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다른 생물을 정복하려는 타고난 욕구가 있는 것 같다.”

 

인간의 탐욕적인 식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생태계의 존엄성은 사라진 지 오래고, 오로지 상업성과 기술만이 논쟁의 중심에 버티고 있는 현실이다.

 

갇혀 지내야만 하는 동물들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질병을 감추기 위해 과용되는 항생제 문제, 배설물로 인한 환경오염 등을 들여다보면 땅과 바다라는 장소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일련의 흐름은 동일한 악순환 구조를 지닌 것이다.

 

*포피시, 폴 그린버그, 박산호, 시공사

 

한때 대양을 누비던 수많은 군집의 물고기들은 인간의 입맛 변화에 따라 멸종을 우려할 정도로 급격한 개체수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인간은 위험에 빠진 이들을 보존하거나 자연상태에서 늘리려고 하기보다는 상업적으로 유리한 종을 선택하고, 그들을 보다 빨리, 보다 많이 생산할 수 있는 과학기술을 접목시키기에 이르렀다.

 

바다를 헤엄쳐야 할 고기들이 그물망에 갇힌 채 항생제와 다른 생선으로 제조된 사료로 살을 찌우는 과정을 보면서 과연 인간이 해양을 정복하고,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걸까.

 

칼럼니스트이기 전에 오랜 경험을 지닌 낚시꾼인 폴 그린버그는 <포피시>에서 연어를 비롯해 농어, 대구, 참치 등 네 종류 물고기들의 기나긴 여정을 통해 한때 지구상의 여러 강과 바다를 주름잡던 이 물고기들이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어떻게 고갈되고 있는지, 그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 양식은 어떻게 기술이 개발되고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됐는지에 대해 낱낱이 밝힌다.

 

✔ 바다와 인간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30년 전만 해도 우리가 먹는 해산물은 거의 다 자연산이었지만 최근 만연한 남획과 전례 없이 발전한 생물공학 혁명 때문에 자연산 물고기와 양식 물고기가 복잡하고도 혼란스런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이제 대격변이 멀지 않았다. 우리의 아이들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던 자연산 물고기를 먹지 못할 우려가 짙다.

 

머나먼 대양을 헤엄치다 알을 낳기 위해 긴 여정을 거쳐 고향을 찾던 연어가 양식의 대상으로 선정되며 평생을 그물망 속에서 살아야만 하고, 일부 남아 있는 자연산 연어를 잡기 위한 알래스카 에스키모족의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을 돌아보게 만든다. 또 거대하고 장엄한 물고기인 참치가 횟감으로 유명해지게 된 원인이 비행기 연료를 절약하기 위한 한 방편이었다는 것, 일본인들이 참치를 먹기 시작한 건 미군이 주둔한 이후부터로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는 사실 등은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던 흥미로운 사실이다.

 

✔ 연어 양식의 효율성이 높아질수록 그 산업은 점점 더 많은 환경 문제를 야기했다. 개량하거나 인위적으로 교배해 사육시킨 연어 양식의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무수히 많은 연어가 시장에 유입되자 가격이 추락했고, 양식 업자들은 필사적으로 양식장의 규모를 키우고 연어 생산량을 늘려 그 손실을 만회하려고 했다. 물살이 세고 물이 깨끗한, 양식장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는 점점 더 귀해졌다. 결국 물의 순환이 잘 되지 않고, 연어가 다니는 곳과 가까운 위치까지 양식장이 들어서게 됐다.

 

지은이는 특히 인간의 자제할 수 없는 탐욕과 식성으로 인해 서서히 사라져가는 물고기들의 운명에 대해 우려한다. 영국 정부에서 권장하는 것처럼 일주일에 두세 번씩 생선을 먹어서 영양을 섭취해야 한다는 기준이 전 세계인에게 적용된다면 지금보다 바다가 서너 개는 더 있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 마크 쿨란스키가 말한 것처럼 대구는 ‘대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대구를 잡는 어부여야지 대구를 키우는 농부가 돼선 안 된다. 그리고 대구를 잡는 어부가 되려면 대구의 조건에 맞춰줘야 한다. 대구의 개체수 변화에 대한 역학을 이해하기 위해 대구와 협력해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건설해야 한다. (…) 산업화된 수산 양식이라는 단순하고 폐쇄된 시스템을 정복하는 대신 대구의 뭔가를 정복해야 한다면, 우리의 정보가 뛰어나다는 결정적인 증거, 즉 자연계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필요하다. 바다 보호 구역을 매년 이자를 벌어들이는 원금과 같은 곳이라고 설정해, 물고기를 잡지 않고 놔둬야 하는 어장을 얼마나 확보할 것인가 등을 결정할 수 있는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

 

지은이는 또 과연 우리는 그렇게 많은 생선을 꼭 먹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지금처럼 그렇게 낭비해가며 먹어치워야 하는 것인지, 생명과 지능을 지닌 대상인 물고기들을 단순히 우리의 식품으로만 치부하고 말 것인가에 대해 우리에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