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가 2008년 18대 총선에서 근소한 표차로 떨어진 직후의 일이었다. 우연히 길을 가다 지역구 주민이자 평소 자신을 열성적으로 지지해 주었던 젊은 부부를 만났다. 그런데 그 부부가 하는 말이 자신들은 노 후보가 당선되어 정치인이 될까 봐 걱정해서 내심 떨어졌으면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실제로 떨어지고 나니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진_정치의 발견ㅣ박상훈 지음ㅣ폴리테이아 펴냄.jpg 노 전 대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깜짝 놀랐지만 그 부부가 무안해 할까 봐 웃으면서 “제가 정치인이 되어야지 아님 왜 출마했겠어요. 그럼 누굴 찍으셨어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당연히 그를 찍었다고 말했다. 그를 신뢰하고 지지하지만 그래도 그가 정치인이 되지 않았으면, 그래서 정치에 오염되지 않았으면 하는 그 복잡한 심리를 전해 들으면서, 정치를 자연스럽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필자는 절실하게 느꼈다고 했다.

 

<정치의 발견>은 민주주의에서 모두가 깊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정치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보수적인 견해뿐 아니라 진보파들도 정치를 무시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지은이 박상훈은 진보 안에서 정치와 민주주의가 잘못 이해되고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강의의 형식으로 이야기하면서 대안적 정치관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민주주의의 가치에 상응할 수 있는 진보 정치의 길을 말한다. 이는 진보적 인간, 진보적 정치가 아니라 인간적 진보, 정치적 진보의 길이다. 인간과 정치를 진보적 이념에 따라 개조하려는 시도는 결과도 나빴을 뿐만 아니라 옳은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진보보다 정치가, 정치보다 인간이 훨씬 더 넓고 풍부한 세계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인간과 정치라는 그 넓은 세계를 진보 안으로 협소하게 밀어 넣으려는 시도는 무리가 따르고 성과를 얻을 수도 없다. 자신의 생각 이외에 다른 의견들을 무작정 부정하기만 하는 태도는 진보든 보수든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누구든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이견들의 공존 위에서 진보가 좀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기존의 ‘민주주의 운동론’으로부터 벗어나 ‘민주정치론’이 적극적으로 개척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진보 정치를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다섯 차례의 강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우리 사회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지난 4반세기에 걸쳐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동안, 특히 지은이가 속한 진보 안에서의 수많은 오류와 시행착오를 지켜보면서 인간과 정치의 문제에 관해 정치학 연구자로서 갖게 된 인식과 판단을 강의의 형식으로 풀고 있다.

 

지은이는 ‘진보적으로만 하면 된다’라는 생각만으로 왜 충분하지 않은지를 하나하나 따져 가면서 우리 사회에서 진보의 문제를 객관화한다. 이를 통해 이것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 일인지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