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을 향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선거 정국까지 앞으로 1년, 19대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예비후보들 간의 물밑 전쟁이 예상된다. 대권후보들 가운데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정치인은 바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다.

 

박근혜 현상, 김종욱 외, 위즈덤하우스,

 

▲ <박근혜 현상> 김종욱 외, 위즈덤하우스.

 

박근혜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가 대중으로부터 받고 있는 신뢰와 지지는 주목해야 할 현실이다. 그는 현직 대통령과 대적할 만큼 정치적으로 성장했으며, 주요 정책의 당락을 결정할 만큼 강해졌다는 평가다. ‘근대 경제신화를 이룩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후광효과라고만 단정하기엔 그 영향력이 막강해졌다. 그렇다면 ‘왜’, 그리고 그의 ‘무엇’이 대중을 끌어당기는걸까?

 

<박근혜 현상>은 정치, 사회, 여론, 정책, 외교 등 국내 진보·중도 성향의 정치전문가들의 박근혜에 대한 연구보고서다. 이철희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조교수, 김헌태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겸임교수, 김종욱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연구교수,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 등은 ‘신드롬’에 비유될 수 있는 이러한 현실을 ‘박근혜 현상’으로 정의하고, 객관적인 자료와 여론을 바탕으로 정치적·사회적·시대적 관점에서 분석·해명하고 있다.

 

책은 이와 함께 2012년 대선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구조와 여론, 남북관계, 한미관계의 향방을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단순히 ‘박근혜’라는 정치인 한 사람이 아니라 대중과 함께해 온 정치현실과 시대현상을 재조명하다. 특히 박근혜의 측근이나 친박 성향 인사가 아닌 비판적 진보·중도 성향의 전문가들이 객관적인 시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책에 따르면, 박근혜는 대선게임에서 부동의 상수(常數)다. 그의 이러한 위상은 구도효과가 만들어낸 것이다. 세종시 수정 논란에서 보았듯이 박근혜가 반대하면 그 어떤 법안도 통과되기 힘든 상황이다. 18대 총선 결과 한나라당의 의석은 전체 의석의 과반수를 넘겼고, 한나라당의 마음먹기에 따라선 어떤 법안이든 통과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그 법에 동의하는 것이 전제다. 친박그룹, 즉 당내에서 그를 따르는 의원이 70∼80명에 이르기 때문에 그가 반대하면 법은 통과될 수 없는 것이다.

 

또 다른 구도효과는 박근혜가 약자라는 것이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그리고 대선 후 한나라당 내에서 핍박받는 ‘콩쥐’ 신세가 됐다. 18대 총선 공천에서 친박 인사들은 대거 낙천했다. ‘박근혜 죽이기’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승자 독식·약자 핍박’이라는 구도는 그에게 여론이 쏠리는 효과를 낳았다.

 

박근혜 한나라당 정 대표.또한 6·2지방선거 전까지 친박세력은 제1야당의 위상을 차지했다. 이러한 구도효과는 제1 야당인 민주당의 존재를 미미하게 만들었다. 박근혜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실망한 유권자들이 여권에서 이탈하지 않고 머물러 있도록 하는 유수지(遊水池) 역할을 했다. 이른바 반MB 정서가 깊어질수록 그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높아졌다. 물론 2009년 후반기에 들어 이 대통령이 중도·실용으로 국정기조를 전환하면서 그가 누려온 대립구도 효과가 점점 줄어들었다. 중도 공략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보수 지지가 약화되는 것은 그에겐 최악이었다. 결국 그는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기보다 화해하는 구도로 선회했고, 2010년 8월에 들어서면서 화합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출처=위키피디아>.

 

이른바 ‘근혜 파워’의 또 다른 구도효과는 박정희 모델. 외환위기를 초래한 산업화 세력이 쫓겨나고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민주화 세력은 양극화의 심화 등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데 실패했다. 대중 속에서 과거의 성공 사례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났다. 보수층과 나이 든 세대를 중심으로 박정희 모델을 호명하는 분위기도 생겨났다. 박정희 모델이 부각되면서 박근혜의 위상은 덩달아 올라갔다. 민주화 세력이 ‘무능’으로 상징되는 인식(perception) 구도는 그에게 튼튼한 가치기반이 됐다.

 

지역과 이념 역시 구도효과로 작용했다. 박근혜의 정치적 근거지는 영남이다. 보수 대표성을 거의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다. 그의 전략도 보수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물론 2009년 5월 스탠퍼드대 연설을 기점으로 전략이 바뀌었지만, 그는 중도 전략의 명분을 박정희 모델에서 찾았다. 즉, '서민주의'를 부각시킨 것이다. 후하게 보면 중도전략, 박하게 보면 개혁적 보수로 전환한 것이다.

 

최근 박근혜를 바라보는 진보 논객들의 시각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이제 누구도 ‘독재자의 딸’이나 ‘수첩 공주’론을 언급하지 않는다. 일부 진보 전략가들은 이명박 보수진영에 대립되는 하나의 축으로, 그의 진영과 개혁 진영의 연합을 거론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현재의 정치지형으로는 2012년 대선에서 누구도 그를 이길 수 없다는 비관론과 차라리 보수 정치인의 집권으로 한반도 해빙이 유리해질 수도 있다는 희망적 사고가 깔려 있다. 개혁진영 내에 등장한 이 같은 현상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 현상의 핵심에는 그를 국가와 국민에 대한 진정성을 가지고 시민들과 소통하는 탈정치적인 정치가로 간주한다는 유권자들의 사고가 전제돼 있다.

 

책은 이 밖에도 박근혜의 강점과 딜레마를 비롯해 그를 주목하는 진보진영의 다양한 시각을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