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대 중반 정숙영, 그는 여행작가다. 여행작가란 직업을 갖고 있지만, 그래서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아 부러움을 사지만, 삼십 대에 접어든 뭇 미혼 여성들과 다름없이 ‘먹고사니즘’에 발목 잡힌 엄연한 생활인이다.

 

번역 일감을 갖고 떠난 여행이야기를 기록한 <사바이 인도차이나>에는 일에 대한 에피소드와 고민이 적지 않다. 배낭여행은 결국 이국의 해변에서도 돌아가야 하는 곳에서의 일을 한걸음 떨어져 생각하는 것이며 자신이 선 자리를 확인시켜주는 과정이다.

 

✔ 이십대 중반부터 삼십대 초반까지, 그러니까 이제 막 경력을 쌓기 시작한 나이의 한국 사람들이 장기 배낭여행이라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직업과 단절해야 한다는 것.

 

이미지_ 사바이 반도차이나, 정숙영, 부키.jpg *사바이 반도차이나, 정숙영, 부키.

 

지은이가 당초 집 앞 커피숍이 아닌 해외로 여행을 가는 것을 흔쾌히 결정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유명 작가나 할 법한 집필 여행을 간다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인터넷을 뒤지고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리고 가능한 곳을 찾았다. 동남아시아, 바로 인도차이나 반도의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네 나라였다.

 

✔ 내가 여행을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시간’과 ‘돈’이었다. 내 형편에 몇 달씩 돈을 안 벌고 비워 둘 수가 없다는 것. 그럼 답은 하나다. 안 비워두면 된다. 돈을 벌면 되는 거다. 어떻게? 일 싸 짊어지고 나가면 되는 거다. 소설이나 에세이에 보면 종종 나오지 않던가. 지중해가 보이는 근사한 별장 또는 저기 로키산맥이 보이는 산장에서 집필 작업에 몰두하시다 풍광 좋은 곳으로 산책을 가거나 창고에 쟁여두었던 비장의 와인을 꺼내 마시는 작가선생님 말이다.

 

지은이에겐 서울에서의 생활비면 동남아시에서 여유롭게 일하며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게다가 세상이 좋아져서 컴퓨터를 여는 곳이 내 방인 셈. 비로소 콘크리트 사무실에 갇혀 사는 직장인들의 염장을 지를 만한 이 야심찬 계획이 시작됐다. 머릿속에는 벌써 이국의 해변 카페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에 원고를 쓰는 그림이 떠올랐다.

 

✔ 빠이는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 모레가 더 좋아지는 곳이었다. 하루 두어 번 빠이의 골목골목을 느릿느릿 거닐며, 왜 사진 속의 빠이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는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이곳의 진짜 매력은 인공적인 표현수단으로는 제대로 담아낼 수 없으니까. 이 마을 구석구석에 골고루 잘도 배어 있는 특별한 에너지, 그것이 빠이의 매력이었다. 사람 팔다리에서 기운을 쪽 빼는 듯한, 그 느긋하고 나른하면서도 기분 좋은 에너지. 첫날 방문했던 그 레게 바 같은 한적한 흥겨움. 그런 에너지가 주는 매력을 가장 잘 느끼는 방법은,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한가로움, 이런 느긋함, 이런 게으른 평화를 도대체 뭐라고 하면 좋을까.

 

‘놀며 일하기’ 위해 번역 일감을 들고 오지에 가까운 마을을 찾아간 ‘생계형 배낭여행기’인 이 책엔 히피들의 느긋한 에너지가 가득한 태국 빠이, 저녁 6시면 칠흑 같은 어둠에 묻히는 라오스 씨판돈, 로컬버스 속에서 현지인들의 구경거리가 된 캄보디아 라따나끼리에서 겪은 한 글쟁이의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지데일리/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