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다양성의 전시장이자 자유주의의 요람인 런던은 마차가 다니던 19세기 시절의 도로가 아직도 그대로 있다. 오래된 거리의 오래된 건물 외벽에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을 기념하는 플라크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 그동안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세계사에 ‘최초’로 기록되며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다.

 

이미지_ 런던이 사랑한 천재들, 조성관, 열대림.jpg *런던이 사랑한 천재들, 조성관, 열대림.

 

런던을 무대로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여섯 명의 천재들을 통해 런던을 재발견하는 런던 예술 기행서인 <런던이 사랑한 천재들>은 비극적 희극의 거장 찰리 채플린를 비롯해 독설과 통찰력의 작가 조지 오웰, 역사를 바꾼 영웅 윈스턴 처칠, <피터팬>의 작가 제임스 배리, 선구적 페미니스트 버지니아 울프, 빈민을 사랑한 천재 찰스 디킨스에 이르기까지 런던 곳곳에 남아 있는 천재들의 흔적과 위대한 성취들을 통해 아름답고 유서 깊은 도시 런던을 들여다본다.

 

“런던은 그 자체가 영원히 매혹하고, 자극하며, 거리를 걸어다니게 하는 것 외에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나에게 희곡과 이야기와 시를 준다. 나는 오늘 오후에 그레이지 인 가든까지 핑커와 산책했다. 그리고 레드 라이온 스퀘어, 모리스 가문의 집을 보았다. 그리고 1850년대 겨울 저녁의 그들을 생각했다.” 런던은 버지니아 울프가 특히 사랑한 도시였다. 그는 여러 차례 런던 거리를 찬미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찬미했듯 영원히 매혹적이고, 감성을 자극하며, 많은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 런던은 오랫동안 세계의 수도로 군림해 왔다. 런던은 다양한 인종과 언어와 사상을 받아들였다. 유럽 대륙에서 변란이 있을 때마다 사고와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거나 반체제 활동을 하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다 건너 런던으로 몸을 피했다. 망명객 중에는 마르크스, 레닌, 프로이트 등도 있었다. 2차대전 중에 히틀러에 점령당한 프랑스, 네덜란드, 체코가 망명정부를 세운 곳이 바로 런던이었다.

 

✔ 채플린은 혼자 의상 창고에 들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의상실 창고 문이 열리고 한 인물이 걸어나왔다. 이제까지 어디에도 존재한 적이 없는 인물,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 ‘떠돌이’였다. 낡고 헐렁한 바지에 꽉 끼는 웃옷, 커다란 구두와 작은 중산모, 짧은 콧수염과 대나무 지팡이. 비애를 자아내는 희극적 캐릭터 ‘떠돌이’가 탄생한 것이다. 이후 할리우드 희극은 거칠고 조잡한 웃음에서 비극적 분위기를 띤 격조 있는 희극으로 격상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빈민가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찰리 채플린의 한웰보육원 순례를 시작으로 책은 여섯 천재들의 흔적을 하나하나 찾아나선다. 태어나고 자란 집, 첫사랑의 흔적, 단골 술집, 산책로, 묘지에 이르기까지 가는 곳마다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와 상처와 영광이 깃들여 있다. 이들의 삶은 결코 행복한 것만도, 영광스러운 것만도 아니었다. 궁핍과 고독, 혹평과 비난, 혹은 상처와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열정과 신념으로 자신을 극복하고 결국 인류에게 위대한 유산을 물려줬다. 찰리 채플린과 찰스 디킨스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결국 인류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거장이 됐다.

 

✔ 1931년 여름 오웰은 다시 런던에서 홈리스 생활을 시작했다. (…) 오웰은 여느 부랑자와는 달리 프랑스어로 된 발자크 소설을 읽었다. 프랑스어 소설책을 읽는 노숙자? 진짜 부랑자로부터 ‘위장 취업자’로 의심받기 좋은 상황이지만 당시 프랑스어 책은 포르노로 간주되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트라팔가 광장의 노숙자는 오웰의 작품에 여러 번 등장한다.

 

조지 오웰은 런던과 파리에서 부랑자 생활을 자처했지만 이로 인해 불멸의 작품을 우리에게 선사해 주었다. 버지니아 울프와 제임스 배리의 어릴 적 트라우마는 평생 그들을 괴롭히고 삶과 작품에 영향을 끼쳤지만 그들의 작품은 영원히 고전으로 남았다. 명문 귀족 출신인 처칠은 유복했지만 세계대전이라는 혼돈의 시기에 특유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과 불세출의 리더십으로 역사를 바꾼 영웅으로 거듭났다.

 

유서 깊은 도시 런던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뜨거운 예술혼을 불태운 거장들의 삶의 흔적을 속속들이 찾아 떠난 지은이 조성관은 직접 순례하며 찍은 런던의 풍광들, 천재들이 태어나고 살았던 집과 골목과 작업실, 그들이 즐겨 찾던 분위기 좋은 태번들, 고단한 영혼이 쉬고 있는 묘지들을 소개한다. 아울러 런던 여행은 빨간색 2층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도보로 다녀야 진정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여섯 천재들의 진짜 삶의 이야기, 그리고 신비와 낭만을 간직하고 있는 런던의 모습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는 이 책은 뼛속깊이 전해오는 그들의 고통과 기쁨, 영광과 좌절, 그리고 강렬한 예술에의 투혼을 느끼게 해준다.

 

[지데일리/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