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죽었다.” - 프리드리히 니체


20세기 종말을 선고받은 듯했던 종교가 9・11사태로 21세기의 문을 열었다. 이제 세계는 삶의 안녕을 확신할 수 없는 신들의 전장터가 됐다. 한국 사회 역시 근래 들어 종교에 이해와 소통 문제가 중요한 의제가 되고 있다. 더 이상 종교에 희망을 두지 못하고 고개 돌리는 이가 적잖은 현실이다.


오늘날 한국 종교는 왜 더 이상 사회 문제 해결의 열쇠와 등대 역할을 하지 못하고, 문제 자체로 변해 갈등과 반목의 주역이 돼 버린 걸까.


*종교 심층을 보다, 오강남, 현암사.

 

오랫동안 비교종교학의 균형 잡힌 지성으로 한국 종교의 오늘을 탐문해온 오강남 교수. 그는 그 까닭이 우리 종교와 종교인들이 ‘표층 종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종교, 심층을 보다>에서 ‘혼자만 잘살려는’ 자기중심적이고 미성숙한 표층 종교를 뛰어넘어 종교의 심층, 즉 깨달음(영성)을 찾은 세계 여러 종교의 선지자들의 삶과 가르침을 소개한다. 지성을 넘어 영성에서 ‘참나’를 찾은 그들의 이야기는 종교의 다양한 진면목을 소개하는 지식을 넘어 우리 종교 문화에 대한 경종과 통찰에 이르게 해준다.


과거 <예수는 없다>를 통해 예수와 그의 가르침을 심층 차원에서 새롭게 해석해 종교학계에 큰 파란을 일으켰던 지은이는 이 책에서 논의의 중심을 세계의 모든 종교로 확장, 그리스・로마 철학,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동아시아 사상(도교, 유교), 인도 종교(힌두교, 자이나교, 시크교), 불교, 그리고 한국의 지혜 등을 모두 조명한다. 아울러 세계 종교・철학의 창시자, 지도자, 실천자, 학자와 같은 세기의 스승들이 삶과 가르침을 통해 보여준 종교의 심층을 빠짐없이 다룬다.


지은이가 말하는 ‘종교의 심층’이란 무엇일까. 그는 종교의 본질적인 차원을 설명하기 위해 종교의 ‘표층’과 ‘심층’이라는 개념을 취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변화되지 않은 지금의 나를 잘되게 하려고 애쓰는 것이 표층 종교라면 지금의 나를 부정하고 죽여 더 큰 나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심층 종교다. 교리와 율법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문자적인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 표층 종교라면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의식의 변화,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얻는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이 심층 종교인 것이다.

 

또한 표층 종교가 신은 하늘에 있다고 믿는다면 심층 종교는 신이 내 안에도 내재하며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 곧 신을 찾는 길이다. 각 종교 전통에서 내려오는 경전들의 표피적인 뜻에 매달리는 문자주의를 넘어 그 상징과 은유, 속내를 알아차리면 이웃의 종교가, 아울러 다른 모든 종교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를 연장하면 신과 나와 내 이웃, 우주가 모두 하나로 통한다. 이것이 종교간 평화는 물론 인류의 공존을 위해서도 기본이 되는 철학 근간이다.


지은이는 실제 그리스도교의 발원지였던 서구 사회에서조차 표층적 종교 생활이 점점 줄어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70~80%가 표층 종교에 매달려 있음을 직시하며 심층적 종교관이 세계적인 추이임을 알린다. 그는 그리스 로마의 철학 사상가, 유대교의 지도자, 그리스도교의 선각자, 이슬람교의 성인, 동아시아의 사상가, 인도의 영성가, 불교의 선지자, 한국의 스승 등 60인을 선정해 그들의 삶과 가르침의 중심을 소개하고 있다.


“모든 종교의 심층에는 종교 자체의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경지가 있다”고 한 현대 지성인의 사도 폴 틸리히. 인도 사상, 특히 자이나교의 ‘불살생’에 영향을 받아 종국에는 모든 생명의 신성함을 깨쳐 ‘생명 경외’를 근간으로 자신의 삶을 밀고나간 알베르트 슈바이처. 20세기 최고의 유대 사상가로 도덕경과 장자를 접하며 그의 후기 사상의 핵심이 되는 ‘나와 너’의 ‘관계 철학’을 탄생시킨 마르틴 부버. 범종교적 에큐메니즘 신학자인 한스 큉, 해방신학의 아버지 구스타보 구티에레즈, 심층 종교의 영성을 문학으로 그린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한국의 참스승 류영모, 함석헌….


세상을 읽는 합리적 이성의 창에 금이 가고, 물신이 지배하는 욕망과 혼돈의 세상에서 평화와 궁극의 답을 찾는 이들에게 ‘영성’이라는 지도는 더욱 절실할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영적 지도자들의 헌신과 신념은 모든 종교의 심층 간엔 서로 갈등이 없으며 활짝 열린 진리가 서로 넘나든다는 진리를 전해준다.

 

[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