가 닥쳐오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지은이는 방대한 분량의 역사와 통계 자료를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타자 혐오의 심리적 메커니즘과 정치 경제적 요인이 어떻게 결합돼 인간을 전쟁에 열중시키는지를 분석한다.

 

지은이는 또 20세기에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전쟁의 상황을 꼼꼼히 확인하면서, 지정학적 움직임과 사람들의 정서가 결합하는 순간을 포착해 생생히 그려 냄으로써 기존의 역사관을 돌아보게 한다.

 

지은이는 무엇보다 책을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한 시대가 어떻게 살육의 장으로 변해 버렸는지 기술하고 있다.

 

동화와 통합에 대한 잠재적 불안, 어떤 사람들을 외국인으로 파악하는 밈(meme)의 은밀한 확산, 여러 민족이 뒤섞인 국경 지대에 잠재된 분쟁의 불꽃, 불황과 호황을 오가는 만성적인 경제적 변동성, 과거의 다민족 제국과 단명한 제국 국가 간의 치열한 다툼, 그리고 서양 지배의 몰락을 알린 격변에 이르기까지 지은이는 다양한 주제를 방대한 분량에 걸쳐 다루면서 초지일관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 미래를 대비할 것을 경고한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 전쟁의 불안과 위협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시베리아 초원 지대에서 폴란드 평원으로, 사라예보 거리에서 오키나와 해변으로, 그리고 과테말라 포도밭에서 캄보디아 킬링필드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증오의 시대’가 가진 역설을 풀어내는 지은이는 역사와 경제, 사회, 과학을 선구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현대를 혁명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