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믿음에는 근거가 없다.”

 

고릴라가 등장해 가슴을 두드리는데도 못 보는 학생들, 바로 옆에서 집단 구타당하는 동료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찰, 범죄자와 체스 달인의 놀라운 공통점과 같이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고 설명할 수도 없는 수많은 착각과 오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이미지_ 보이지 않는 고릴라,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외, 김명철, 김영사.jpg *보이지 않는 고릴라,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외, 김명철, 김영사.

 

지난 1999년 한동안 비어 있던 하버드대학 심리학과 건물의 어디에선가 ‘통~통’ 하는 공 소리가 들렸다. 검은 셔츠를 입은 3명, 흰 셔츠를 입은 3명, 도합 여섯 명의 학생들이 각각 팀을 이뤄 농구공을 패스하고 있다. 공중에서 던지기도 하고, 땅에 튕겨 전달하기도 한다. 흰 셔츠 팀의 패스 횟수만 세는 것이 이 실험의 과제다.

 

이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열심히 흰 셔츠 팀의 패스 횟수를 셌다. 그리고 자신 있게 교수들(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에게 답을 제출했다. 그런데 진짜 과제는 따로 있었다.

 

문: “선수들 말고 눈에 띄는 누군가는 없던가요?”

답: “없었어요.”

문: “혹시 고릴라 보셨나요?”

답: “네? 뭐라고요?”

 

1분이 채 되지 않는 이 실험 영상에서는 고릴라 옷을 입은 학생이 천천히 등장해 카메라 정면을 보고 가슴을 두드리고는 천천히 퇴장했다. 그러나 실험 참가자의 50%는 고릴라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다시 영상을 재생해 살펴본 그들은 당연히 고릴라를 발견했고, 저렇게 분명히 등장한 고릴라를 이전에 못 알아본 자신에게 더욱 놀랐다.

 

교수들은 심리학 역사상 가장 재미있고 독창적이면서도 유명한 이 ‘투명 고릴라’ 실험으로 2004년 ‘이그노벨상’을 수상했다. 이 실험은 심리학 입문 교과서에 실려 전세계적으로 사용되었고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유수한 잡지와 ‘NBC 다큐멘터리’에 대대적으로 소개됐다. 아울러 샌프란시스코 과학관을 비롯한 여러 박물관에도 전시됐다.

 

그저 한 연구결과가 사상 유례 없는 인기와 주목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못 보고 있는지, 놓치고 있는지를 매우 재미있는 방법으로 밝혀냈기 때문이다.

 

왕성한 호기심과 독창적 통찰이 빚어낸 ‘투명 고릴라 실험’의 창시자인 이 하버드 괴짜 교수들이 지은 <보이지 않는 고릴라>는 놀랍고 재미있는 실험을 통해 인간의 인지능력에 관한 비밀과 한계를, 우리가 일상에서 항상 경험하는 6가지 착각으로 분류해 매우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익숙하고 공감 가는 이러한 착각의 징후와 그로 인한 결과, 이를 예측하고 방지하기 위한 방법을 실질적이고 공감 가는 사례들로 구성한 이 책은 인간의 심리뿐 아니라 그로 인한 자기계발과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 등을 복합적이고 포괄적으로 설명한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진찰하면서 일반 증상들과 권고 치료법을 찾아 책을 뒤적이는 의사를 만난다면 누구나 의심을 품을 것이다. 당연히 의심스러울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감 있는 의사가 능력 있는 의사이며, 자신 없는 의사는 의료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의사로 여긴다. 자신감이야말로 업무 능력, 직업적인 기량, 기억의 정확성 또는 전문 지식을 보여주는 정확한 신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환자를 진단하면서, 외교 정책에 관한 결정을 내리면서, 법정에서 증언하면서 사람들이 보여주는 자신감은 착각일 때가 너무나 많다.

 

에 따르면 인간의 일상을 지배하는 착각은 크게 여섯 가지로, ▲주의력 착각(고릴라가 나타났는데 보질 못하는) ▲기억력 착각(과연 내 기억력은 믿을 만한가) ▲자신감 착각(놀랍게도, 실력이 낮으면 자신감이 높고 실력을 쌓아갈수록 자신감이 줄어든다는 학술적 증거가 나왔다) ▲지식 착각(왜 내가 산 주식은 다 떨어지고, 내가 팔면 상한가를 친단 말인가) ▲원인 착각(홍역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고?) ▲잠재력 착각(매일매일 닌텐도 두뇌 트레이딩으로 머리가 좋아진다니!)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착각들이 어우러져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심리적 오류와 오해에 대해 책은 설명하고 있다.

 

6가지 ‘일상의 착각’은 대부분 우리의 사소한 실수로 이어지지만, 재물이나 건강 심지어는 생명까지 위협하는 치명적인 손실로도 이어질 수 있다. 가령 ‘주의력 착각’이 부족해 바로 앞의 오토바이를 못 보고 교통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고, ‘기억력 착각’으로 무고한 사람을 강간범으로 몰아 무기징역을 언도하기도 했으며, ‘지식 착각’으로 자신과 회사를 파산에 이르게 하고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불러오기도 했던 사건은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금융버블이 언제, 어떤 규모로 발생할지 알 수 있다는 생각도 지식 착각이다. 지식 착각을 깨달아 가격상승에 대한 예측 못지않게 가격하락을 예측하려는 시도 역시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지식 착각은 버블 발생의 필수 요소다. 역사적으로 버블이 발생할 때마다 금융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들에게까지 단편적인 새로운 지식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많은 정보는 시장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 과거에는 어땠는지, 사람들이 시장의 움직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려주지만, 시장이 미래에 어떻게 바뀔지는 예측하지 못한다. 금융용어에 익숙해지고 시장 변화속도가 빨라지면서, 우리의 깊지 못한 지식이 감추어지며, 점점 빨라지는 정보의 공급으로 인해 앞으로 다가올 호황과 불황의 순환 주기는 더욱 짧아질 것이다.

 

책은 그동안 전혀 의심해보지 않고 굳게 믿었던 수많은 상식과 검증받은 지식들이 사실은 완전히 잘못된 정보였고 허구라는 사실을 통렬하게 보여준다. 다양한 사례들과 더불어 연관된 연구와 실험을 통해 새로운 결과를 도출해내고 착각을 인지하고 예방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