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자기계발서, 초대형 교회의 모순적인 설교, 동기 유발 강사들과 기업들의 커넥션, 세계를 재난에 빠뜨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매우 익숙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긍정주의’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 모두가 그 파생품에 지나지 않는다면?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긍정의 배신>에서 미소와 웃음, 포옹, 행복, 그리고 즐거움을 더 많이 보기 위해선 인도적으로 포장된 ‘긍정적 사고’라는 대중적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은이가 ‘긍정’에 대해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은 유방암 진단을 받고부터다. 암을 선고받고 비관의 나락으로 떨어져 마땅할 듯한 투병자들 사이에 의외로 낙관과 긍정의 에너지가 가득한 묘한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암이야말로 인생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알게 해 준 선물이라는 투병자들의 수기, 불행하다고 느끼면 죄의식이라도 가져야 할 만큼 ‘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일상적 충고들, 나아가 단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태도를 갖는 것만으로도 암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입증되지 않은 과학까지 결합해 ‘핑크 리본’과 ‘곰 인형’으로 상징되는 유방암 문화를 형성한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전미영, 부키

달콤하게 포장된 마약 ‘긍정주의’

좋은 일자리와 의료 서비스처럼 사회적 안전망이 더 탄탄하고 파티와 축제, 길거리에서 춤을 출 기회가 더 많은 곳이 내가 그리는 유토피아다.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가 충족된다면(이는 내 유토피아의 전제다), 삶은 영원한 축하 무대가 될 것이고 모든 사람이 무대 위에서 재능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희망하는 것만으로 그런 축복받은 상태에 이를 수는 없다. 우리는 스스로 초래했거나 자연 세계에 놓여 있는 무시무시한 장애물과 싸우기 위해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책에 따르면, 긍정 이데올로기는 시장경제의 잔인함을 변호한다. 낙천성이 성공의 열쇠이고 긍정적 사고 훈련을 통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덕목이라면, 실패한 사람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개인의 책임을 가혹하게 강요하는 것이 긍정의 이면이다.

백수 신세인 청년들이나 구조 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직장인이 제도의 불합리성과 사회 보장의 미비함에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자신의 긍정성 부족을 탓하고 동기 유발에 더욱 매진하게 만든다면, 이러한 긍정주의는 경쟁과 구조 조정이 일상화되고 시장에 모든 판단을 맡기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원하는 최적의 이데올로기가 아닐 수 없다.

긍정주의를 가장 환영한 곳은 무엇보다 기업계였다. 1980년대 이후 기업들이 다운사이징 국면에 돌입하자, 긍정주의와 짝을 이룬 동기 유발 산업은 한편에서는 직원을 통제하는 고삐로, 다른 한편에서는 해고 노동자의 불만을 다독이고 남은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는 수단으로 더욱 영향력이 강화됐다.

긍정주의의 활약은 기업계에만 그치지 않는다. 초대형 교회들이 바턴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2001년부터 2006년 사이에만도 주간 예배 참석자 수가 2000명 이상인 초대형 교회의 수는 배로 증가해 1210개에 달했다. 신복음주의가 전하는 설교는 ‘하느님은 사람들이 번창하길 바라신다’는 것이고 이를 시현하는 방법은 기도와 같은 고전적 수단이 아니라 긍정적 사고다.

이렇게 자본주의와 은밀한 커넥션을 통해 사회에 긍정의 힘을 만연시킨 긍정주의는, 결국 제 발등을 찍고야 만다. 2006년 미국에선 위험한 서브프라임과 알트-에이(Alt-A) 모기지가 전체 모기지의 40퍼센트로 늘어났으며 2007년 한 해에만 개인 파산 건수가 40퍼센트 급증했다. 이 모든 경고들은 별것 아닌 일로 치부됐다.

리먼브라더스의 고정자산 부문 글로벌 책임자였던 마이크 겔밴드는 2006년 말, 부동산 거품을 감지하고 CEO 리처드 풀드에게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풀드는 곧바로 그 비관론자를 해고했고, 그로부터 2년 뒤 리먼은 파산하고야 말았다.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 사회의 현실을 또 다른 시선으로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는 이 책은 긍정주의의 실체를 날카로우면서도 유쾌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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