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포스팅 하나, 트윗 한 줄로 논쟁이 시작되고 아이폰과 안내방송, 광고판 등의 메시지가 사람들을 거리에 나서게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은 모이고 흩어지며 혁명을 창조해낸다. 이데올로기, 경험, 문화, 연령 등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없는 중심 없는 무리가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는 다중의 시대가 된 것이다.

 

독립매체 만들기, 1인 미디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기 등은 신급진주의의 특징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좋은 예로 평가받고 있다.

 

이미지_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제이슨 델 간디오, 김상우, 동녘..jpg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제이슨 델 간디오/김상우, 동녘.

 

최근 튀지니와 이집트 혁명의 승리의 중심엔 소셜 미디어가 자리하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부아지지의 분신을 전 세계에 알리며 운동의 불길을 당겼고, 인터넷이 막힌 상태에서도 시민단체들은 아날로그 방식을 이용해 연대를 이뤘다. 이번 혁명은 소셜 네크워크를 활용한 새로운 방식의 문화혁명으로도 불린다. 이제 대항 담론과 거친 연설만으로 혁명이 가능하던 시대는 가벼렸다.

 

안으로는 4대강, 복지삭감, 전세난, 물가불안정, 개헌과 같은 ‘대란’으로 활동가들의 창조성이 끊임없이 필요한 이 시대, 세상을 바꾸려는 활동가들은 어떤 방법으로 준비하고 대응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행동하게 만들까.

 

제인슨 델 간디오는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에서 21세기 급진주의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전달하는 방식 즉, ‘수사’를 꼽는다. 세상이 바뀌려면 무엇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야 하며,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선 활동가와 조직가의 수사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언어적, 비언어적 전략들을 제공하기 위해 쓰여진 이 책은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할 뿐 아니라 연설하고 논증하고 설득하고 글을 쓸 때 바로 적용 가능한 기본적인 수사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전달하려는 ‘내용’에 몰두하느라 전달 ‘방법’에 소홀했거나 더 나은 소통가가 되기 위해선 수사가 필요한 것이다.

 

전 진보신당 대표였던 노회찬. 그는 정치판을 뒤엎는 촌철살인의 어록을 갖고 있는 몇 안되는 정치인이다. 지난 2004년 대선에선 “불판을 갈아야 한다”와 같은 신선하고 날카로운 비유를 던져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움직였고, ‘웃음화법, 애드리브, 비유의 달인’ 등의 수식을 얻으며 예상보다 많은 표를 획득했다. 이후 그는 첼로연주, 점심 번개, 친절한 트위터 활동 등으로 ‘노동운동은 거칠다’라는 편견을 깨고 부드러운 진보의 재탄생을 알리고 있다. 그가 말하고, 행하고, 느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은 바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수사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과 효과를 기억하는 활동가들은 많지 않다. 수사는 억지로 꾸미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말보다는 행동이다” “메시지를 다듬는 것은 기만이다” “고함과 함성은 급진적 변화의 진실한 표현이다”와 같은 편견이 자리 잡고 있어 소통의 ‘방식’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미약하다.

 

이 책은 이러한 ‘신화’를 깨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선 수사학의 기원인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 수사가 소통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서술한다. 원래 수사학은 “설득하고, 추론하고, 분석하고, 나아가 현실을 창조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려는 활동가들의 목적과 충분히 연결된다. 실제로 지은이는 2000년 4월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항의운동 장면에서 혁명의 가능성을 엿 본 후에 본격적으로 활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현장에서 활동가와 조직가들을 만나며 ‘수사학’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68혁명’ 이후 등장한, 소통과 수사를 이용해 세상을 바꾸는 ‘신급진주의’이론을 확장, 실천해왔고, 집회나 모임에서의 연설, 토론, 논증을 분석해왔다. 그러면서 활동가가 어떻게 자신의 소통 능력을 개선해 냈는지 관찰하며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것이다.

 

책은 이어 대중연설을 비롯해 글쓰기, 설득, 논쟁, 권유 등 다양한 수사 전략을 분류해 각 상황에 필요한 지침을 제시하며 그 효과까지 예상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아무리 다양한 방식의 운동이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메시지 전달방식은 바로 글쓰기와 말하기다.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확실한지, 목표는 무엇인지, 청중은 어떤 사람인지, 연설장의 상황은 어떤지 등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주도면밀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가령 신문, 전자우편, 문자, 웹 등에 발표하는 ‘글쓰기’와 대중 앞에서 하는 ‘연설’은 분명히 다르게 준비해야 한다. 눈으로 읽는 글에서는 무엇보다 ‘첫 문장’에 신경을 써야 하는 반면, 귀로 듣는 연설의 연설문에는 숫자나 어려운 용어를 넣지 않는 게 좋고 몸을 활용하면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소통과 현실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수사학’을 활용해보자

 

지은이는 “언어는 곧 생각을 바꾼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언어를 바꾸면 생각도 바뀔 수 있다. 그는 활동가들이 언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자신이 목표한 운동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주로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설득력 있는 연설을 하는 활동가들은 어떤 단어들을 택하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 언어의 선택은 곧 가치와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에 따라 정치적 선택, 감정의 반응, 사회적 행위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또 권력을 위해 사람들의 이해를 곡해하거나 혼동시키는 언어를 분석함으로써 본래의 의미를 알리는 것 역시 활동가의 몫이라고 주장한다. 가령 미국 전쟁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부수적 민간피해’ ‘정밀무기’ ‘민주주의 확산’과 같은 단어에는 미국의 전쟁은 인간적이며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합리화가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아나키즘’ ‘공산주의’와 같이 부정적인 의미가 고정화돼 있을 경우에는 이 틀을 깨기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은이는 이와 함께 몸이 글이나 말보다 활용도가 높기 때문에 글이나 말주변에 자신이 없는 활동가들이라면 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좋다고 제안한다. 메시지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기, 노동자들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을 하기, 거리극이나 플래쉬몹 연출하기 등도 효과를 볼 수 있는 수사 전략이다.

 

지은이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욕망하며,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상상하고, 창조할 때 우리가 꿈꾸는 다른 세상은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