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했지만 생활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땅을 빌려 열심히 농사를 지어놓으면, 땅주인은 냅다 그걸 가져가버렸다. 소박한 동시에 가난한 삶은 때때로 다툼을 가져왔다. 평화로운 마음을 갖기 위해 내려왔지만, 이를 유지하는 것은 생각대로만 되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호남고속철도 개발에 밀려 살 곳을 잃게 된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는 행복하단다.

 

  *촌놈 쉼표를 찍다, 송성영, 삶이보이는창.

 

<촌놈, 쉼표를 찍다>는 스스로를 ‘촌놈’이라고 칭하는 송성영과 그 가족이 직접 온몸으로 부딪치며 쌓아 올린 세밀한 삶의 기록이 담겨 있다. 자연과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애정, 아이와 같은 시선으로 대화하는 아버지로서의 풍모, 개발지상주의자들에게 던지는 진심어린 충고들을 이야기한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가벼웠습니다. 10만 원 벌이도 못했지만 엄청난 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밭 갈고 씨 뿌리고 수확하고 포장하고 배달하는 일을 놓고 손익계산서를 따진다면 도무지 계산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노동의 대가를 돈으로만 환산한다면 그 순간 자본에 먹히고 말 것입니다. 자본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을 반갑게 만날 수 없습니다. 고맙게 만날 수 없습니다. 사는 게 별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하늘과 바다, 숲, 논밭 등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촌놈 가족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밭을 갈고, 해 뜨기 전부터 돌 골라내고 쇠스랑질로 고랑 만들고 그러다가 땡볕 들면 시원한 개울물이 흐르는 사랑방에서 늘어지게 한숨을 잔다. 개와 고양이, 닭들과 신나게 한바탕 놀다가 시간이 되면 멱 감는 기분으로 땀범벅이 되어 다시 콩밭을 맨다.

 

아버지는 아이와 등교 시간에 ‘꼬마야, 꼬마야’ 줄넘기 놀이를 하고, 동네 꼬마와 차 한잔 마시며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머니는 여자아이들과 함께 시내로 놀러간다는 아들을 놀려댄다. 촌놈 가족들에겐 서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하고 자연을 느끼며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다.

 

굳게 닫힌 사춘기 아이들의 문 밖에서 마음 졸이는 부모님들이라면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라며 놀라워 할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이다. 아이 친구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했다가 불러주고, 그들과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는 것은 진심에서 나오는 힘 덕분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들은 가족과의 대화에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가뭄 끝 단비 같은 시원한 답을 해준다.

 

✔ 10년 넘게 이웃해 살면서 우리는 그때서야 할머니의 이름이 임봉순, ‘봉순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욕쟁이 할머니, 아니 ‘봉순이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 이름만큼이나 어여쁜 시절을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평생 가난을 이고 지고 살아왔던 봉순이 할머니에게도 분명 봄꽃 소식에 설레는 가슴 안고 산으로 들로 싸돌아다니던 아름다운 이팔청춘의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책은 사방에 핀 꽃들에 둘러싸여 밭을 갈고, 동식물들과 눈짓으로 대화하며, 적게 벌지만 적게 쓰기 때문에 그만큼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털보 농부와 그의 아리따운 아내, 명랑만화 주인공과 같은 두 아들, 아름다운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만드는 이 명랑 가족 이야기는 도시에서 바쁜 일상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쉼표 같은 휴식’을 선물하고 있다.

 

[지데일리/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