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씨와 무섭게 번지는 전염병의 나라인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1968년부터 19년간 인술을 펼친 부부, 국교 단절로 인해 대사관도 없는 상황에서 1972년부터 23년간 아프리카 말라위와 레소토에서 목숨을 걸고 인술을 펼친 이, 에어컨 안에서 뱀이 기어 나오고, 자고 일어나면 신발 속에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와 보츠와나에서 1970년부터 30년간 인술을 펼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이, 1969년부터 31년간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사랑의 실천을 보여 줬고, 아베족의 노래를 들으며 아프리카식 죽음을 맞고 싶다던, 명예 추장이 된 이….


<한국의 슈바이처들> 한국국제협력단 지음, 휴먼드림 펴냄.


이들의 공통점은 ‘의사’라는 것과 지구촌의 가장 낮고 가난한 곳으로 가 그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의사로서 ‘보장된’ 부와 명예를 모두 버리고,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실천'을 보여 줄 수 있었을까.

 

개발도상국 가운데는 60년 전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많은 아이들이 여전히 배고픔에 허덕이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1년에 80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잘 사는 나라였으면 손쉽게 고칠 수 있는 폐렴이나 설사 등으로 다섯 살 생일을 맞기도 전에 죽어가고 있다. 아직도 30만 명이 넘는 어머니들이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문제로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은 채 숨을 거두고 있다.

 

이러한 가슴 아픈 현실이 계속되는 이유는 뭘까. 바로 가난한 나라일수록 의료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 조산사의 숫자가 약 2400만 명으로 추산이 되는데, 아직도 400만 명 정도의 의료 인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경제 상황이 안 좋은 나라일수록 상황은 더 좋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정부는 1968년부터 의료단을 파견했다. 의료단 파견은 우리나라의 우수한 의료 인력을 개발도상국에 파견해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현지 주민들에게 질병 예방, 치료, 보건환경 개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도주의적인 사업으로, 특히 우리나라 의사들은 주로 의료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파견돼 헌신적으로 지역 주민들의 질병 예방과 치료를 담당함으로써 현지 주민들의 건강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1968년 시작된 이래로 의료단 파견 사업은 2006년까지 16개 국가에서 16명의 의료단이 활동하는 등 일정한 규모로 사업이 진행돼 왔다. 


그러나 2007년 이후부터 열악한 개발도상국에서 의료 활동을 펼치고자 하는 의료 인력의 부족으로 그 수가 감소했으며, 그 결과 2008년에는 10여 명만 활동하게 됐다. 특히 1995년부터 의료단 파견 사업과 병행한 국제협력의사 제도를 통해 의료 인력 공급이 가능해짐에 따라 2008년을 마지막으로 의료단 파견 사업을 종료하게 됐다.

 

1968년부터 시작된 40여년의 이야기

"아시나요?"

 

<한국의 슈바이처들>은 1968년 처음 감비아에 정부파견의사가 나가면서 시작된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수없이 많은 지구촌 이웃들을 치료한 기록이자, 자랑스러운 한국인들의 삶의 궤적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내가 알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의사였다. 평생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수술과 치료를 하면서 살았고, 와인을 즐기는 로맨티스트였다. 1971년 아버지가 정부파견의사로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이 기억난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우리 집은 양계장을 방불케 할 만큼 온통 닭 천지였다. 아버지는 개인병원을 하셨는데, 가난한 환자들이 치료비 대신 닭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는 그저 ‘사람’만이 중요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미지의 대륙 아프리카로 떠났다. 가난한 외과의사 김정은 30여 년을 그렇게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와 보츠와나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버지는 소박하고 위대한 삶을 마쳤다. 나에게 아버지가 평생 쓰던 청진기 2대와 2,000달러의 유산을 남기고…” - 사진작가 김중만

 

안타깝게도 초창기에 파견된 이들 중에는 이미 유명을 달리했거나, 시간이 갈수록 관련 기록들도 사라져버린 실정이다. 책은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머나먼 남미의 산골에서 젊은 시절을 다 바쳐 인류애를 실천한 정부파견의사들에 대한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