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이 ‘빨리빨리’를 만들었고, 빨리빨리는 또 무엇을 양산했는가?

- ‘아파트’가 공공 커뮤니케이션과 공동체문화에 미친 영향은?

- 한국인의 국가?사회 정체성 형성에 기여한 미디어로서의 ‘자동차’

- 대대적인 시위의 기폭제이자 인정투쟁과 인맥투쟁의 장으로 기능하는 ‘장례’

- 집단주의와 타인지향성이 강한 한국사회의 구별 짓기가 발달시킨 ‘전화’

- 서울이 지방을 거느리는 내부 식민지 체제를 강화한 서울의 ‘대학’

- 한국형 평등주의가 한국에서 ‘영어’ 광풍과 영어제국주의를 번성시킨 동인?

- ‘혈서’, 심정과 한의 사회에서 자해의 형식으로 카타르시스를 분출하다

- 한국사회의 발전 동력과 직결되어 있는 ‘간판’들의 과격한 경쟁

 

‘빨리빨리’ ‘아파트’ ‘자동차’ ‘장례’ ‘전화’ ‘대학’ ‘영어’ ‘혈서’ ‘간판’. 대한민국을 ‘특별하게’ 만드는 9가지 코드다.

 

사진_특별한 나라 대한민국ㅣ강준만 지음ㅣ인물과사상사 펴냄.jpg 이념의 문제가 아닌 경쟁적 근대화라는 역사적 특수성에 기인한 문제로 비생산적인 좌우 논쟁을 벌이는 나라, ‘이래서 한국놈들은 안돼’라는 말처럼 자민족을 비하하는 민족성·국민성 담론이 사라지지 않는 나라, ‘네가 하면 나도 한다’는 식의 독특한 평등주의가 만연한 나라, 대한민국.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극단적으로 편을 가르고 반대를 위한 반대에 골몰하는 정치권, 대형 건물의 공사기간을 여러 달 단축했다고 자랑하는 기업, 내 집값 올리자며 서슴없이 집값 담합에 참여하는 부녀회, 기러기 아빠로 지내다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중년남성 등이 있다.

 

실제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특수한 실정과 환경에 대한 고민이 없거나 박약하다는 증거다. 과연 한국인은 한국을 잘 알고 있을까. <특별한 나라 대한민국>은 9가지 한국적 삶의 코드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행복감은 이웃과의 비교에서 나온다. 이런 ‘이웃효과’에 관한 한 한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한국사회 특유의 사회문화적 동질성과 밀집성 때문이다. 동질적인 고밀집 사회는 이웃과의 비교를 강요한다. 이웃을 의식하지 않고선 단 한시도 못 살게 만든다.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엄친딸’(엄마 친구 딸), ‘아친남(아내 친구 남편)’, ‘딸친아(딸 친구 아빠)’ 등과 같은 말들이 순식간에 국민이 공감하는 신조어가 될 정도로 그 비교는 필사적이다. 한국 경제가 중진국 수준을 넘어선 뒤에도 빨리빨리라는 경쟁 논리를 생활화시킨 데엔 바로 그런 이웃효과가 컸다. 인터넷을 비롯한 현대적인 원격통신은 이웃효과의 국지적 본성을 소멸시켰는데 한국은 고밀도 덕분에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으로 등극했으니 이웃효과로 인한 평등주의와 그에 따른 빨리빨리 경쟁은 한국적 삶의 본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인은 정말 소속 집단의 간판 파워로 개인을 평가하려는 집단주의와 무엇이든 빨리하는 것이 최고라는 속도주의에 매몰돼 있을까. 또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 내에서만 공동체 의식을 발휘하고 ‘내 자식이 다른 집 자식보다 뒤떨어지는 건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기이한 평등주의를 실현하려고 온 생애를 바치는 덜 떨어진 민족일까. 이것이 결국 나라의 운명을 위태롭게 할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싸잡아’ 평가하는 민족성 담론에 문제가 많음을 알고 있다. 집단보다 개인을 앞세우고, 차분하고 끈기 있게 문제를 파고들고, 감정보다 합리성을 앞세우는 등 다양한 성격을 지닌 한국인을 주변에서 얼마든지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민족성 담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복잡한 세상과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단순화시켜 이해하기에 편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이 복잡한 세상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은이 강준만은 이 같은 관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나아가 한국인의 민족성을 객관적이고 분명하게 파악해 ‘민족성·국민성 담론’을 형성하는데 주력한다. 한국사회의 명암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이 작업이 대한민국의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지속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더 넓게는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기존 해외 홍보 수준 이상의,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한국학’ 정립을 시도한 것이다.

 

아파트 거주 체제는 한국 경제발전 요인 중의 하나인 집적集積의 실현으로, 그로 인한 효율성은 유통에서 가장 두드러져 대중의 풍요로운 소비생활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사회의 정보화를 앞당긴 요인 중 하나도 아파트 대단지가 제공해준 포드주의적 효율성이었음을 어찌 부인할 수 있으랴. 중앙집중화의 터전 위에 선 ‘아파트 공화국’이야말로 네트워크를 깔기에 가장 적합한 체제였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교외 주거지역의 특성상 인구밀집이 쉽지 않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어 인터넷 보급망에서 한국에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국민의 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할 뿐만 아니라 전화국 반경 4km 내에 거주하는 인구가 93%라 서비스 공급에 매우 유리했다.


 

지은이는 우선 방법의 측면에서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문화정치학의 관점을 접목한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듯 보이는 대한민국 민족성의 기원과 유형을 논리적으로 밝히기 위해 9가지 한국의 생활문화 양식을 엄선, 한국인들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소통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지 조목조목 설명한다.

 

한국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 9가지는 ‘한국인스럽게’ 대화하고 서로를 인지하는 대표적인 소통의 도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부정적인 모습 뒤에 긍정적 에너지를 감추고 있거나 긍정적인 모습 뒤에 부정적 에너지를 감추고 있기도 하다. ‘빨리빨리’에 길들어 매사 기초에 충실하지 못한 한국인의 이미지 이면에 눈부신 경제적 성장을 달성하는 한국인의 저력이 숨어 있는 것처럼, 또는 휴대전화 강국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 뒤에 어떤 휴대전화를 소유하고 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지위고하를 섣불리 평가하는 못된 습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은이는 책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대한민국의 특별한 정체성을 알려주는 요소를 발견하는 재미와 함께 이를 긍정적인 요소로 승화하는 성숙한 안목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