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자녀 한 명을 키우는데 드는 돈은 얼마나 될까.

 

사진_즐거운 양육 혁명ㅣ톰 호지킨슨 지음ㅣ문은실 옮김ㅣ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jpg 최근 보건사회연구원 자료를 보면, 자녀 한 명을 낳아 대학 졸업할 때까지 드는 양육비로 2억6000여만 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돈이 많이 드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교육비 때문이었는데, 2003년에 비해 1.5배나 증가했다. 그렇다면 부모들이 이처럼 많은 양육비를 들여야만 제대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것일까. 또 부모들이 엄청난 양육비를 들여 정성으로 키운 아이들이 과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걸까.

 

2010년 발표된 또 하나의 조사 결과는 온 국민을 경악케 했다. 우리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꼴찌였고, 더불어 청소년 자살률은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모든 걸 다해주고, 경제적인 부담을 떠안으며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는데 왜 정작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은 걸까?

 

<즐거운 양육 혁명>은 이러한 문제점이 바로 부모들의 잘못된 양육관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영국의 칼럼니스트인 지은이 톰 호지킨슨은 어느날 돌연 시골행을 택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세 아이를 도시의 소비문화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자라도록 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는 자신이 겪은 양육 분투기와 함께 중세 철학자들로부터 양육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내용의 칼럼을 <데일리텔레그래프>지에 연재해 젊은 부모들의 공감을 얻었고, 이를 계기로 이 책을 쓰게 됐다.

 

지은이는 책을 통해 부모들의 과도한 양육비 지출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부모는 평생 자식에게 ‘돈 쓰는 사람’이 돼 착취를 당하는 덫에 걸려들게 되는 악순환의 사회 구조를 인식해야한다고 말한다. 아이를 위해 많은 지출을 해야 안심하도록 설정된 소비사회, 남과의 비교와 경쟁으로 우위에 서야만 행복을 느끼도록 조장하는 경쟁 사회에 자신도 모르게 길들여진 부모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은이는 또 과잉양육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그에 따르면,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돌봐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이크로 매니징’하는 부모들은 쏟아 부은 만큼 자라는 게 아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하지만 부모의 극성스러운 관여는 결국 아이 스스로 작은 결정 하나 해내지 못하는 자존감이 부족한 아이,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성장하게 돕는 격이 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대학 학점은 물론 직장의 연봉협상까지 부모가 나서는 일이 벌어지는 것을 우리는 이미 뉴스를 통해 확인한 바 있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냥 나무에서 나뭇가지 하나 꺾어서 아이에게 주면 될 테니 장난감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이는 나뭇가지와 놀고, 괴물을 처단하기 위해 나뭇가지를 먹고, 나뭇가지로 돼지를 만들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할 것이다. 이 길이 또한 생태적으로도 친화적인 선택임은 분명하다. 지구를 망치는 플라스틱은 전혀 없이, 그저 자연의 한 조각, 손쉽고 새파란 것 한 조각만 있으면 된다. 그렇다, 게으른 양육은 지구를 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놀이를 만들고 즐길 기회를 박탈당한 아이들을 살리고, 소비사회의 굴레 속에서 완벽한 부모 노릇에 압박받는 부모를 구해낼 방법은 과연 뭘까.

 

지은이는 이에 대해 아이를 키우는 데 2억6000만 원의 돈을 쓸 필요도 없으며, 그 누구보다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자부하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한다. 지은이는 이를 ‘게으른 양육’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을 가만히 내버려둬라”를 모토로 하는 혁명적인 이 양육 접근 방식은 D. H. 로렌스가 창안한 이래 수많은 사상가와 교육가들이 따르고 있어 설득력을 더해준다.

 

“아이 교육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첫째 규칙은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둘째 규칙은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셋째 규칙은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것이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전부이다.”

- D. H. 로렌스, <인간 교육(1918)>

 

이 게으른 양육은 부모가 양육에 공을 너무 많이 들인다는 데 문제가 있음을 자각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지은이는 구체적인 처방으로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함께 하는 등 소소한 노동을 돌려줘 부모에게 시간적인 여유를 선물하고, 아이에게는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라고 말한다. 아울러 장난감과 TV, 컴퓨터를 멀리하는 대신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뛰어 놀게 함으로써 자발성과 창의성, 사회성을 길러주라고 한다.

 

지은이는 또 부모가 충분히 잠을 자고 집안일을 적게 해 집안에서 아이의 역할을 늘리고, 억지로 예절을 주입시키지 말고 본보기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 학교와 사교육 기관 외에도 홈스쿨링과 공동육아를 통해 아이를 교육시킬 대안이 있다는 등의 실질적인 조언을 철학자들의 문헌을 근거로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루소는 ‘자연적인’ 어린 시절에 대해 말하고, 후쿠오카는 ‘자연’ 경작에 관해 말한다. 메시지는 똑같다.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어라. 그들을 믿어라. 비옥한 조건을 마련해주면 그들은 자랄 것이다. 강건하고 튼튼한 묘목을 창조하라. 게으른 부모는 아이들이 무리 지어 꽃을 피우고 잡초들 사이에서도 튼튼하고 기운차게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지, 온실에서 키우면서 강도 높은 개량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양육은 부드럽고 느긋하다. 그것은 일이 아주 적게 들고, 아이들을 강인하고 건강하며 독창적이고 자신감 있게 키워낼 것이다. 아이들에게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심어주거나 ‘이상적인’ 어른을 만들어내는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 가운데 자라게 놔두는 것, 자기 자신대로의 모습으로 자라나는 것에 관한 문제다.


 

지은이는 특히 현대 부모들에게 양육에 관한 훌륭한 조언을 제공하는 두 사상가의 책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1693년 출간한 로크의 <교육에 관한 몇 가지 생각(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 1762 루소의 <에밀>이 바로 그것이다. 이 외에도 <도덕경>과 일본 자연주의 철학자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 오라기의 혁명>에서도 양육에 대한 힌트를 얻으며, D. H. 로렌스, 서머힐 스쿨의 창립자인 A. S. 닐, 새로운 교육 제도의 실현을 주장한 이반 일리치 등으로부터 조언을 구한다. 이렇게 천년의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육아와 교육에 대한 사상가들의 고민을 함께 풀어 ‘게으른 양육’을 주창하기에 이르고 다음과 같은 ‘게으른 부모 강령’을 선포한다.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두겠다고 서약한다.

양육이 고된 노동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아이들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이들의 삶을 침범하는 광적인 소비주의를 거부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일을 적게하고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함께 한다.

학교는 아이의 삶에 우선순위가 아니다.

세상에는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방식대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만족한다.

 

이 주장은 완벽한 양육, 만능의 부모를 바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린 부모를 위로하고, 새로운 대안을 기다리던 젊은 부모들에게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지은이는 소비사회의 덫에 걸려들지 않고, 초경쟁사회의 기계가 되지 않기 위해 기존 규범에서 벗어날 것도 권하면서 부모 역할을 즐기라고 말한다. 적어도 아이가 어린 몇 년 동안만이라도 일의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육아를 하자고 한다. 즉 아이를 미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고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지 말고, 지금 당장 아이와 함께 하는 행복에 관심을 두라는 것이다. 또 아이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간섭과 조종이 아니라 ‘긍정적 외면과 격려’라면서 아이들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그들 곁에서 그저 뒹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