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을 맡은 영화 <스파이 게임>(2001)을 보면 CIA 고참 요원인 레드포드가 자기 사무실이 수색당하기 전에 비밀 서류를 불태우면서 비서에시 이런 질문을 한다. “노아가 언제 방주를 만들었지?” 비포 더 레인! 세상의 진리는 이와 다르지 않다. - 우석훈 해제 중에서.

 

“우리의 대학 커리큘럼에서부터 월가의 최첨단 분석기법까지 주류 경제학의 기본 가정들이 모두 틀렸다.” ‘복잡계에서의 예측모형에 관한 연구’로 응용수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은 시스템 생물학자 데이비드 오렐은, 경제학자들이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경제이론의 기초가 되는 근본적인 가정들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미지_경제학 혁명, 데이비드 오웰, 김원기, 행성B웨이브.jpg *경제학 혁명, 데이비드 오웰, 김원기, 행성:B웨이브

 

데이비드 오렐은 <경제학 혁명>에서 주류 경제이론의 배후에 있는 오류가 어디서부터 생겨났는지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설명하고, 반대되는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왜 그것이 죽지 않고 살아남았는지를 하나하나 증명하고 있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짚어본 10가지 경제학의 오류는, 경제는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 경제의 주체는 서로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개인들이라는 것, 경제적 위험은 통계를 이용해 쉽게 조절할 수 있다는 것, 경제는 안정적이며,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중립적이고, 공정하다는 것, 경제적 성장은 영원히 계속될 수 있고, 우리를 행복하게 하며, 항상 좋은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기존 신고전파 경제학이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그것이 뉴턴 역학에 입각한 기계론적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뉴턴표 경제학’이라고 불릴 정도로 뉴턴 역학의 체계를 차용하고 있다. 이는 균형을 정상 상태로 생각한다. 경제는 스스로 조절하며 마찰 없이 돌아가는 ‘자동제어장치’처럼 항상 균형 상태에 있으며, 외부 충격에 의해 균형에서 벗어나더라도 상쇄하는 힘의 작용에 의해 다시 균형으로 회귀한다. 이러한 세계에선 내생적인 불안정성이나 급격한 변화가 존재할 수 없다.

 

그렇지만 현실은 경제학이 그리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왔다. ‘다양성의 확대와 새로운 것의 끊임없는 출현’, ‘예상치 못한 변화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격변의 소용돌이’.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으로는 이러한 현실을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 이제는 ‘균형’이 아닌 변화를 ‘정상’ 상태로 하는 경제학이 필요하며, 현실의 경제는 불공정하고, 불안정하며, 지속 불가능한 것을 인정해야 할 때인 것이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주류 경제이론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이러한 생각들이 방법론적으로 어떻게 잘못되고 있는지를 낱낱이 밝힐 뿐만 아니라 그 대안도 내놓는다. 그가 제안하는 대안이란 21세기의 지식과 기술의 바탕 위에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새로운 경제학을 발명해보자는 것이다.

 

“시장만능?” … “옳지 않아~”

 

✔ 우리는 경제에 관한 완벽한 모형을 만들 수도 없고, 또 다른 금융 재난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우리는 거품 속에 살고 있으며, 이 부채를 해결할 실질적인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나는 예측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생각에 다음의 대형 위기는 돈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은행가나 수학자들에 의해서 촉발되는 그런 성질의 위기가 아니다. 그것은 보다 현실적인 어떤 것에서 관한 문제다. 우리는 우리를 제외한 이 행성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 신용 한도를 갖고 있고, 지금 거기엔 경고의 빨간불이 켜졌다. 곧 호출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경제성장으로 혹은 더 많은 노동으로도 이것을 피해갈 수 없다. 그렇다고 열쇠를 넘겨주고 물러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 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가계의 원칙, 즉 새로운 경제학을 필요로 한다.

 

