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교육의 문제는 아주 오래전부터 고질적으로 앓아온 가장 심각한 분야 중 하나다.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반면 가장 해결책이 먼 주제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의 여러 모순은 대중 스스로가 만든 것이고, 그 중심에 교육이 있다.

 

이미지_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황주환, 생각의나무..jpg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황주환, 생각의나무.

 

일선 교사인 황주환은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에서 이러한 교육현실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온몸으로 느낀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를 ‘신실한 교사’도 못 되고, 교육모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교가 얼마나 굴종과 억압의 공간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 학교가 바로 한국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에 절망한다.

 

지은이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점차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학생들은 단순한 가르침의 대상에 멈추지 않고, 지은이 자신을 일깨우는 존재들이다.

 

“치유는 자각에서 시작되기에…”

 

“나는 교육이론가나 학자도 아니고 신실한 교사도 못 된다. 그래서 사회를 분석하고 교육모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내 능력을 벗어난다. 그러나 학교가 얼마나 굴종과 억압의 공간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리고 그 학교가 바로 한국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에 절망하기도 한다.”

 

책엔 겉으로 보기에는 말썽 많고 반항하고 어두운 아이들이지만 결코 따듯한 연민을 놓지 않는 지은이의 시선이 녹아 있다. 보다 큰 문제는 학생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제대로 성장시켜주어야 할 학교라는 공간이 너무도 많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가난한 아이들을 향한 배려 없는 시선과 끊임없이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든가 학교는 즐겁고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니라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지은이는 어두운 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그가 인용한 노신의 이 글귀는 인상적이다.

 

지은이는 자신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향적이며, 중립을 믿지도 않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불려지는 것도 바라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지배의 논리’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보다 아름답고 말랑말랑한 이야기 속에서 감춰져버린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지은이가 들춰내는 우리 교육이 갖는 최대의 문제점은 바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훈련이 거의 없다는 것. 그는 우리가 질문하는 태도와 방법을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면서, 특히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터득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굳어버린 비판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학교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교에서 겪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를 말하고 있으며, 지은이가 교사가 된 후, 우리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이 변하게 됐는가를 말한 현장교사의 고백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