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전 사태는 화석 연료 고갈과 온실가스 배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을 대안으로 삼자고 주장하던 전 세계에 심각하고도 엄중한 경고를 던져줬다.


그러나 비단 원자력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인류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경작 가능한 땅, 식수, 에너지, 공기 가운데 몇몇 자원의 보존량은 바닥이 드러난 상태이고 그 밖의 주요 자원들 역시 그 재생 속도가 아주 더디다.


*에너지 세계 일주, 블랑딘 앙투안 외, 변광배 외, 살림


원자력 발전의 치명적인 위협과 화석 에너지의 급속한 고갈이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눈앞의 현실로 닥쳐온 지금, 과연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이 심각한 에너지 위기에 대응할 수 있을까. 혹시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정말로 막바지에 이른 것이 아닐까. <에너지 세계 일주>는 이런 위기의식에서 출발한다.


‘대규모 수력 발전’에는 막대한 경제적 장점을 지니면서 사회적·환경적 요소를 세심하게 고려한 프로젝트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재생 에너지 가운데서 가장 나쁜 평판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댐의 목적이 단지 전력 생산만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댐이 저수지를 갖추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물의 흐름을 이용하는 댐도 존재한다. 이런 수력 발전소는 조상들이 사용했던 풍차처럼 높은 곳에 자리 잡고 흐르는 강물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한다. 물론 이때 전력 생산량은 물의 유량에 좌우된다. 그렇기 때문에 물을 가두는 댐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다. 이 두 가지 수력 발전 시스템의 목적은 매우 다르다. 물을 가두는 댐은 전력 사용량이 최고에 달했을 때를 대비하는 시설이지만 물의 흐름을 이용하는 댐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시설이다.

 

지은이 블랑딘 앙투안과 엘로디 르노는 직접 세계를 여행하면서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직시하기로 굳게 결심한다. 어렵사리 비자를 받아 입국에 성공한 앙골라의 유전에서 여행을 시작해 노르웨이와 스페인, 미국, 일본, 브라질, 세네갈,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등 17개국을 찾아갔고, 200여 명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에너지의 미래를 모색한다. 이 책은 이들의 무모하고도 대담한 여행의 기록이며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새로운 불씨의 여정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명문 국립 공과 대학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한 지은이들은 지구 에너지 위기에 맞서고자 ‘프로메테우스’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정부나 국제기구가 주도하는 에너지 생산 정책, 그리고 민간 환경 단체가 주도하는 에너지 절약과 환경 보호 캠페인이 가지는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다.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 맞아야만 하는데 지금까지는 여기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소비자의 선택과 그로 인한 변화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프로메테우스의 가장 시급한 목표는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에 관한 고급 지식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됐다. 세계 곳곳에 숨어 있는 그 지식을 직접 얻고 확인해 적용하기 위해 지은이들은 에너지 생산과 소비라는 두 가지 과제를 짊어지고 세계 일주를 떠난 것이다.


도시 내에서 자동차로 이동할 필요가 적어지도록 도시를 혁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도시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브라질의 브라질리아와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브라질리아는 자동차의 도시이다. 거리는 넓고 걷기에 불편하며 도시 전체가 구역화(주거 구역, 행정 구역, 호텔 구역 등)되어 있어 엔진을 이용하는 이동 수단이 없으면 쉽게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브라질리아는 자동차가 없으면 살기 힘든 도시이다. 이와는 반대로 프라이부르크의 중앙역은 도시 운송망을 관통하는 이상적인 관찰 지점을 제공한다. 장거리 노선 열차의 플랫폼을 굽어보는 곳에 위치한 가교와 역 주변 도로에서 5분만 가면 트램 승강장과 자전거 5,000대를 주차하거나 빌릴 수 있는 주차장이 나온다.


지은이들이 마주친 에너지 현장에는 지금까지 흔히 볼 수 없었던 낯선 에너지 활용법도 있었지만 전통적인 에너지를 새롭게 활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시장 가격에 비해 운송비가 너무 비싸 유전에서 태워 버리는 천연가스를 매장지로 재주입하면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도 그 가스를 판매할 수 있을 때까지 채굴을 미룰 수 있다.


더불어 지금까지 개발되지 않았거나 활용이 미미했던 에너지원도 지은이들의 탐구 대상이었다. 지열과 바람, 해류, 태양, 파도 등은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로서 어느 정도 인지가 돼 있지만 지은이들이 전하는 그 생산 현장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신기하고 다양하다.


물을 데울 수 있을 정도로 지열이 높아야만 발전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수력 발전을 하기 위해 반드시 댐을 만들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그 예다. 사탕수수 찌꺼기로 만드는 바이오디젤 연료, 쓰레기장에서 대규모로 생산되는 바이오매스 에너지, 식물의 엽록소를 이용해 수소를 합성하는 무공해 발전 등도 주변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는 새로운 에너지 생산의 모범적인 사례다.


지은이들은 에너지 생산과 맞물린 에너지 소비의 현장도 찾아간다. 그들이 말하는 합리적인 에너지 소비란 무조건 아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쇼핑을 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가는 대신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거나 가까운 시장에서 파는 제철 식품을 살 수 있다. 빗물을 받아 모으면 식수로는 쓸 수 없다고 해도 화장실이나 정원에서는 사용할 수 있다. 냉장고를 새것으로 바꾸기 전에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과 환경오염 정도를 보여 주는 에너지 라벨을 확인할 수도 있다.


이처럼 현명한 개인의 선택에 더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신기술 개발도 지구에 보탬이 될 수 있다. 효율이 높은 보일러, 단열이 잘 되는 주택, 전기나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은 편안함과 만족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지구를 걱정하는 친환경적인 신기술이다.


주저하지 마세요
바로 지금입니다


거리상으로만 15만9100킬로미터에 달하는 에너지 세계 일주를 하면서 지은이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지구 곳곳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열정을 보게 된다.


인도의 환경 운동가 브라마난드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면서 전기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세네갈의 환경 운동 단체 통신원 오스만은 사라져 가는 숲을 구하기 위해 20년간의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브라질 바이오디젤 산업의 아버지 엑스페디토는 사탕수수 찌꺼기로 만든 친환경 연료로 밀림을 구할 뿐만 아니라 가난한 농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작해 볼까?”


“그래, 도전이다!”


지은이들은 그들을 만나면서 ‘우리’가 아니라면 그 무엇도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여행을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행동할 시간은 바로 지금!”이라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그들의 용기 있는 여행에 동참할 것을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