‘주류 경제학이 전적으로 오류’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과학의 위대한 힘이란 자기 교정이다. 뉴턴의 운동법칙마저도 양자역학에 의해 수정됐듯이 지은이는 어떤 이론이 잘못됐다면 더 나은 것으로 교체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경제학을 재생시킬 새로운 접근법은 불확실성을 공공연하게 인정하고 있는 네트워크 이론, 복잡계, 심리학, 그리고 시스템 생물학 등 경제학 주류 커리큘럼을 벗어난 새로운 학문 패러다임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나 생명체나 환경 같은 대상들은 그 내부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하나의 ‘체계’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전체 체계의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지은이는 주류 경제학은 개인과 가계, 기업, 정부와 같은 행위자들이 서로 독립돼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가정하면서 단순한 방정식으로 이들의 움직임을 환원하려 하지만, 그러다 보면 군중행동과 같은 서로의 상호작용이 복합되어 나타나는 현상, 즉 창발적 현상에 대해선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되므로 ‘복잡계 과학’을 활용해 경제를 ‘네트워크로 연결된 행위자들의 체계’로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정책적인 함의도 갖는다. 지은이는 한 변전소의 과부하가 전 지역의 전력붕괴로 이어지지 않도록 전력망을 서로 독립된 영역으로 만드는 것처럼, 경제도 도미노처럼 연달아 붕괴하지 않도록 장벽을 만들어 전체 체계의 안정성을 높이되, 이렇게 안정성을 높이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으므로 피드백(되먹임)을 잘 설계해 불안정성이 극대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경제는 자동적으로 균형과 평형을 찾는다’는 잘못된 가정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의 안정성에 대한 그릇된 믿음은 경제의 ‘중용’에 대한 지나친 믿음으로도 이어진다. 지은이는 우선 파스칼의 삼각형이라는 예를 통해 안정된 체계의 특징으로 간주되는 정규분포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이는 대부분이 평균값 주변에 몰려 있고 그로부터 일탈하는 값은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일반적인 패턴을 말한다. 문제는 우리가 소득이건 지적 성취건 성장이건 간에 바람직한 체계는 정규분포의 원리에 맞게 구성되거나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지은이는 다시 한 번 똑같은 파스칼의 삼각형을 통해 아주 작은 변화가 어떻게 극도로 불평등한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설명해낸다. 무작위적인 투자와 부의 상속으로 만들어진 단순한 모형으로 몇 세대가 지나면 ‘20:80’을 지나 극소수가 모든 부를 소유하고 대부분이 빈곤에 허덕이는 패턴이 만들어짐을 증명한 것이다. 이는 현실적인 부의 분배와 일치하는 패턴이다. 현실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 혹은 불평등한 분배를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왜 이런 패턴이 나타나는 것인지, 그 특징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또 다른 잘못된 가정은 경제적 행위자들이 ‘합리적인 이성적 행위자’라는 것이다. 개개인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전체적으로는 그렇게 가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류 경제학의 중요한 토대인 ‘합리적 기대가설’은 말한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조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적인 숙고가 아닌 직관적으로 형성된 빠른 판단에 의존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결국 감정에 의해 움직이고 직관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현실의 행위자를 배제한 가설은 현실과 점점 더 유리된 모형만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지은이는 꼬집고 있다.

 

지은이는 이밖에도 경제학의 기본 가정뿐만 아니라 ‘이론의 전반적인 성격’까지도 잘못됐음을 짚어내고 있다. 객관적인 수학적 원리를 사랑하는 과학주의적 성향,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투자자를 선호하는 성향 등은 주류 경제학의 이론과 실천이 남성 중심적 사고와 관행에 크게 오염돼 있음을 의미한다며, 어쩌면 우리가 여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음’의 원리가 우리를 지배하는 경제학의 심각한 불구를 치유하는 데 중요한 영감이 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여성적인 원리를 내세운 몇 가지 운동들은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이는 여성들의 경제적 활동과 지위가 상승ㆍ확대됨에 따라 더 중요한 조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는 불공정하다

경제는 불안정하다

경제는 지속 불가능하다

경제학은 위조화폐다

 

✔ 경제와 금융 분야에서 동문들의 인맥, 제도화된 성차별, 여성의 과소대표가 문제이긴 하지만, 이것들은 그 자체로는 경제체계의 재균형을 방해하는 주된 장애물이 아니다. 진짜 장애물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주류 경제이론이다. 이것은 복잡성을 단순한 법칙으로, 인간의 동기를 차가운 계산으로 환원시키는 세계관이자 사고방식이다. 줄리 넬슨에 따르면 경제학은 ‘초연함, 수학적 추론, 형식성, 추상’이라는 남성적 방법론을 ‘연결성, 언어적 추론, 비형식성, 구체적인 세부사항’이라는 여성적 방법론보다 높이 평가한다. 경제학은 물리학처럼 불편부당하고 초연하며, 단단한 과학이 되려고 노력해왔지만 결국은 특정한 양성의 행동을 승인하고 축복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비선형성, 유동성, 복잡한 상호의존성, 권력의 비대칭성과 같은 문제를 외면하고 말았다.

 

주류 경제학과 그에 바탕을 둔 정책과 체계는 풍요롭고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행복한 경제를 약속한 것과는 달리, 심하게 불공정하며 비합리적으로 과대평가되고 실질적인 행복을 하락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그 명백한 결과를 지적하거나 이해하기 위해 복잡계 경제학이 필요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지은이는 그 해결과 대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은 ‘권력’과 ‘미래’를 분석에 포함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불공정에 대해 예민하지 못하고 성장은 영원하다고 주장하지만, 복잡계 경제학은 이 불균등한 힘의 차이와 지속가능한 경제를 모형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류 경제이론이 무려 150년 동안 지속됐다는 것은 일종의 ‘개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10년만 더 지속된다면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 역사의 어느 시기에는 올바른 이야기였을 수 있고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던 그런 이야기였는지는 모르지만, 주류 경제학은 이제 그 유용성이 한계에 달했다.

 

지은이는 과학이 전통적으로 좀 더 합리적인 예측을 내놓는 이론이 기존의 이론을 대치함으로써 진화해왔다고 보고, 주류 경제학이 주장하는 ‘합리적인 경제인’이라는 관념을 내다버리고 환경의 오염이나 행복지수, 생태계를 경제 체계 안에 포함시키는 것과 같은 새로운 접근법으로 경제학의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고전주의 경제이론을 대체할 그 혁명의 방향은 아직 분명하진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 혁명의 심장부에 ‘인간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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