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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야생을 떠났을까 <동물원>라이프 2011. 7. 8. 21:16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놀러 갔던 곳, 말없이 그저 우아한 동물들에 감탄하던 곳, 나아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창의적인 피조물들이 모인 곳, 바로 동물원이다. 그곳은 자연과 생물, 인간의 행동과 심리, 역사와 문화가 담긴 살아있는 백과사전이나 다름이 없다.
6년여에 걸쳐 아프리카의 사바나, 파나마의 정글, 대도시의 동물원을 오가며 탐사한 내용을 고스란히 담아, 그곳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는 <동물원>은 놀랍고도 특별한 동물들의 생태와 삶의 역정뿐만 아니라, 동물원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인간들이 만든 도시의 정원,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의 삶을 통해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간 종의 꿈과 욕망 역시 살펴볼 수 있다.
*동물원, 토머스 프렌치, 이진선 외, 에이도스
이야기는 아프리카의 작은 왕국 스와질란드에서 보잉 747기를 타고 미국의 대도시로 향하는 열한 마리의 코끼리들로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밀렵꾼의 사냥, 국립공원 관리자의 강제 도태, 정치인들의 계략, 위험한 여행, 인간들의 이념 투쟁에서 살아남은 코끼리들이다. 야생초원을 자유롭게 오가며, 동족들과 더불어 살던 이들 코끼리는 왜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도시의 정원으로 가게 됐을까. 비행기에 갇혀 대서양을 건널 수밖에 없었던 이들 코끼리의 운명에서 지은이 토머스 프렌치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벌어진 갈등의 축소판을 보게 된다.
동물원은 세계 곳곳에 아직 광활한 미개척지로 남아 있는 야생에서 산 넘고 물 건너 온 동물들이 모인 곳이다. 아울러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창의적인 피조물들이 모인 곳이자, 야성을 잃은 동물들과 야성을 그리워하는 인간들이 맨 얼굴로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동물원은 ‘잃어버린 야생성에 대한 인간의 열망. 자연을 찬미하면서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 숲을 초토화시키고 강을 오염시켜 동물들을 멸종위기에 몰아넣으면서도 이들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싶어 하는 갈망’이 전시된 곳이다. 때문에 지은이는 동물원이 우리 인간의 진짜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자, 동물원에 들어온 동물들의 사연을 모아보면 역사와 문화, 인간심리와 무역에 대한 통찰이 담긴 백과사전이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침팬지 허먼의 어린 시절은 찰스 디킨스와 찰스 다윈이 공동 집필한 책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로우리 동물원의 침팬지 허먼을 이처럼 묘사한 지은이는 동물원에 사는 모든 동물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 역시 인간만큼 드라마틱한 인생 사연이 있다는 것.
지은이가 아프리카의 사바나와 파나마의 열대우림을 직접 찾아가 동물들을 추적하고, 동물들의 인지, 커뮤니케이션, 행동심리에 대한 수많은 자료를 모으고, 동물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육사들과 끊임없이 인터뷰하는 이유는 동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 이면을 보기 위해서다.
이런 탐사는 그저 단순히 보고, 감탄하고, 즐기는 동물들 이야기가 아니라, 보통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동물들의 내밀한 가족사, 야생에서의 삶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이렇듯 동물들의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지은이의 노력 덕분에 수마트라호랑이의 가족사에서 ‘한 편의 그리스 비극’을 보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냉혈동물들의 삶이나 수십 년간 밀렵꾼과 강제 도태를 피해 살아남은 스와질란드의 코끼리들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갈 수 있다.
어쩌면 동물원에 모인 동물은 인간이 아니면 서로 만날 일도 우리에 갇힐 일도 없을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꿈과 욕망이 투영된 동물원을 두고 여러 다른 시각차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동물보호운동가들은 동물들이 자유롭게 살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 비판하지만, 또 다른 측에서는 동물원이 자꾸만 멸종해가는 생물들을 보존하는 마지막 피난처라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이런 주장들에 대해 어느 한편이 옳다고 말하기보다는 우리가 가진 환상을 깨트리는 데 힘을 기울인다. 바로 우리가 가진 ‘야생’, ‘자연’, ‘자유’에 대한 환상이다.
동물들이 야생에서 살면 일 년 내내 마르지 않는 맑고 깨끗한 강물을 마시고, 완벽한 자유를 누리며 다 같이 조화를 이뤄가며 살아갈 수 있을까. 아프리카를 떠올려보자. 일반적인 생각처럼, 온갖 생물종들이 지평선 너머까지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광활한 미개척 대륙이 아니라 사람이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동물들을 보려면 우리가 있는 동물보호구역에 가야만 할 지경이다. 지은이는 묻는다. “다른 생물종들은 점점 멸종위기에 몰리고 있는데 인간 같은 특정 생물종만 마음껏 번식하고 소비할 권리가 있을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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