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도시와 건축물이 수백 년의 수명을 ‘자랑’하다가 사라지는 동안, 양피지와 종이에 쓴 내용은 굳건히 재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에 비하면 문자의 힘은 참으로 압도적이라고 할 수밖에.”

 

건축가 서현. 그는 ‘건축을 이루는 공간조직은 사회조직의 물리적 구현’이라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여행과 독서라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해 책 읽기를 권한다. 사소해서 허허롭고, 생소해서 재미난 자신만의 관심을 지나치지 말라고.

 

*또 한 권의 벽돌, 서현, 효형출판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당부를 오 년에 걸쳐 실천했다. 매주 신문 서평을 뒤적이고, 관심 가는 책을 찬거리 준비하듯 정리해 서점을 뒤진다. 낑낑 짊어지고 돌아와 더 이상 디딜 곳 없는 서재에 냉장고 정리하듯 차곡차곡 쌓아둔다. 그 흔한 텔레비전 하나 없는 거실에 면벽하고 앉아, 곶감 뽑아먹듯 오물오물 책을 읽는다.

 

아내의 잔소리도, 딸아이의 핀잔도 이 달콤하고 오랜 즐거움을 방해할 수 없다. 이렇게 잘 씹어 먹으니 모두 살로 가 버릴 게 별로 없다. 남는 건 꼼꼼히 발라먹은 생선처럼 서늘한 가시가 형형한 통찰과 촌철살인이다.

 

물론 하나의 갈래로 엮을 수 있는 식탁이 아니다. 전채(前菜)로 여자가 쓴 소설을 읽고 진중한 필치의 김훈을 곁들인다. 그런가하면 사료(史料)로써의 가치에 주목한 성서를 리처드 도킨스의 신과 버무려 올린다.

 

또 유시민과 우석훈이 바라보는 대한민국 사회, 굴곡 많은 구한말 우리 역사도 자장면과 짬뽕처럼 늘 빠지지 않는 메뉴다. 물론 왕성한 호기심과 소화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산책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거닐지 않으면 이 역시 오래 지속할 수 없는 작업이다. 산책할 때 뚜렷한 목적지를 두지 않듯, 그의 책 읽기는 뚜렷한 목적이 없다. 그렇다고 달리는 말 위에서 산을 보듯, 무심히 흘리는 법도 없다. 길가에 핀 이름 없는 꽃을 식물도감을 펴놓고 찾아보는 심정으로 꼼꼼히 살핀다. 그리고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꺼내 잊지 않게 순간을 기록한다.

 

그는 예일대학의 바이네케 고문서도서관에서 인류의 가장 소중한 퇴적층을 발견한다.

 

✔ 정확한 구조적인 지식이 없는 관찰자에게는 이 건물이 그냥 심심한 상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펼치기 전의 책이 그냥 네모난 종이뭉치에 지나지 않듯이. 그 상자의 역학적 거동은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니 업으로 삼지 않는 이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창문이 하나도 없는 내부는 어둡다. 불친절하도록 컴컴한 입구를 들어서면 건축가는 고개를 들라고 요구한다. 거기에는 건축가가 펼쳐놓은 지식의 역사가 장엄하게 드러난다. 얇은 대리석을 투과해 들어오는 햇빛은 대리석 결을 따라 타오르는 불길이 되어 건물을 둘러싼다. 그 복판에는 까마득한 천장에 닿도록 쌓아올린 서가가 있다. 이 세계를 받치고 있는 것은 인류가 한 줄, 한 줄 쌓아올린 지식의 퇴적층이다. 타오르는 불길을 뚫고 살아남은 지식의 퇴적층.

 

오늘의 그를 구축한 가장 작은 단위는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인 책 한 권, 한 권이다. 같은 모양과 색으로 쪽 고르게 찍어낸 벽돌로 쌓아올린 ‘하품 나는 건물’이 아니라, 마치 그의 모습처럼 보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색을 발하는 흥미롭고 매력적인 건물이다.

 

<또 한권의 벽돌>은 그가 그렇게 자신을 구축한 벽돌을 하나하나 펴놓은 그림과 같다.

 

[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