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일을 걱정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현대인들에게 ‘꿈’이란 단어는 때때로 추억이나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 현실감으로 단단히 무장된 젊은이들 앞에 10년째 세상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꿈을 좇아 중국을 비롯해 일본, 영국, 에티오피아를 넘나들며 공부 유랑 중인 한 여인이 있다.

 

문화기획자 윤오순. 그는 나이와 경제 상황 등 모든 것이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꿈인 공부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꿋꿋이 버텨나가는 사람이다. <공부 유랑>은 그가 서른의 나이에 꿈을 위해 훌쩍 떠나 유학 중에 흘린 땀과 눈물, 그리고 꿈을 향한 열정 등을 담아낸 유학기이자 꿈 노트다. 학비 조달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서 출발해 유학지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까지 10여 년간의 유학 생활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놓고 있다.

 

이미지_공부 유량, 윤오순, 해냄.jpg *공부 유량, 윤오순, 해냄

 

✔ 꿈이란 게 신기하다. 계속 같은 꿈을 꾸다 보면 어느새 그쪽으로 길이 열리고 꿈을 향해 한 발짝 다가선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꿈만 꾸고 만다면 결국 꿈은 꿈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나는 머릿속에 떠다니는 막연한 꿈을 시간이 날 때마다 나만의 꿈 노트에 적어둔다. 습관처럼 미래를 상상하며 적어보는 노트에는 짧게는 내일, 길게는 몇 십 년에 걸쳐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 빼곡히 적혀 있다. 활자화된 미래의 꿈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뛴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증권회사에 취직해 월급 타는 재미로 살아가던 지은이는 어느날 자기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란 고민에 빠진다. ‘공부’에서 길을 찾기로 결심한 그는 당차게 회사를 박차고 나와 대학에 들어간다. 그리고 졸업 후, 이미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무작정 중국 대륙으로 연수를 떠나고 그날부터 그의 삼 대륙에 걸친 파란만장한 공부유랑이 시작된다.

 

이 책은 현재 영국 유학지에서의 단상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 에티오피아에서의 유학생활을 풀어나간다. 현재 지은이가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영국 엑시터 대학에서의 유학 생활과 연구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내용부터 중국으로 첫 유학을 떠나 겪은 황당하고도 재미난 사건들이 전개된다.

 

✔ 학교 가는 길에 약국을 볼 때마다 오늘은 돌아갈 때 잊지 않고 수면제를 사겠다고 마음먹고는, 집에 갈 때는 수업 시간에 왜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하는 자괴감에 빠져 약국에 들르려던 계획은 까맣게 잊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는 역시나 과제와 각종 신청서 처리에 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수면제 살 기회를 놓쳤고, 어느새 난 졸업을 해버렸다.

 

이어 본격적으로 학위 과정을 시작한 일본 유학에 관한 에피소드와 함께 좁은 기숙사에서 학비조차 마련하지 못해 끙끙대는 유학생의 애환도 절절하게 그려진다. 또 현장 조사차 떠난 에티오피아에서의 에피소드로 탄피를 가지고 수집해 오려다 공항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연 등 순탄하지 않은 오지에서의 유학기가 소개된다.

 

✔ 사실 아무도 내게 졸업하면 무엇을 하겠냐고 묻지 않는다. 결혼하지 않냐고 묻지 않는 것만큼이나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2011년 봄부터 에티오피아의 커피 산지에서 6개월간 현지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돌아와서는 부지런히 논문을 쓸 테고, 이변이 없는 한 1년 후에는 논문이 나올 것이다. 박사 학위가 공부의 최종 목적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마무리하고 싶다. 그 이후에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학생으로서 하는 공부는 당분간 안 할 것이다. 아마 70이나 80살쯤 되어 그때에도 건강하면 남미나 동유럽 어느 나라의 대학에서 다시 대학생이 되어 공부하고 싶다. 내가 이런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알면 충격을 받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서른에 공부 유랑길에 나서 이미 마흔이 훌쩍 넘어 버린 지은이. 하지만 그는 일흔, 여든이 되어도 계속해 새로운 공부를 해나가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도 잊고 있던 자신만의 꿈 노트를 다시금 꺼내볼 것을 주문한다.

 

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