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들먹이며 직원을 마구 자르더니, 주가 떨어져도 자기 전별금은 챙기는 알뜰한 대기업 CEO, “경제력만큼 치료받아야 한다”며 가난한 아이들마저 내치는 공평한 병원과 의사, 보험료는 점점 더 올리고 보상은 점점 더 줄이는 이상한 보험사, 선거 때만 되면 불법체류, 동성애, 낙태 같은 똑같은 레퍼토리 들고 나와 판 뒤집는 한결같은 보수주의자….

 

* 오! 당신들의 나라, 바버라 에런라이크, 전미영, 부키

에런라이크는 이번에 내놓은 <오! 당신들의 나라>에서 사회정의를 무너뜨리고 부를 독식한 이들 1%의 ‘꼼수’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이들은 약자를 짓밟고, 부를 독식하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무너뜨린 1% 초부유층이다.

 

가정이 파괴되는 것은 동성애자 탓이요, 실업자가 느는 것은 불법 이민자 탓이요, 당신이 가난하고 아프고 불행한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은 탓이다. 지은이는 모두 ‘네 탓’이라고 말하는 1%의 행태에 대해 날카로운 독설을 내뿜는다.

 

그들의 속사정은 남다르다

 

지난 2007년 1월 주가 하락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홈디포의 CEO 로버트 나델리는 퇴직금으로 2억1000만 달러를 받았다. 실패한 CEO가 받기에는 너무 많은 금액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혹여 '속사정'이 있지는 않았을까? 나델리가 열 명쯤 되는 전처들에게 부양비를 대거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돈은 이사회가 주는 ‘팁’이었을 수도 있다. 단 2~3달러가 아니라 ‘통 큰 분들’답게 300퍼센트를 선사한 것이다.

 

혹은 거대 기업들은 ‘반(反)자본주의’라는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를 몰래 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적을 기초로 임금을 준다는 자본주의의 핵심 규칙을 어기는 것이다.

 

홈디포만이 아니다. 제약 회사 파이저는 실패한 경영자에게 2억 달러에 달하는 전별 선물을 전했고, 증권사 메릴린치는 모기지 관련 부채 840만 달러를 손실 처리한 뒤 CEO 스탠 오닐에게 총 1억6150만 달러의 은퇴 혜택을 제공했다.

 

가장 큰 ‘적’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CEO들이 저임금으로 노동자의 숨통을 죄는 동안 금융 산업은 가난한 사람들을 유혹했다. 줄어든 임금을 대출이 대신했다. 그러나 애초부터 갚기 어려운 사기성 계약들이었다. 위기에 몰린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해결책을 택했다. 수만 달러에 달하는 등록금을 감당 못한 대학생들도 학자금 대출의 노예로 전락했다.

 

하지만 빚을 갚는 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대학 졸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라고는 대걸레와 쟁반, 요강과 현금 등록기를 다루는 저임금 노동뿐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성장하는 직업군 가운데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이 필요한 직업이라곤 20퍼센트인 다섯 개에 불과하다.

 

특히 미국의 중산층과 빈민층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인 것은 바로 의료보험 산업이다. 2007년 미국인이 의료보험료로 지출한 돈은 7760억 달러에 달하지만, 보험 미가입자가 4500만 명이 넘는다. 매년 2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의료비로 인해 파산하고, 1만8000명이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다. 이는 9.11 당시 사망한 사람들보다 여섯 배나 많은 수치다.

 

의료 산업의 또 다른 주체인 병원과 의사 역시 보험회사 못지않게 탐욕을 추구하는 현실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다. 그러나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민간 의료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강직한’ 모습을 보이며 아이들에게 의료보장을 늘리는 법안을 당차게 거부했다.

 

지은이의 시선은 빈부 격차 고발에만 머물지 않는다. ‘내부의 적’으로 변질된 의료 제도, 사회적 불만을 억누르는 기제로 쓰이는 성과 가족제도 등에 대한 각종 보수 담론, 노동에 지친 가난한 이들을 어르는 종교 주술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에 걸쳐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들이댄다.


글 한주연 <함께하는 우리들의 세상이야기 ⓒ지데일리 gdaily4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