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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동산은 ‘富동산’라이프 2011. 7. 22. 23:01
[뒷산이 하하하]
<지데일리> 오늘날 우리네 삶은 마치 경주마의 질주처럼 앞만 보고 빠르게 달리는 속도전과 다를 바 없다. 이 속도전에 참가한 이들은 누구나 더 빨리 달리기 위해서, 혹은 낙오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앞뒤를 가릴 틈도, 옆을 살필 겨를도, 위를 쳐다볼 여유도 없이 오로지 달리기 위해서 달린다.
그러다보니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목적이나 지향점 같은 것은 오히려 이 속도전의 세계에서는 부차적인 것으로 보일 정도다.
결국 삶의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것이다. 이는 사람과 삶과 세상이 단순하지 않고 그만큼 복잡하고 심각해졌다는 것이고, 오늘날의 우리네 정신과 육체가 그만큼 메마르고 피폐해졌다는 뜻이다.
<뒷산이 하하하> 이일훈 지음ㅣ하늘아래 펴냄
속도전의 세상은 또한 ‘앞만 보고 사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이 ‘앞’ 중심의 시선은 뒤와 옆과 위와 아래 모두를 보지 못하는 맹점 또한 갖는다.
그러한 시선에서 ‘뒤’는 언제나 뒤처져서 보이지 않는, ‘상종 못할’ 열등한 것들의 무리를 지칭하는 단어가 된다. <뒷산이 하하하>는 오늘날 우리 모두 이 뒤에서 앓고 있는 ‘현대병’의 치유를 권하고 있다.
“앞산은 보는 산이지만, 뒷산은 동네를 품은 산이다.”
중견 건축가 이일훈. 그는 환경과 생태의 문제가 바로 사람과 삶의 문제라고 바라보는 이다.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세상과 사람의 관계도 살펴보면 멀고 가깝게 이어져 있듯, 그에게 뒷산의 존재 역시 그러하다.
뒷산은 환경이며 생태고, 자연이며 사회다. 그곳엔 문화도 있고, 야만도 있다. 과시와 소외, 무시와 질시, 독선과 배려가 함께 하며 절망의 증거와 희망의 단서가 동시에 존재한다.
지은이에게 뒷산은 그냥 뒷산이 아니다. 그곳은 자본주의적 일상의 ‘복잡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잔병’을 치유하는 ‘병원’인 동시에, 학창시절 보물찾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상상의 ‘창고’이며, 어쩌면 한 동네의 같은 약수터를 이용하면서도 이제껏 마주친 적이 없었던 그 누군가의 사연들이 묻혀 있는 역사의 ‘지층’이기도 하다.
사실상 뒤는 앞에 비해 ‘보이지 않는 부분이나 어둠’을 의미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뒷산’은 소외된, 소수의, 가난한 삶을 상징하는 산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적 일상의 삶을 염두에 두고 말하자면, 뒷산은 여성 빈민 노약자 장애인 등과 같은 ‘소수자’의 상징일 수도 있다.
나는 단순한 재미를 복잡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잔병을 아직도 앓는다. 동네 뒷산은 그 잔병을 치유하기 좋은 병원이었다. 학창시절 연필 한 자루도 타지 못했던 보물찾기를 뒷산에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뒷산에서 찾으려는 보물은 바로 우리이기도 한 누군가의 사연이다. 보물을 찾는 사이 심심한, 덤덤하고, 지루하고, 만만하고, 시시하던 약수터는 재밌고 뒷산은 맛있게 왔다. 무엇보다 큰 발견은 약수터에서 나오는 물은 맹물이지만, 뒷산이 빚어내는 이야기는 짜릿하다는 것이다. 뒷산은 아직도 캐지 못한 것이 더 많은 보물창고다.
지은이는 뒷산과 약수터를 잇는 안내문으로부터 각종 현수막과 자연적이지 못한 경고문을 거쳐 어느 돌 귀퉁이에 새겨진 낙서의 흔적에 이르기까지, 또 뒷산과 약수터를 오가며 남긴 그 모든 인간 욕망의 행적과 흔적들을 기록하고 되짚으며 성찰하고 있다.
약수터 뒷산은 참 빈약한 숲인데 그래도 산이라고 여러 종류의 텃새가 산다. 철새들은 서식환경이 더 좋은 곳을 찾느라 약수터 뒷산에는 거의 오지 않지만 텃새는 떠날 수가 없으니 서식환경이 나빠져도 죽을 때까지 버티며 살 수밖에 없다. 먹이사슬이 끊어지고 숲이 황폐해지면 흔하던 텃새도 보호조류가 되고 천연기념물이 될 것이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보이는 생태학적 관점과 인문학적 사유는 다만 글로 머물지 않는다. 그가 직접 찍어 골라 실은 사진들은 뒷산을 둘러싼 꼼꼼한 세태를 기록한 것이다. 그 사진들은 간혹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간혹 서글픔과 눈꼬리를 치켜세우게도 만들기도 한다.
친환경적 삶의 태도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는 지은이는 말한다.
“어떠한 앞산도 어딘가의 뒷산이고, 어떠한 뒷산도 어딘가의 앞산이다. 또 앞산과 뒷산은 옆구리 산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 그 옆구리는 바로 삶의 연장이라는 것, 그 어울림과 가꿈의 바탕인 뒷산에 오늘도 바람이 분다. 나는 그 바람을 껴안는다.”
<사진출처> 영화 '엘리자베스타운 Elizabethtown'(2005)
한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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