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의 소비 패턴은 점점 과시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양상을 보이며, 사치재 소비의 생산과 소비 규모는 전체 경제활동에서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른바 ‘사치 열병’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바 없는 이러한 열기를 이해하려면 ‘과시적 소비는 부도덕하다’는 사회비평가들의 단순한 비판을 넘어서야 한다.

 

이미지_ 사치 열병, 로버트 H. 프랭크, 이한, 미지북스..jpg *사치 열병, 로버트 H. 프랭크/이한, 미지북스.

 

로버트 H. 프랭크는 <사치 열병>에서 경제학적 방법론은 물론, 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의 증거들을 통해 과시적 소비의 본질을 파헤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합리적이고, 간단하며,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한다.

 

슈퍼리치들의 소비 습관은 대다수 사람들의 경험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일반인의 삶과 거의 관련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상층의 사치재 소비는 중위 소득자, 심지어 하위 소득자의 소비 패턴에 침투해 변화를 일으키는 선도력으로 작용한다. 사치 소비의 본질은 상대적 지위와 서열을 과시하는 것이다. 즉 물건의 효용 때문에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쉽게 구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구입하고 소비하는 것이다. 이런 소비 경쟁에서는 언제나 ‘남들보다 더 비싸고 희귀한 물건을 소비해야 한다’는 인센티브가 존재한다. 따라서 최상층에 있는 사람들이 더 비싼 물건을 더 많이 소비하게 되면, 그 바로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불가피하게 더 많이 지출해야 되며, 그 파장은 경제 사다리의 아래쪽까지 미치게 된다.

 

한편에선 사치재 소비가 방탕하고 퇴폐적인 것이라고 비판하는 반면, 또 다른 한편에선 경제적·정치적 자유는 소중한 것이며, 개인이 가장 합리적으로 자신의 소비를 선택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이에 대해 사치가 낭비적이고 퇴폐적이라는 비판의 독단성에 대해 경계하면서도 ‘사치재 소비가 도덕적으로 정말 중립적인가’에 대해선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과시적 소비의 또 다른 특징은 그것이 주는 만족에 우리가 신속하게 적응한다는 것이다. 가령, 더 큰 집으로 이사할 경우 처음엔 큰 행복감을 느끼다가 곧 그 집의 크기에 적응하게 된다. 반면 지은이가 ‘비과시적 소비’라고 분류하는 가족이나 친구와 보내는 시간, 긴 휴가, 직업적 자율성과 같은 것들은 그 만족감이 우리의 적응 능력보다 훨씬 오랫동안 지속된다.

 

심리학자들은 ‘주관적 복지’라는 개념으로 이러한 만족의 차이를 구분한다. 주관적 복지는 단순히 돈으로 계량되지 않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측정되는 실재하는 현상이다. 일례로, 소득이 절대적으로 낮은 수준에서는 주관적 복지와 소득 증가가 명백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즉 먹는 음식, 살 집 등 기본적인 삶의 조건들이 갖춰지지 않을 때는 소득이 오를수록 주관적 복지도 뚜렷하게 상승한다. 그러나 최소한의 주거와 영양이 제공되는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소득이 올라도 주관적 복지가 그다지 상승하지 않는다. 이는 이미 풍요의 단계를 넘어선 나라들에서는 소비액의 차이가 국민 복지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은 사치 소비를 다루는데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 된다. 과시적 소비에 쏟는 자원과 노력을 가족과 친구, 긴 휴가, 직업적 자율성 등 비과시적 소비에 투여한다면 우리의 주관적 복지는 훨씬 증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관적 복지가 모든 개인이나 사회의 최종적인 목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은이는 다만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양보하지 않는 한에서 주관적 복지가 개선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사치 소비를 억제하고, 우리의 현재 궤적을 수정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스마트한 해결책 ‘누진 소비세’

 

지은이는 사치소비와 관련한 다양한 원인과 배경을 소개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누진 소비세’를 제안한다. 개별 품목이 아니라 한 가정이 매년 지출하는 소비 총액에 근거하여 과세하는 것이다. 각 가정은 가장 필요한 것에 제일 우선적으로 돈을 쓰고, 일정 금액 이상의 소비에 대해 누진적인 세금을 물게 되므로, 과시적 소비의 총량을 줄이려는 인센티브를 가지게 된다. 무엇을 소비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소비하느냐에 따라 세율이 확실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누진 소비세는 사치 소비를 덜 매력적으로 만드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 사치품인가에 대한 정치적 논쟁을 벌일 필요도 없고, 우리의 경제적·정치적 자유를 침해하지도 않으며, 사치 소비에 대한 고통스러운 자기 부인(否認) 행위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소비세가 비주류의 아이디어인 것도 아니다. 소득세가 아닌 소비세를 지지한 경제학자들의 목록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애덤 스미스, 토머스 홉스, 존 스튜어트 밀, 데이비드 흄, 앨프리드 마셜, 아서 피구, 어빙 피셔, 존 메이너드 케인스, 밀턴 프리드먼, 마틴 펠드스타인, 케네스 애로, 로런스 서머스, 레스터 서로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경제학자들이 이 단순하고 우아한 아이디어를 극찬했다.

 

그런데 어떻게 개별 소비의 합을 구해 과세할까. 지은이는 이 문제 역시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가구가 소득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두 가지, 소비와 저축뿐이다. 따라서 소비는 가구의 소득에서 저축을 뺀 것으로 계산된다. 누진 소비세는 연방 조세법의 단 한 줄만 수정(즉 저축에 면세하는 것이다)해도 실행 가능하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에서 누진 소비세가 1995년 상원의 양당 의원들을 지지를 받으며 제안된 적이 있다. 무제한적인 저축 면세 세제(Unlimited Savings Allowance Tax)의 줄임말인 ‘USA세제’로 불렸다.

 

지은이는 책에서 무엇보다 과시적 소비 패턴을 바꾸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전반적인 복지의 하락이 아니라 상승을 경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측정되는 일인당 소득 증가(혹은 GDP)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주관적 복지는 증대될 것이라는 견지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