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가운데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았고, 당시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존 F. 케네디. 그는 4년 임기를 1년도 채 남기지 않은 1963년 11월22일 오후 1시 15분 텍사스 댈러스에서 피살됐다.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의 4분의 3이 그가 음모에 의해 피살됐다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무엇 때문에, 누구에게 살해됐을까?

사진_캐네디와 말할 수 없는 진실ㅣ제임스 더글라스 지음ㅣ송설희 엄자현 옮김ㅣ말글빛냄 펴냄.jpg <케네디와 말할 수 없는 진실>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케네디의 죽음에 대한 충격적이고 놀라운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지은이 제임스 더글라스는 최근까지 발견된 방대한 자료와 광범위한 조사를 토대로, 케네디 죽음의 진실이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또 전통적인 냉전주의자에서 평화주의자로 전향한 케네디가 대통령 재임 3년에 걸쳐 겪은 변화의 실상을 담고 있다.

 

케네디 대통령은 머리에 총을 맞았고, 두개골의 윗부분은 깨져 버렸다. 남편이 총에 맞은 상황에서 재클린은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그녀는 남편의 머리에서 떨어져 나온 두개골 파편을 찾기 위해 자동차 트렁크로 기어 올라갔다. 리무진을 쫓아가서 자동차 위로 뛰어 올라간 비밀경호원 클린턴 힐은 영부인이 본능적으로 남편의 떨어진 두개골을 찾으려 했다고 증언했다. (…) 힐은 그녀를 붙잡고 뒷좌석 맨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곳에서 그는 대통령의 머리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들은 곧 파크랜드 병원에 도착했고, 대통령의 두개골에서 오른쪽 뒷부분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크랜드의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대통령의 두개골 오른쪽 뒷부분이 사라졌음을 확인했고, 따라서 암살범이 앞 쪽에 있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오스왈드가 있던 텍사스 교과서 보관소 건물에서 총이 발사된 것이 아니었다. 교과서 건물은 뒤쪽에 있었다.


 

책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케테디의 PT정이 침몰한 후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벌였던 바다와의 사투는 그에게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줬고, 갓난 아들 패트릭의 죽음과 그 병원에서 화상을 입은 아이를 만나보고 난 후 그는 핵전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삶의 기회를 앗아갈 수 없다는 결심을 확고하게 다듬는다.

 

피그스 만 침공에 이은 쿠바 미사일 위기, 흐루시초프와의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 체결, 베트남에서의 미군 철수 계획, 그리고 카스트로와의 화해 시도 등을 통해 들여다보면 CIA, FBI, 군부와 재계 등 미국의 정부 기관들이 사실상 케네디를 제거해야 하는 ‘반역자’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케네디는 이들과 맞서는 일이 죽음을 자초하는 일임을 예감하면서도 평화를 위한 그의 장정은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인기 있는 대통령의 화려함 뒤에는 항상 냉전의 세력과 사투를 벌여야 했던 그의 고뇌와 번민을 읽을 수 있다. 책은 그의 꿈을 채 펼쳐보기도 전에 ‘말할 수 없는 것들’에 의해 살해당해야 했던 케네디의 ‘평화를 향한 집념’을 이야기한다.

 

케네디를 비판하는 시각에서 보면 케네디는 쿠바 미사일 위기 때의 핵전쟁에 대한 공포, 베트남 주둔 미군 희생에 대한 우려, 흐루시초프와 카스트로와 함께 평화를 지향하면서 공산주의에 관대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케네디를 제외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력은 공산주의라는 악은 반드시 패배해야한다는 당위성 아래, 승리하기 위해선 어떤 수단이라도 -설사 그 방법이 대통령 암살이라고 해도- 필요하다는 정당성을 입증했다.

 

CIA는 케네디의 권한을 대행하던 도노반을 이용했던 것이고, 도노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카스트로 암살 도구를 전달한 꼴이 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만약 카스트로가 죽게 되면, 모든 이들은 잠수복을 암살 도구로 지목할 것이 뻔했고, 이를 전달한 도노반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도노반을 파견한 케네디가 암살의 배후로 지목될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다. 이 계획을 통해 CIA가 공격하고자 했던 것은 세 가지였다. 카스트로의 목숨, 케네디의 신뢰성, 그리고 쿠바와 미국 간의 대화에 대한 희망이 바로 그것이었다. 카스트로 암살 시나리오가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그에 대한 희생양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는 결국 케네디 암살로 이어지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CIA가 만들어낸 케네디 암살 계획은 오스왈드라는 희생양을 통해 카스트로 암살 계획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댈러스에서 이뤄질 수 있는 쿠바와 미국 간 화해 가능성 역시 희박하게 만들었다. 도노반을 이용한 카스트로 암살 계획에 고위 당국자가 연루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감찰관의 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이 계획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 중에는 후에 CIA 국장이 된 리처드 헬름스Richard Helms도 있었다.” 그는 1967년, 카스트로 암살을 위한 CIA 계획이 보고서로 작성되었던 그 해에 CIA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암살 배후자들이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만큼 시카고 암살계획의 실패는 반드시 댈러스 암살의 성공으로 이어져야 했다. 베트남 대통령 고 딘 디엠 형제가 살해당한 다음날 케네디가 시카고에서 피살됐다면 두 사건의 병렬적 관계로 보아 미국인들에게 ‘케네디는 디엠을 살해했기 때문에 피살되었다’는 시나리오가 성립되는 것이다. 또 댈러스의 사건도 수차례 시도되는 카스트로의 암살시도가 진행되는 가운데 친(親) 카스트로의 대리인인 오스왈드가 케네디를 살해했다는 시나리오에 짜 맞출 수도 있었던 것이다.

 

케네디에 이은 맬컴 X, 마틴 루터 킹, 로버트 케네디 암살사건의 역사적인 맥락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은 그들이 매체나 희생양들을 이용해 ‘관련사실 부인’의 원칙의 보호를 받는 정보기관들에 의해 살해됐으며, 네 사람 모두 ‘사회의 변화’를 부르짖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케네디의 암살을 음모했던 보이지 않는 세력은 단지 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꿈꿔온 비전을 없애 버렸다. 세계 평화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했던 대통령 케네디의 희생은 테러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구촌의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f.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