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견을 버리면 가능성이 보인다사회 2012. 5. 30. 13:06
[누구나 게임을 한다]
한때 12시가 되면 가상 세계에 철문이 굳게 닫히는 이른바, ‘신데렐라 법’이라고 불리는 ‘셧다운제’가 실시돼 논란이 된 적이 있다. 16세 미만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이 법은 야간 게임을 불허하는 일종의 비상계엄령으로 인터넷 게임중독을 예방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취지는 본질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실효성 면에 대한 찬반 논란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쉽게 수그러들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누구나 게임을 한다, 제인 맥고니걸, 김고명, RHK
게임중독으로 인한 폭행, 사기, 살인 등 강력범죄가 늘어나면서 그때마다 꼬리표처럼 우리에게 ‘게임의 중독성과 폭력성, 이대로 안전한가?’와 같은 질문이 던져진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동일한 게임을 하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잠재적 게임중독자로 귀결해버릴 뿐,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가장 선행돼야 할 질문은 바로 ‘왜 이들이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달콤한 가상 세계의 늪에 빠져드는 것일까’라고 할 수 있으며, 제인 맥고니걸의 <누구나 게임을 한다> 역시 이런 기본적인 물음으로 출발한다. 그의 답은 아주 도발적이고 충격적이다. 게임이 아닌 현실이 망가져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보는 게임 전문가이자, 게임 디자이너인 지은이는 이 책에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가상 세계로 ‘대이주’를 감행하는 까닭은 게임이 인간의 진정한 욕구를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 게임의 진정한 힘을 이해한다면 완전히 망가져버린 현실 세계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게임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수많은 편견과 오해를 불식시킨다. 긍정심리학, 인지과학, 사회학 등의 풍부한 연구 결과를 통해 게임을 설명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행복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게임의 본질적인 속성에 접근한다. 게임 디자이너들이 이 방법을 통해 디자인한 가상 세계의, 그 놀라운 영향력에 대해 다양한 게임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세계문제의 해결사로 거듭나고 있다
오전 9시, 영어 시간. 지금 라이는 성적보다 레벨 업에 온 정신이 쏠려있다. 이야기하기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 벌써 5점을 받았다. 이제 7점만 더 받으면 이야기의 ‘달인’ 반열에 오를 수 있다.
라이는 오늘 작문 미션도 완수해 점수를 더할 생각이다. 반에서 처음으로 이야기의 달인이 되지 못할 수는 있어도 달인이 될 기회를 영영 놓칠 염려는 없다. 퀘스트를 더 수행하면 차근차근 최고 레벨에 올라 A 성적에 상응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레벨 업은 정규 곡선에 따라 A에서 F로 매기는 기존 성적 체계보다 훨씬 평등한 성취모형이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레벨 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단 한 번에 성적이 결정되는 기존 체계를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다. 이 같은 성적 체계는 부정적 스트레스가 아닌 긍정적 스트레스를 일으켜 학생이 수행평가가 아니라 학습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
이 이야기는 실제 뉴욕 시에 존재하는 최초의 게임 기반 학교인 ‘퀘스트 투 런’에 다니는 학생들의 일상적인 학교생활 모습이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게임에서 한발 앞선 '대체 현실 게임(ARG, Alternate Reality Game)'의 일환으로, 대체 현실 게임의 게임 디자인을 고스란히 반영해 탄생한 학교다.
대체 현실 게임은 말 그대로 ‘현실’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굉장히 생산적인 게임이다. 게임 플레이 공간 역시 가상공간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직접 이뤄지므로 현실 생활 개선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게임의 목표도 개인의 아주 구체적인 삶의 변화부터, 공교육 개선, 죽음에 대한 인식 변화 등 공동체나 사회 전체의 변화 촉구 등 다양하다.
‘퀘스트 투 런’ 역시 공교육 개선이라는 아주 담대한 목표로 디자인 됐는데,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에 몰입하듯 학교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과 첨단 기기를 사용하며 자란 디지털 세대들은 정교한 게임과 가상 세계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집중한다. 게임에서 느끼는 의욕이나, 피드백, 강력한 동기들이 약한 환경에서는 이들의 능력을 끌어내기가 어렵다.
이에 반해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고수하는 현행 학교 교육은 이런 아이들에게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를 느끼게 할 뿐이다. 이 격차를 줄이고자 2년 동안 교육가와 게임 개발 전문가가 수업 과정과 전략을 고심해 ‘게임 학교’를 설계했다. 단순히 게임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전체가 놀이터, 그 자체가 게임인 곳을 디자인하게 된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고도의 집중을 이끌어내는 멀티 플레이 게임의 핵심 기제와 참여 전략을 접목시켜 모든 수업, 활동, 과제, 교수 및 평가 방법을 디자인한 것이다. 비밀 미션, 보스 레벨, 학습 전문 능력 거래소, 비밀 조력자, 등수를 대신하는 레벨제 등 ‘퀘스트 투 런’은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교육 환경으로 거듭났다.
"모든 인류에 게임을 허하라!"
미국인의 1억7400만 명 이상이 게이머이고, 미국 젊은이는 스물한 살 때까지 평균 1만 시간을 게임으로 보낸다.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전문가로 만드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이미 젊은이들이 상회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그저 게임을 즐기는 수준을 넘어선, ‘전문 플레이어들’이다. 지은이의 연구에서 드러나는 게이머의 모습은 음침한 방에서 혼자 게임에 몰두하는 이른바 ‘오타쿠’의 모습이 아니다. 위협적인 장애물을 극복하고자 서로 협력하는, 문제 해결과 협업의 전문가다. 공익과 생산성을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는 게임과 게이머의 이런 요소들을 통해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게임 장르가 급성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비범한 전문가들의 능력이 가상 세계에서 그저 단순한 오락거리에만 낭비되고 있다. 이에 지은이는 이제 그 힘과 능력을 의미 있는, 생산적인 곳에 써야할 때가 왔다고 지적한다.
게임은 각박한 현실 세계에서 쉬이 누릴 수 없는 적절한 보상이나, 강력한 동기, 장엄한 승리와 같은 긍정적 요소들을 시종일관 선사한다. 지은이는 이를 통해 현실을 개선하는 ‘힘’을 발견한다. 게임의 힘과 또 이를 통한 미래의 탐구를 세세히 관망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게임 디자인의 교훈을 적용해 현실 세계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를 밝히고 있다.
새로운 대체 현실 게임은 이미 자원 고갈, 식량 부족 같은 전 세계적 문제와 씨름하며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다. 게이머와 게이머가 아닌 사람 모두를 위한 이 책은 미래는 게임을 이해하고 디자인하고 플레이할 줄 아는 사람의 몫임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떻게 변할까?' (0) 2012.06.12 가공된 신화 (0) 2012.06.11 정의롭고 똑똑해진 99%의 무기 (1) 2012.05.26 그들의 '꼼수'를 공개합니다 (1) 2012.05.24 뉴스, 감성을 입다 (0) 2012.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