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어떤 것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인간의 원시적인 욕망을 그대로 보여 준다.”

 

사진_신화 인간을 말하다ㅣ김원익 지음ㅣ바다출판사.jpg 오랜 세월 쌓여 온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에는 인간사 거의 모든 사연들이 녹아 있다. 신들도 우리처럼 사랑하고, 질투하고, 절망하고, 복수하는 존재였고, 인간 역시 그들의 모습을 따라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신화를 인간의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원형 혹은 꿈으로 정의한바 있다.

 

신화는 인생의 모든 이야기가 집약돼 있는 저수지와 같다. 그렇지만 아무 이야기나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 중에서도 인간사의 전범이 될 만한 고갱이들만 정선돼 있다. 신화 속에는 인생을 살면서 생길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답이 숨어 있다.

 

<신화, 인간을 말하다>는 부자갈등을 시작으로 라이벌, 여러 가지 모습의 사랑, 분노 광기, 모험와 같은 인간이 원초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다양한 문제를 신화에 빗대 이야기하고 있다. 신화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을 살피면서, 그 무엇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인간의 원시적인 욕망을 신화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은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지금의 시간으로 끌어와 인간의 삶에 연결시키고 있다. 즉 다른 나라의 신화를 소개해 이를 깊이 연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면, 이제는 그 신화가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읽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바로 이 세 번째 의미에서 그리스 신화를 읽고 있다.

 

이 책엔 부자갈등과 사랑, 라이벌, 분노와 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비롯해 구출과 탈출, 거짓말과 전쟁 같은 인간이 벌이는 온갖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한데 엮여 있다. 지은이는 김원익은 신화 속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과 다른 것을 ‘괴물’로 정의하고, 이를 처치하는 것이 ‘정의’이자 ‘계몽’이 된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을 끌어들여 오디세우스가 세이네레스와 대면하는 방식을 이야기 한다. 또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와 같은 이방의 괴물을 물리친 수많은 신화 속 영웅을 이야기하며 고대 그리스의 선민사상을 비판한다.

 

또한 그리스 사랑에 빠진 아폴론이 요정 다프네를 쫓아가는 사랑의 추격, 황금양피를 찾아 떠난 이아손과 아이에테스 왕의 추격전, 달리기 시합을 핑계로 결혼을 미루던 아탈란테와 그녀를 쫓아가 결혼에 성공한 멜라니온의 어색한 추격 등의 추격 장면을 통해 ‘숨바꼭질’과 ‘술래잡기’ 같은 인간의 원초적인 놀이 본능을 이야기한다.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의 이야기는 부자갈등의 일면을 드러내고, 헤라클레스의 모험을 통해서는 속임수와 거짓말도 때때로 유용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아손과 적국 공주였던 메데이아의 사랑은 일방의 헌신적인 사랑은 늘 비극으로 끝남을 보여 주고,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는 황금사과는 전쟁의 명분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또한 ‘거짓말과 속임수’를 이야기하면서 영화 <굿바이 레닌>을 끄집어내고, 부자갈등을 이야기하면서 박찬일의 시 <집안의 산보자들>을 인용한다. 괴테의 <마리엔바트 비가>를 소개하면서 피그말리온의 광기를 이야기하고, 테이레시아스와 칼카스 같은 신화 속 예언자를 언급하면서 김수한 추기경을 추억한다. 책은 이처럼 그리스 신화와 바로 지금의 우리를 연결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