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적으로 몸을 흔들고, 끊임없이 씹는 동작을 하며, 발이 짓무를 때까지 벽을 발로 차기도 하고 머리를 쿵쿵 들이받는다. 동료를 해치는 과도한 공격성과 우울증, 식이장애에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자해를 한다. 아기코끼리를 물에 빠트려 살해하는 어미 코끼리도 있다. 이러한 증상들은 감금된 코끼리들이 보이는 주된 증상으로 ‘그들’은 정신과 의사들에게 만장일치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판정을 받았다. 말 못하는 저 코끼리는 몹시 아프고 슬프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었다.

 

*코끼리는 아프다, G. A. 브래드쇼, 구계원, 현암사.

 

올매그는 매우 복잡한 성격이며 예민하고 상처를 잘 받는다. 아조크는 유머 감각이 있는 장난꾸러기에 자랑하기를 좋아하며 모험심이 뛰어나다. 디카는 아마도 가장 상냥한 성격일 것이다. 매우 다정하고 민감하며 근본적으로 부드러운 성격이지만 마음속에는 굳은 의지가 있는 것 같다. 에도는 비교적 수줍음을 잘 타는 외톨이다. 리산주는 어린 코끼리들을 사랑하고 잘 보살피며 책임감이 있고 나이에 비해서 성숙한 편이다.

 

이 이야기는 데이비드 셀드릭 야생동물보호협회에 맡겨진 고아 코끼리들의 성격을 관찰한 것이다. 코끼리들은 제각기 독특하고 고유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지극히 코끼리다운, 즉 관계를 중심으로 가족과 동료와 큰 영향을 주고받는 사회적 동물의 특징을 갖고 있다. 이처럼 코끼리사회는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며 결속되어 있다. 집단 구성원들은 구불구불한 긴 코로 수시로 애정을 담아 서로 안부를 살피고 깊은 유대감을 확인한다.

 

오직 인간만이 생각하고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고정관념을 깬다면, 우리는 코끼리의 ‘입장’이 어떨지 상상할 수 있다. 우리가 누구인지, 코끼리는 어떤 존재인지, 무엇이 각각의 종을 특별하게 만드는지 신경과학과 심리학을 깊숙이 파고들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코끼리에 대해서 조금은 더 알 수 있다.

 

동물행동학자이자 심리학자인 G. A. 브래드쇼는 <코끼리는 아프다>에서 코끼리가 어떤 경험을 해왔는지, 현재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커다랗고 신비한 초식동물’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활하고, 기술하고 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신경과학 이론과 개별 코끼리의 행동 관찰을 통해 우리는 코끼리의 역동하는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지은이는 “코끼리의 이야기는 우리의 과거이며 동시에 안타깝게도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더 이상 자연에 대한 탐구는 ‘인간은 얼마나 다른가’의 명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자연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간이 다른 종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지를 깨닫고 감탄하게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결국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가는 우리가 바라보는 거울뿐 아니라 올매그, 아조크, 디카와 같은 코끼리의 얼굴에도 반영된다. “코끼리는 곧 우리이고, 우리는 코끼리”이기 때문이다.

 

✔ (코끼리의) 자해행위와 이식증을 고려할 때 정신분열장애로 판단할 수 있는 특징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분열증세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특징임에도 환자의 트라우마 병력을 고려할 때 이 진단이 꼭 들어맞는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 대한 가장 적합한 진단은 ‘마음이 완전히 부서졌다’ 또는 ‘산산조각났다’일지 모릅니다.

 

이 책은 코끼리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고 있지만, 인간에 의해 갇히고 다치고 길들여지고 전시되는 ‘우리 곁의 코끼리’에 대해 집중한다. 인간에 의해 극한의 생존에 내몰린 코끼리의 다양한 외상과 그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책을 찾는 지은이는 기술과 수치를 넘어 코끼리의 영혼에 대한 연민과 교감을 주창한다. 이러한 과정이 인간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시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많은 야생동물보호협회가 서커스, 동물원 등에서 죽기 직전까지 몰린 아기코끼리들을 구조해 건강한 청년 코끼리로 키워내 야생의 코끼리 가족에게 합류하도록 돕는다. 아기코끼리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마음과 신체에 심각한 충격을 받은 상태로 찾아온다. 보살핌을 받은 이들은 인간이 가족에게 한 잔인한 사건들을 용서하고 자신을 돌봐준 사람들을 또 다른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어른이 된 고아코끼리가 새끼들을 데리고 어린 시절 함께 지낸 인간 가족을 종종 방문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고 한다.

 

협회에서 구한 고아 코끼리들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건강하게 코끼리사회에 합류하게 된다. 하지만 도움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코끼리들은 어미와 가족의 상실 등의 트라우마를 되씹으며 고통받는다. 조련사를 죽이고 관객을 공격하고 동료에게 코로 채찍질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관련이 있는 심각한 공격성을 나타낸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만 끝내는 인간을 용서하는 너그러운 동물 코끼리, 이는 천성적으로 친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간이 야기한 코끼리 사회의 파괴와 생존에 대한 지속적인 위협은 코끼리들에게 살아남기 위해 더 공격적으로 더 난폭하게 변하도록 떠민다. 지은이는 인간이 코끼리들이 만드는 사회와 문화를 인정하고 몸과 마음이 병든 코끼리들을 가장 코끼리다운 방식으로 고통을 딛고 일어서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코끼리다운 방식은 바로 가장 인간적인 방법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 고아 코끼리들은 어미, 때로는 가족 전체가 인간의 손에 힘없이 쓰러져가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채 야생동물보호협회에 도착하지만 결국 야생에서 인간을 보호해준다. 인간이라는 가족을 위해 물소와 정면으로 맞붙고 막아주는 것이다. 코끼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절대로 잊지 않는데, 이 점을 고려할 때 코끼리는 놀라울 정도로 너그러운 동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위기에 처한 코끼리를 왜,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지은이의 목소리는 설득력 있고 사려 깊다. 그는 나아가 코끼리의 신경쇠약이 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묻는다. 인간이 코끼리의 코끼리성을 외면한 것은 ‘인간의 특별한 위상’을 흔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로 인해 동물들의 감정을 외면하고 억눌러 왔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집단 전체를 말살하는 등 잔인하게 학대한 코끼리가 끊임없이 보여주는 용서와 사랑의 손짓은 우리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고, 학대를 자행하는 인간의 상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우리가 입힌 코끼리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을 찾는 과정은 우리 인간의 문제를 발견하고 더듬어 가는 길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심리학을 넘어 코끼리의 내면을 바라보면서 인간과 코끼리,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살필 것을 주문하는 지은이는 말한다. 이제는 코끼리가 인간의 정체성과 의지에 의문을 제기해야 할 때라고.

 

[지데일리/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