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은 서양 신화에 길들여진 우리 아이들에게, 이 땅 백성들의 고난과 승리가 진하게 담긴 우리 신화를 돌려준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우리 옛이야기의 뿌리, 거기서 뻗어 나온 큰 줄기와 작은 가지들을 깊게 살펴보고 있는 <옛이야기 되살리기>는 옛이야기 가운데 무엇을 가꾸고 무엇을 쳐낼 것인가, 곧 옛이야기를 ‘어떻게 다시 쓸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옛이야기 되살리기, 서정오, 보리

 

흔히 ‘다시 쓰기’라고 하면 작가가 아니고서야 상관없는 얘기로 여기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옛날엔 이야기를 누구나 ‘말’로 자연스럽게 퍼뜨렸을 것인데, 이젠 사실상 ‘글(책)’이 그 구실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옛이야기를 다시 ‘쓰는’ 사람, 써 놓은 것을 ‘고르는’ 사람, 잘 골라서 ‘들려주는’ 사람 모두가 이 시대의 옛이야기 전승자가 되는 셈이다. 이 책은 그 책임을 짊어진 모든 어른들에게 보내는 제언이다.

 

그렇다면 옛이야기를 다시 쓸 때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 할까. 지은이가 그 기준으로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는 것은 ‘민중성’이다. ‘약자 편들기’ ‘인습과 도덕의 굴레 벗기’ ‘현실 바로 비추기와 뒤집기’ ‘권세와 힘에 대한 풍자’ ‘거침없는 해학’ 등으로 대표되는 민중성은 옛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이며, 거의 전부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옛이야기는 그야말로 ‘백성들의, 백성들에 의한, 백성들을 위한’ 이야기인 것이다.

 

민중성을 굳건히 지킨다면 반대로 버려야 할 것은 분명해진다. 반민중성, 곧 ‘약자 놀리기’ ‘장애 비웃기’ ‘여성 깔보기’ ‘강요되는 효도’ ‘떳떳하지 못한 꾀’ 같은 전근대적 모습들이다.

 

지은이는 애초에 반민중성을 띠고 있거나, 다시 쓰는 과정에서 민중성이 어그러진 이야기들을 사례로 들면서 알기 쉽게 설명한다. 아울러 정신분석학을 동원해 옛이야기를 해석하는 서양 이론들은 ‘약자의 편에 서고 약자가 승리’한다는 민중성의 핵심을 간과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은 또한 민속자료로만 묻혀 있던 우리 말신화(구전신화)를 옛이야기 안으로 품어 안을 것을 제안한다. 말신화는 대부분 무속신화로, 거의가 굿판에서 태어나 굿노래(서사무가)에 실려 전해졌다. 그러다 보니 ‘민담’이나 ‘전설’과는 다르게 ‘이야기’로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은이는 ‘민담, 전설, 신화’로 나누는 구분법 역시 학자들이 나중에 편의상 만들어 낸 것이지, 당시 백성들에게는 다 똑같은 이야기일 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말신화는 옛이야기의 중요 조건인 민중성과 서사성이 풍부하므로, 옛이야기로 다시 쓰이고 읽힐 자격이 충분함을 증명해 보인다.

 

말신화는 지금껏 글신화(문헌신화)에 밀려 더더욱 빛을 보지 못했다. 글신화는 대부분 건국 신화로, 나라를 세운 위대한 영웅들 이야기다. 그에 반해 말신화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백성들이 고생 끝에 결국 신으로 올라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 여기 나오는 신들은 서양 신화의 신들처럼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신은 끝에 가서 사람에게 신성을 주려고 잠깐 나타나며, 사람 위에서 군림한다기보다 같은 자리에서 함께하는 느낌이다.

 

이 책은 옛이야기 속 쉽고 감칠맛 나는 우리 입말, 민속자료로 묻혀 있는 무속신화 이야기도 함께 담으면서, 이미 있는 이야기를 대충 손질하는 일쯤으로 오해하기 쉬운 옛이야기 다시쓰기를, 여러 각도에서 되짚어 보는 기회를 전해주고 있다. 특히 민중성이 투철한 우리 말신화를 집중 조명하고, 어떻게 되살려 다시 쓸지 뚜렷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