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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안전의 종합보험 '복지'사회 2012. 5. 2. 22:50대한민국은 지금 ‘복지 논쟁’ 중이다. 한편에서는 ‘무상급식’ ‘무상교육’ ‘반값등록금’ ‘부자감세’ 등을 이야기하고, 다른 한편에선 ‘선택적 복지’ ‘선성장 후복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토머스 게이건, 한상연, 부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는 이 두 개의 상반된 세계를 대표하는 미국과 유럽을 ‘실생활’과 ‘삶’으로 생생하게 비교하고 있다. 제도나 시스템, 이를 뒷받침할 세원의 문제 등으로 들끓고 있는 상화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복지 모델’은 과연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가늠자와 같은 책이다.
☑ 나, 노동 변호사 토머스 게이건. 미국 시카고에서 로펌을 운영하고 있지. 우연한 기회에 독일을 방문하게 됐어. 사실 독일이라면 누구나 다 ‘재미없는’ 곳이라고 생각하잖아. 그런데 막상 가 보니 거기야말로 ‘천국’이더라고. 1년에 6주의 휴가가 보장되고, 아이를 낳으면 자녀 수당에 보육비까지 국가에서 지원해 줘. 교육? 대학까지 당연히 무료. 해고되면 실업수당, 정년퇴직하면 연금이 나와. 먹고살 걱정이 없으니 사람들 표정에서부터 여유가 넘칠 수밖에. 그럼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냐고? 천만에! 독일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제조업 국가야. 생각해 봐. 미국에서는 나 같은 중산층도 일자리를 잃으면 아무 대책이 없어. 그러니 잘리지 않으려고 휴일에도 죽어라 일할 수밖에. 자, 우리가 어디를 모델로 삼아야 할지 이제 답이 너무나 분명하지 않아?
책에 따르면, 세계 최강의 선진국으로 대접받는 미국이 사실은 사회 안전망이 허술하기 그지없는 무한 경쟁 사회나 다름이 없다. 설사 중산층이라도 일자리를 잃는 순간이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1년에 6주의 휴가가 보장되고 국가에서 보육과 교육을 모두 지원하는 등 사회 안전망이 튼튼해서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가는 독일인의 상황과는 너무나도 대립되는 모습이다.
'무한경쟁' 미국 vs '여유만만' 유럽
☑ 『뉴욕 타임스』가 주장하는 대로 미국인은 GDP의 41퍼센트를 국가에 내고, 유럽인은 48퍼센트를 낸다고 하자. 미국인은 유럽인이 받는 것의 41퍼센트 혹은 48퍼센트라도 국가로부터 받고 있는가? 하지만 미국인은 사회 안전망에 별반 관심이 없다. 바버라나 이사벨 중 누가 더 행복한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 그럴까? 경쟁에서 이기는 데에만 온 신경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나도 미국이 경쟁에서 이겼으면 좋겠다. 미국의 경쟁력이 더 강해지기 바란다. 나라고 해서 왜 미국이 일등 국가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겠는가? 그러나 경쟁력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나는 유럽식 모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노동자가 높은 임금을 받고 노동조합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나라라 해도 세계 경제 무대에서 얼마든지 막강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아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노동자가 높은 임금을 받고 노동조합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나라만이 세계 무대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여기, 시카고에서 중간 관리자로 일하는 바버라가 있다. 그는 미국에서 상위 10퍼센트 안에 드는 중산층이다. 바버라의 집은 교외에 있어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는데 늘 교통 체증을 감수해야 한다. 교외에 사는 이유는 아이 교육 때문으로, 도심에 있는 학교의 시스템이 좋지 않다는 판단 아래, 괜찮은 학교를 찾아 멀리 나가게 된 것이다.
바바라는 겨우 출근하고 나면 밤까지 정신없이 일에 매달려야 한다. 다들 야근을 자청하는 분위기라서 칼퇴근을 하는 건 ‘저를 잘라 주세요’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집 사느라 빌린 대출금 갚고, 애들을 사립학교에 보내려면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상황이다.
늦은 밤 10시, 바바라는 교통 체증을 뚫고 가까스로 퇴근하면 온몸이 녹초가 돼 멍하니 TV 앞에 있다가 쓰러져 잠이 든다. 주말마다 사무실에 나가 일해야 할 형편이니 여가 생활은 꿈도 못꿀 일이다.
이제 유럽에 사는 이사벨. 그 역시 중간 관리자로 일하는 중산층이다. 이사벨은 버스와 전철을 이용하거나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독일은 대중교통과 함께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춰 있어 승용차를 타지 않을 때가 적지 않다. 회사에서는 일이 끝나면 바로 퇴근하면서 보육원에 들러 아이들을 데려온다. 보육비는 전부 국가에서 지원받는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고친 뒤 아이들을 데리고 친구를 만나러 간다.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교외에 나간다. 매년 6주의 휴가를 즐기는데 지난해에는 스리랑카에 다녀왔다. 남편과의 의논을 통해 다음해에는 아이를 하나 더 낳을까 생각 중에 있다.
노동자 권리가 강한 나라 '잘 사는 나라'
☑ “복지제도를 제대로 관리해 나가려면 노동조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라는 기민당 지지자 K의 말이 케네디 스쿨 졸업생 같은 민주당 정치인 입에서 튀어나올 날이 과연 올까? 사민당원뿐 아니라 기민당원조차 ‘평평한 세계’에서는 특히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게 사회의 시스템이 엉망이 되는 것을 막는 가장 쉬운 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아무리 힘이 약하다 해도 생산성 증가분을 여가 확대와 스트레스 감소의 관점에서 노동자에게 분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반드시 소득분배의 관점만 고집하라는 법은 없다. 노동조합이 없다면 중산층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릴 전략을 수립할 길이 묘연해지고 만다. 사민당은 바로 이 점을 중시하지만 미국의 민주당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나는 불평등을 없애자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부자가 중산층보다 더 오래 일하는 데다 생산성까지 더 높다면 소득이 더 많은 게 당연하다. 다만 그 과정을 제대로 관리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독일은 임직원 1000명 이상 기업에는 직장평의회를 설치하게 돼 있다. 노동자가 투표를 통해 직장평의회 위원을 뽑으면 평의회 위원은 출퇴근 시간, 휴가 일수, 정리 해고 등 노동자와 관련된 중요 사항을 회사와 협의해서 결정한다.
임직원 2000명 이상 대기업에서는 이사회의 절반을 노동자 이사로 채워야 한다. 이들은 경영자 쪽 주주와 함께 회사의 중대사를 결정한다. 경영의 문제에 관해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고 어느 정도 반영할 수 있다. 이처럼 법적으로 권리가 보장된 덕분에 노동자가 고용 불안을 느끼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독일 가운데 어느 곳이 더 살기 좋을까. 미국과 영국 사람들은 집값이 얼마나 오를지, 모기지론이 어떤지, 집을 어떻게 하면 싸게 살 수 있는지 따위에만 매달려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겉보기에 독일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훨씬 잘 사는 것 같지만 인플레이션 때문에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모든 것을 돈에만 쏟아 붓는 이런 곳에서 안정적인 삶이 가능할까.
책은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여유롭게 살게 만드는 것, 그게 진정한 복지이고, 살 만한 세상임을 흥미로운 경험담을 통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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