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상처만을 남기고 떠난 사람, 홀로 세상에 던져진 듯한 처절한 외로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 부조리한 현실…. 이러한 것들을 포용할 수 있을 만한 아늑한 마음.

 

‘J’라는 익명의 존재를 향한 서간체의 형식을 띠고 있는 산문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는 ‘J’를 통해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대한 원망을 누그러뜨리게 되고 한층 더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J'가 누구인지 밝히지는 않지만 ‘나’의 과오를 감싸주고 다독이며 사랑하는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다.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오픈하우스

 

✔ 꿈꾸는 것, 그것이 이루어지든 그렇지 않든, 그 상상 속에서 저는 가끔씩 행복을 느낍니다. 덜컹덜컹 단조로운 기차 바퀴의 파찰음이 심장의 고동처럼 들리고 그 단조로움으로 우리는 편안해집니다. J, 기차는 종이책과 닮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오래되고 얼마간은 비효율적이지요. 그래도 그것은 우리를 편안하게 하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J, 저는 이제 느리고 단순한 것들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지은이 공지영은 전작인 산문집 <상처 없는 영혼>을 발간할 당시, 들이닥치는 고통 앞에서 어찌할 줄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십 년 후에 발표한 이 책을 집필하면서 그러한 고통 역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긍정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상처받고 아파하는 이들을 위로하기 이전에 작가 자신이 위로받고 희망을 얻은 매개체라고도 할 수 있다.

 

✔ 이제 아이들의 엄마로서, 사회의 중년으로서, 내 아이들뻘 되는 젊은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괜찮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어떻게든 살아 있으면 감정은 마치 절망처럼 우리를 속이던 시간들을 다시 걷어가고, 기어이 그러고야 만다고. 그러면 다시 눈부신 햇살이 비치기도 한다고, 그 후 다시 먹구름이 끼고, 소낙비 난데없이 쏟아지고 그러고는 결국 또 해 비친다고.

 

어쩌면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는 듯 하지만 책엔 그 진정성이 어려 있으면, 글에 담겨져 있는 내면의 고백과 성찰은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세 아이의 엄마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지은이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엔 학창 시절 시인이 되기를 꿈꿨던 지은이의 바람을 추억하는 듯, 40여 편의 시가 소개되고 있다. 기형도의 <빈 집>, 김남주의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존 던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와 같이 시공을 초월해 사랑받는 시들을 함께 담고 있다.

 

✔ 저는 처음으로 일기장에 그렇게 썼습니다. 세상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그러니 눈을 감지 말고, 책장을 덮지도 말고, 멈추지 말고, 앞으로 간다… 앞으로 가는 길이 아파도 간다… 너는 소설가이고, 그래서 고맙다 지영아, 하고.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세상과 삶에 상처받은 모두를 껴안으며 이제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들을 용서하고 화해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