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종착지에서 책의 마지막 운명을 다루는 일은 폴 콜린스에게 책이란 무엇이며, 인생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한때 누군가의 꿈과 열정의 결정체였으나 지금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잊힌 책들에 대해 그는 연민과 애정을 느낀다.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 속 큰 고리들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열망과 성공과 실패, 사연들이 숨겨져 있기에.

 


<식스펜스 하우스> 폴 콜린스 지음ㅣ홍한별 옮김ㅣ양철북 펴냄


 

갓 돌을 넘긴 아들 모건에게 시골 생활을 경험하게 하고 싶다는 핑계로 지은이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가득 찬, 인구 37.5명당 서점이 하나씩 있는 영국의 헌책마을 헤이온와이에 정착하기로 한다. 


그곳은 폴 콜린스에게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그는 날마다 도서관에 출몰해 희귀본 서가를 들락거리는 책벌레이자 골동품 수집가였기 때문이다.

 

<식스펜스 하우스>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기발한 생각과 외로운 분투, 숭고한 열정, 역사 속에 잊힌 딱한 이상주의자들의 삶에 따뜻한 연민을 보내는 폴 콜린스가 책과 더불어 살아온 인생과 함께 헤이온와이에서 만난 책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은 폴 콜린스와 그의 가족이 헤이온와이에 정착하며 벌어진 일들을 다루는 흥미진진한 영국 생활 도전기이며 동시에 ‘책 자체에 대한 책’이다. 


책이 어떻게 쓰이고, 읽히고, 혹은 읽히지 않고, 어떻게 만들어지고, 절판되고, 파괴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이 아닌 책에 대한 이야기인 이 책은 묻히고 버려지고 잊힌 것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영국의 헌책마을 헤이온와이에서 지은이는 아무도 읽지 않는 헌책들을 읽으며 이 책들에 다시 생명을 부여한다.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한 무수한 책들은 모두 사정없이 버려지고 소각되거나 폐지처리장으로 간다. 운이 좋아야 간신히 누군가의 눈에 띄어 다시 팔린다. 


그러나 그 책들이 모두 쓰레기일까. 지은이에겐 그렇지 않다. 그는 심지어 실패한 책 안에 숨겨져 있어 무명의 깊은 바다 속에 침몰한 채로 영영 물 밖으로 떠오르지 못하는 멋진 문장에 대해서까지도 안타까움을 느낀다.

 

헤이온와이는 마을 전체가 수백만 권의 헌책과 헌책방들로 가득 차 있어 책 애호가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 있는 곳이다. 


지은이는 우연한 기회에 이 헌책마을의 설립자이자 자칭 헤이의 왕인 리처스 부스에 발탁돼 서점에서 미국 문학작품을 분류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해리엇 비처 스토와 <주홍글씨>를 쓴 다니엘 호손, <가지 않은 길>을 쓴 로버트 프로스트 등 베스트셀러 작가에서부터 이름 모를 무명의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상들의 이야기와 만난다.

 

천장까지 뒤덮인 책의 무덤 앞에서 책을 고르며 지은이는 끊임없이 ‘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한때 누군가의 꿈과 열정이 담긴 책, 그러나 이제는 책더미 속에서 누군가가 발견해 주지 않으면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책, 유품을 정리하는 경매에서 헐값에 팔린 책들, 값어치를 모르는 이들에게 감자 몇 알과 바꿔 얻어 온 책더미들, 불쏘시개가 될 뻔하다 운 좋게 여러 쓰레기와 함께 살아남은 헌책들 속에서 그는 깊은 연민과 애정을 느낀다. 자신의 책도 언젠가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막 책을 출간하려는 작가가 이런 곳에서 일한다는 것은, 임신한 여성이 영안실에서 일하는 것하고 비슷한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날마다 망각을 맞닥뜨린다. 대부분 책이나 작가는 비평의 포물선을 따라 지나간다. 대개 첫 번째 책은 ‘장래가 촉망’되었다가 두 번째 책은 ‘실망스럽기’ 마련이다. 세 번째 이후는 ‘괜찮은’ 책이고(독자들에게 무척 미안하지만 이 책은 두 번째니까 ‘실망스러운’ 책이다). 그런데 만약 책 한 권만 내고, 아니면 두어 권 정도만 내고 사라져 버린다면? 세계의 하드 드라이브에서 한자리도 차지하지 못한다면?

 

지은이는, 책의 생명력은 작가보다 더 길다고 말한다. 그것이 훗날 다른 사람들에게는 놀림거리로 남는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거나 누군가에게는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여겨질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 속 큰 고리들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열망과 성공과 실패, 사연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기억과 망각의 무수한 반복이 역사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역설한다.

 

책을 썼다는 사실에는 참 희한하고도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점이 있다. 책은 잊히기도 하지만 한편 놀라울 정도로 생명력이 질겨서 대개의 경우 작가보다 오래 남는다. 《주홍글씨》를 쓴 호손은 자기가 처음으로 출간한 소설 《팬쇼》를 어떻게든 없애 보려고 모두 사들여서 태웠다. 친구나 친지들에게 준 책도 다시 빼앗아 왔다. 누구에게도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내조차도 호손이 죽기 전까지 그런 책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호손은 성공하지 못했다. 몇 권이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호손은 죽었지만 오늘날 《팬쇼》는 여러 가지 판본으로 나온다.

 

군데군데 숨겨져 있는 ‘책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을 읽는 재미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기가 바로 지은이가 그의 첫 작품인 <밴버드의 어리석음>의 출간을 앞두고 있던 때였기 때문이다. 


영국에 살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편집자와 메일로 제목, 교정, 표지 문구, 마케팅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다. 덕분에 책의 죽음과 더불어 책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책의 가치를 묻는 지은이의 태도는 헤이온와이에 정착해 살아가는 그의 생활 방식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준다.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는 바로 영국 문화의 단면을 엿보는 것에 있다. 


시종일관 소심하기 짝이 없는 불평을 하지만 영국에 대한 그의 시선은 따뜻하고 위트가 넘친다. 날카로운 통찰력과 유머로 가득 찬 그의 글을 읽다보면 영국 문화의 단면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지은이와 그의 가족들은 과연 영국에 무사히 정착할 수 있었을까. 애석하게도 아니다. 첫 저자 낭독회는 실패로 끝나고, 여권을 분실하고, 벽이고 바닥이고 모두 고쳐야 살 수 있다는 감정 평가를 받은 식스펜스 하우스에 대한 기억을 뒤로하고 그는 다시 미국 시민으로 돌아온다. 


그렇지만 그의 말처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떠올릴 수 있다. 바로,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아름다움’을.


한주연기자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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