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가 산성이라 저절로 부스러지는 속성이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퍼져나갔다. 그 중심에 있던 컬럼비아대학교 도서관 사서 패트리샤 바틴은 마이크로필름을 도입해 책과 신문을 ‘단두대’로 보냈다. 


일명 ‘제본풀기’로, 책장이 쫙 펼쳐져 효과적으로 촬영할 수 있도록 책등을 따라 쪼갰던 것이다.


보존접근위원회(Commission on Preservation and Access) 베르너 클랩 회는 도서관자산위원회에서 ‘이중접기’를 실시했다. 장서들의 사망률을 추산하기 위한 이 이중접기는 종이의 모서리를 앞으로 180도 접은 후 뒤로 다시 접는 것이다. 


이렇게 두세 번 이중접기를 한 뒤에 종이가 찢어지면 그 책은 부스러지기 전에 마이크로필름으로 대체했다.


* 책의 미래, 로버트 단턴, 성동규 외, 교보문고


이렇게 영향력 있는 몇몇 사서들의 적극적인 마이크로필름 작업 결과, 수백만 부의 신문과 책이 사라졌다. 


지난 1968년부터 1984년까 미국의 의회도서관 보존과 마이크로필름 사무국 9300만 쪽을 촬영했고, 1000만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닌 지적 자산을 내버렸다.


문제는 마이크로필름이 종이책보다도 보존률이 낮다는 것이다. 영구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프레임에는 흠집이나 기포가 생겼으며, 점점 흐려져 글씨도 읽을 수 없게 됐다. 


찢어지고 쭈그러들고 곰팡이가 피고 악취가 나며, 필름 한 릴 전체가 녹아서 딱딱한 셀룰로오스 덩어리로 변해가고 있다.


‘책의 역사가’로 불리고 있는 로버트 단턴은 ‘전자책’이라는 책의 미래를 무조건 장밋빛으로 보거나,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명목으로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는 <책의 미래>에서 구글이 하버드대학교 도서관을 비롯한 4개 대학 도서관의 장서들을 전자책으로 전환해 서비스하고자 했던 ‘구글 도서검색(현 구글 북스)’을 배경으로, 전자책으로 대변되는 책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종이책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논의는 종이책이 일반 독자들에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구글 덕분에, 학자들은 수백만 개의 웹사이트와 전자 텍스트를 통해 검색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발췌하면서 자료를 광범위하게 연결할 수 있다. 반면에 좋은 읽을거리를 찾는 사람은 책 한 권을 골라서 쉽게 휙휙 넘겨보고 종이 위에 잉크로 새겨진 말들의 마법에 빠져들 수 있다. 컴퓨터 스크린은 인쇄된 종이만큼의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인터넷은 고전적인 코덱스로 변환될 수 있는 데이터를 전달한다. 인터넷은 이미 주문 인쇄를 번성하는 사업으로 만들었고 컴퓨터를 통해 책을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컴퓨터가 현금자동지급기처럼 작동해서 로그인하고 주문하면 인쇄되어 제본된 책이 나오는 것이다. 아마도 언젠가 2000년 전의 코덱스 페이지처럼 한 손에 쥘 수 있는 스크린으로 책을 읽으며 눈이 즐거워할 날이 올 것이다.


2007년 시작된 ‘구글 북스’는 무한한 인터넷 공간을 무대로 1000만 권이라는 경이로운 숫자의 책을 디지털화해, 언제 어디서든 자유자재로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책 유토피아를 꿈꿨다. 


이는 종이책과 전자책의 대결이라는 아직 답이 정해지지 않은 명제에 커다란 전환점이 돼준 사건이었다.


하버드대 도서관장인 지은이는 자신이 직접 기획한 전자논문 프로젝트 구텐르크-e에서 대학 연구자들을 위한 값비싼 지식을 더 평등하게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유통과 제작 등에 혁명을 가져온 전자책이 그 해답이 돼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구글의 도서검색 역시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가장 거대한 21세기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되길 기대한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책의 대중화를 이끌어 사람들을 계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면, 21세기에는 전자책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것이다. 


그렇지만 구글이 수익을 좇는 일반 기업인 이상, 그들에게 지나친 권한을 주는 것이 언젠가 정보를 독점하고 정보제국주의를 만들어 사람들을 지배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는 이러한 기대와 우려를 과거와 현재의 흔적에서 꼼꼼하게 짚어낸다.


“현재의 문제들과 씨름을 하면서
미래를 내다보려고 한다면
과거를 연구해서 파악해야 한다


지은이는 자신의 믿음대로 이 책을 과거, 현재, 미래의 세 부분으로 나눈다.


우선 ‘미래 파트’에서는 전자책이 가져올 지식 혁명을 꿈꾼다. 하이퍼링크를 통해 쉽고 빠르게 관련 도서를 찾아볼 수 있으며, 작은 단말기에 수십, 수백 권의 책을 담아 가지고 다닐 수도 있다. 


동시에 구글 북스로 인해 문제화된 정보 독점과 저작권 없는 도서들의 관리 문제 등 개방의 원칙과 기업의 이익이 어떻게 상충해서 서로 이익이 되는 미래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고민한다.


‘현재 파트’에서는 최근 출판계에서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 ‘종이책의 죽음’에 대한 문제를 되짚어보며, 수요가 있는 도서 위주로 흘러가 다양성을 헤치고 있는 현재 출판시장에서 전자책이 해법이 되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또 지은이가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 전자논문프로젝트 ‘구텐베르크-e’의 과정을 보여주며 전자책 시대를 체험할 수 있다.


‘과거 파트’에서는 마이크로필름이 가져온 종이대학살 사건을 언급하며 종이책 보존을 다시 한 번 역설했다. 


또한 현대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알 수 없는 초본 및 필사본의 가치, 자신만의 독서스타일을 정리해둔 ‘비망록’ 등의 책과 독서의 시장을 발전시켜온 역사적 발걸음들을 소개하고 책의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저자, 출판사, 인쇄업자, 운송업자, 서점, 독자의 입장에서 책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전자책’은 인쇄된 코덱스와는 달리 피라미드 모양의 여러 단계로 배열되어 있다. 독자들은 텍스트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고 가장 높은 단계를 대충 훑을 수 있고 일반 논문처럼 읽을 수 있다. 그 텍스트가 마음에 들면, 인쇄해서 책으로 제본할 수 있고제본기는 컴퓨터와 프린터에 장착될 수 있다, 사용자 정의대로 단행본 형태로 간편하게 공부할 수 있다. 특별히 관심을 끄는 텍스트를 찾게 되면 아래 단계에 있는 추가적인 에세이나 색인을 클릭할 수 있다. 독자들은 책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문서, 참고서적, 역사기록, 도해, 배경음악 등 내 주제를 완전히 이해하도록 내가 제공하는 모든 것들 속으로 샅샅이 계속 파고들 수 있다. 결국 독자들은 그 연구주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이다. 연구주제를 통해 자신만의 길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횡적으로, 종적으로 또는 대각선으로, 전자적 링크가 연결되어 있는 곳이면 어디나 클릭해서 읽을 것이다.


지은이는 미래, 현재,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일관되게 자신의 종이책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이런 그의 취향이 반드시 전자책에 대한 거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종이책에 대한 취향과는 별개로, 지식의 더 많이 전달하고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게 해주는 전자책의 가능성에 대해 매우 고무적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인 책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기 위해 책이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정립하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가야 할지에 달려 있다고 결론짓는다.


한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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