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이용하는 스쿨버스, 숏버스(short bus).

 

1975년 장애인교육법에 의해 탄생한 숏버스의 유례는 특별하다. 당시 장애인교육법(IDEA, the 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Education Act) 제정으로 많은 장애인이 학교 교육을 받게 됐으나, 통합교육이 강제되지 않은 탓에 장애 학생들은 비장애 학생들과 분리돼 교육을 받아야 했다. 이들이 타고 다닌 특수학급용 스쿨버스가 바로 숏버스인데, 일반 스쿨버스보다 길이가 짧아 숏버스라고 불리게 됐다.

 

이미지_ 숏버스, 조너선 무니, 전미영, 부키.jpg ◇숏버스, 조너선 무니/전미영, 부키

 

읽기장애를 이겨내고 명문 브라운 대학을 졸업한 이후 장애 극복의 표본이 되어 활동가이자 강연자인 조너선 무니. 그는 ‘정상’이 돼야 한다는 강박에 늘 사로잡힌 채 자아가 분리돼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무니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어떻게 그런 생각에서 자유로워졌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숏버스>는 무니가 2003년 5월부터 10월까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학습장애, 신체장애, 지적장애를 가진 13명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경험한 여행기록이다.

 

이 여행은 지은이가 중고 숏버스를 타면서 시작된다. 그가 숏버스를 고른 이유는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숏버스를 타는 데다 자신들이 겪은 차별과 고통, 이를 넘어서는 이야기가 모두 그 안에 담겨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숏버스는 장애인의 상징이며 그들을 하나로 묶고 있는 개념인 것이다.

 

지은이가 숏버스 여행에서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열두 살 소년 브렌트. 브렌트는 읽기장애와 학습장애라는 딱지를 달고 고통을 받으며 축구와 페인트볼 게임에서 위안을 얻는다. 지은이 역시 어릴 때 같은 문제로 힘들어 했고 축구를 탈출구로 삼았다. 하지만 사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속으로 갈등했던 지은이와 달리, 브렌트는 스스로에게 정상을 강요하지 않는다.

 

지은이의 브라운 대학 동창인 켄트는 주의력결핍장애가 있다. 자기 집에 찾아오는 길을 설명할 만한 집중력조차 없는 반면 대학 입학시험에서 만점을 받을 만큼 영리하다. 켄트는 유머 책을 쓰고 24시간 스탠딩 코미디 공연을 하는 ‘괴짜 예술가’의 모습을 통해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인정받고자 한다. 남들 눈에는 천재와 미치광이 사이를 넘나드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살 뿐이다.

 

쿠키를 아는 사람들은 그에게 발달장애가 있다고 여겼지만 쿠키 자신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미리엄의 목소리가 변하던 것이 생각난다. “쿠키는 키가 180센티미터가 훨씬 넘는데요, 드레스에 하이힐, 가짜 유방, 금발 가발 차림으로 동네를 돌아다녀요.” 미리엄에 따르면 쿠키는 메인의 풍경을 주로 그리는 화가이기도 했다. 나는 마을 사람들과 미리엄 자신은 쿠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정신병자? 복장도착자? 정신지체? 미리엄은 당신 미쳤냐는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우린 그냥 쿠키라고 생각해요.”


 

키 190센티미터에 화장을 하고 금발 가발을 쓰고 15센티미터 하이힐을 신고 돌아다니는 남자를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쿠키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메인 주의 작은 어촌에 사는 어부이자 화가인 쿠키는 성전환 수술을 해서 ‘도미니크’라는 여자가 되기를 꿈꾼다. 정확한 병명은 이른바 ‘성 정체성 장애’. 쿠키가 그런 독특한 모습을 하고도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고향 마을 사람들 덕분이다. 그들은 여자 또는 남자라는 이분법으로 쿠키를 규정하지 않는다. ‘쿠키는 그냥 쿠키’라는 말처럼 있는 그대로 그를 받아들이고 함께한다. 이런 모습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케이티는 숏버스 여행에서 만난 가장 유쾌한 사람. 여느 20대와 마찬가지로 케이티 역시 보이밴드에 열광하고 스타의 가십에 관심을 기울이며 쇼핑을 좋아한다. 지은이는 그가 평범하다는 사실에 실망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케이티의 특별함을 발견한다. 언제나 밝은 그는 게임에 지는 걸 싫어하는 지은이조차 승패를 잊고 카드 게임을 즐기게 만든다. 사람들을 함께하도록 만드는 그녀만의 특별한 ‘긍정의 힘’은 장애인은 무언가 부족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부끄럽게 만든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읽기장애라는 딱지가 붙은 뒤 지은이는 세상이 정해 놓은 정상이라는 기준에 맞추려고 애써 왔다. 그 기준과 맞지 않는 부분은 스스로 선을 긋고 분리시킨 뒤 축구를 통해, 공부를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해 왔다. 그러나 숏버스 여행을 통해 그는 진정한 자기를 인정하고 더 이상 남들의 기준에 맞춰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나는 괴짜들로 구성된 우리 일행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만사가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느꼈던 불안감, 시냅스와 뇌 조직에 계속 남아 있던 그 불안감이 사라졌다. 여기서는 내가 괴짜가 아니다. 사랑하는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여전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분투하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혹은 어떤 사람이 되든, 더 이상 나는 괴물이 아니다.


 

지은이는 멀기만 했던 아버지와 대화를 시작하고, 빤히 쳐다보는 남들의 시선을 웃으며 넘긴다. 애초 자신이 다녔던 초등학교 앞에 시위하듯 숏버스를 버리려던 계획도 바꾼다. ‘숏버스를 타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