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수리논리학자, 과학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 사회비평가, 반전반핵운동가 등 수많은 수식어를 통해 표현되는 버트런드 러셀. 20세기와 21세기를 잇는 대표적 지성인 그는 한 세기를 살다가며 이 세상에 지대한 사상적 종적을 남기고 간 인물로 평가된다.

 

이미지_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버트런드 러셀, 이순희, 비아북..jpg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버트런드 러셀/이순희, 비아북.

 

“인류를 끝장낼 작정인가!” 러셀이 인류를 향해 마지막으로 던진 화두다. 반전반핵운동에 노년을 바쳤던 그는 과학의 발달에 자극받아 더욱 위력적인 대량 살상 무기들을 생산하는 국가들의 탐욕에 우려를 표했다. 21세기를 어떻게 상상하느냐는 물음에 그은 “카산드라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재앙을 예언하지 않을 수 없다. 카산드라의 예언은 실현되었다. 내 예언은 실현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답한 바 있다.

 

러셀은 특히 ‘인도주의’에 발을 딛고서 지배적 권위, 우상, 인습, 도덕 등과 과감하게 싸웠고, 그 치열한 싸움 속에서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았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그의 식견과 통찰은 시대와 공간을 넘는 밝은 빛으로 비유된다.

 

러셀의 삶 전체를 통틀어 관심을 갖고 실천을 통해 보여줬던 사상들이 요약돼 있는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는 그이 냈던 70여 권의 책들 중에서 작고하기 몇 주 전까지 검토 했던 것으로, 정치와 심리, 종교, 교육, 성과 결혼, 윤리 등 여섯 가지를 주제로 그가 생전에 고민했고 행동했던 것들이 정리돼 있다.  

 

인류에게 온정과 너그러움이 넘치길…

 

✔ 고통도 어리석음도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운명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혜와 인내와 달변이 머지않은 미래에 인류를 스스로 자청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리라고 확신한다. 물론 그전에 인류가 자멸하지 않는다는 전제에 말이다. (…)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공동체들이 불행을 겪는다면 그것은 그들이 불행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행복보다, 심지어는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무지와 습관과 신념과 열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위태로운 이 시대에는 불행과 죽음을 열망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 자기 앞에 희망이 펼쳐질 때면 분노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 내가 아는 바로는 인류의 대부분은 신을 믿지 않고 그로 인해 어떤 가시적인 처벌도 받지 않는다. 설사 신이 있다 해도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자들에게 노여움을 느낄 만큼 위태로운 허영심을 지녔을 것 같지는 않다.

 

러셀은 제1차 세계대전, 나치의 유대인 대량 학살, 냉전 이데올로기의 시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이유로 캐나다 등지로 이주당한 두호보르파, 제2차 세계대전, 히로시마 원폭 투하, 한국전쟁 등 인간이 인간에게 자행한 역사의 비극적 사건들을 목격했다. 탐욕이 부른 참상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했다.

 

러셀은 또한 인류의 자연스러운 진보를 가로막는 지배적 권위, 우상 숭배, 인습 등의 실체를 폭로하고 저항했다.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비틀린 진실에 맞서 과학적 탐구 결과 발견한 자신의 진실과 사회적 진실의 융합하기 위해 투쟁했다. 인류의 행복한 삶을 고민하고, 부조리한 사회문제를 비판하는 글과 방송을 통해 정의와 진실을 부르짖고 대중에게 행동할 것을 호소했다

 

책은 러셀이 1872년 5월부터 1972년 2월까지 거의 한 세기 가까운 세월을 살며 바라본 시대의 주요한 순간을 기록한 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글을 담고 있다. 이 안에 살아 숨 쉬는 그의 말들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명료한 메시지를 던져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