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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에게 건네는 불의 은밀한 충고
    문화 2012. 10. 25. 11:41

    [호모 이그니스, 불을 찾아서]


    <지데일리> “우리는 불의 양면성, 즉 불이 문화인 동시에 자연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단지 불을 제어하고 인간의 편리를 위해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 본성을 알고 그것을 더 잘 살릴 수 있게 된다면, 우리가 진정한 의미에서 더 잘 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매일 자동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지만, 이때 엔진을 점화해 가솔린을 연소시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처럼 불이 우리 주위를 가득 채우게 되면서, 오히려 우리는 불의 소중함을 잊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불의 발견은 우리 삶을 크게 변화시킨 혁명적인 일이라고 회자된다. 그만큼 불은 우리에게 아주 고마운 존재이지만, 반대로 매우 두려운 대상이라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불은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처럼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면서도, 잠시라도 방심하면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는 두려움의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호모 이그니스 불을 찾아서, 오쓰카 노부카즈, 송태욱, 사계절


    불의 첫 번째 선물 '사회'


    불의 관리, 즉 불의 지배는 인간 진화의 과정과 같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불의 지배야말로 인간의 진화를 초래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하우츠블룸은 ‘불을 지배하는 능력은 특수한 사회적, 정신적, 육체적 특성의 동시 발전에 따라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원시인들이 불의 사용법을 발견한 이래, 불은 문명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이 돼 왔다. 현대 문명의 시발점이 된 산업혁명도 불을 이용해 힘을 얻는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시작됐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불에 대한 모든 것을 밝히고 있는 <호모 이그니스, 불을 찾아서>에 따르면, 최초로 불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류는 20~35만 년 전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이다. 그들의 주거지에는 화로의 흔적이나 불탄 재가 남아 있다. 불의 사용은 인류의 생활에는 물론, 진화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여기서 불을 뜻하는 라틴어 ‘이그니스(Ignis)’를 이용해 만든 단어인 ‘호모 이그니스’는 인류가 불과 함께 진화해 왔고, 불이 인류 문화의 원천이 됐음을 상징한다.


    인류는 불을 사용해 요리를 하게 됨으로써 어금니의 표면적이 감소하고 위장이 줄어들고 몸에 공급되는 에너지의 양이 증가하게 된다. 날 음식보다 익힌 음식이 에너지 섭취효율이 높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또한 생활터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불을 피워 동물의 습격을 막을 수 있게 되면서 나무 위의 보금자리에서 내려와 지상에서 생활하게 됐다. 안전함과 따뜻함을 주는 불을 중심으로 작은 규모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공동체의 소통이나 결속이 강화됐다. 토지의 개간이나 다른 동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불을 사용하는 것은, 사회적ㆍ문화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를 이용해 자연환경을 정복하는 일이었다.


    이처럼 불은 인류가 남긴 유산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일본 신화 속 불의 신인 가구쓰치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나 오세아니아 원주민들 사이에 전해져 오는 불의 기원에 대한 신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건네준 의미, 일본 각 지역에서 전해지는 불과 관련된 풍속 등은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로 끌어드린다.


    또한 이 책은 고고학과 인류학의 성과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불의 의미를 다각도로 바라보게 한다. 고대인들이 남긴 화로의 흔적을 추적해 불을 이용하는 기술이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밝혀내고 있으며, 화로나 부뚜막과 같은 불을 다루는 장소가 전통적으로 이계와 연결된 공간이었음을 밝히는 기록을 분석해 불의 종교적 의미를 설명하기도 한다.


    불의 두 번째 선물 ‘문화’


    불에 대한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함께 경외심을 함께 가지고 있었던 고대인과 달리, 현대인들에게 불은 더 이상 신비로운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현대인들은 더 이상 불에게 경외심을 느끼거나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불을 잊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불은 인간이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 다양한 충동의 상징이고, 인간 존재의 한없는 허무를 살짝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기 그 이유다. 동시에 인간의 정신과 그 고귀함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이 불을 잊는다는 것은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상상력의 원천을 잃게 됨을 의미하기도 하고, 불이 주는 안락함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오래된 공동체 역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책은 현대인에게 불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떠올려 볼 것을 주문한다.


    특히 불은 고대부터 인간에게 종교적 영성을 깨우쳐 주는 역할을 했다. 가장 오래된 종교 중 하나인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세상의 종말이 닥치면 불이 모든 것을 정화하고 세상이 재건된다고 말한다.


    불이 부정한 것을 정화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이러한 믿음은 일본의 민간 신앙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본의 신사에서는 정월에 부싯돌로 새로운 불을 일으켜 신에게 바친다. 기독교에서 불은 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매개로 나타난다. 야훼가 모세의 앞에 불의 형태로 현신해 믿음을 준 것처럼 파스칼 또한 신비한 불에 대한 체험을 하고 난 후 신에 대한 믿음이 충만해져 <팡세>와 <개인적 수기>를 남겼다.


    이 체험은 파스칼의 사상을 종교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고대부터 종교적 환희를 주기 위해 예술을 이용해 왔다. 17세기 유럽에서는 불빛이 주는 효과를 이용해 신의 축복을 표현하고자 했다.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의 법열>과 카라바조의 <성마테오의 소명>은 숨겨진 광원에서 나오는 강렬한 빛을 이용해 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자 한 대표적인 예술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근대의 화가들은 빛을 이용해 인간의 타오르는 정념을 표현하거나 생명의 힘을 담기도 했다.


    불을 잊지 말라!


    그런데 21세기 초인 현재 우리는 불에서 멀어지고 불을 잊고 있다.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불은 휴일의 캠프파이어나 바비큐 또는 각지에서 개최되는 불 축제 같은 비 일상적인 기회에나 체험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드물게 보는 화재도 마찬가지다. 일상적인 장면에서는 끽연가의 라이터 불이나 성냥불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조리용 기구나 난방용 기구는 우리에게 불을 직접 보여 주지 않게 되었다. 가스풍로를 조리용 히터가 대체한 것이 그것이다. (…) 새삼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만약 우리가 심각한 원전 사고 때 말고는 불을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면, 그건 정말 불행한 일이라고. 불은 인간이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 다양한 충동의 양상이고, 인간 존재의 한없는 허무를 살짝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인간의 정신과 그 고귀함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을 소중히 함으로써 가족을, 그리고 사회를 형성해 왔다.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는 오늘날, 불은 우리에게 은밀히 중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종교적 성찰을 가능하게 하고, 문화를 발전시킨 불은 근대의 시작과 함께 점차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한다.


    불빛은 근대의 상징이었다. 조금이라도 어둠을 줄이고 조명을 많이 하는 것이 근대화의 목표였다. 가정마다 전등이 보급되고 도시의 밤거리는 네온사인과 가로등으로 환하게 밝아졌다.


    그러나 불을 이용하려는 현대인의 끝없는 욕심은 결국 원자로라는 괴물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원자로는 막대한 에너지를 인류에게 가져다준 반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와 같은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끔찍한 재앙을 몰고 오기도 했다. 과연 인간은 ‘핵의 불’을 제대로 제어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민속학, 고고학, 인류학, 신화, 역사, 예술 등 동양과 서양의 지적 성과를 넘나들면서, 인간이 불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 불이 인류 문화 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글 손정우 <함께하는 우리들의 세상이야기 ⓒ지데일리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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