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사람들에게]


“이제 총대를 넘겨받으라. 분노하라!”


레지스탕스 노투사 스테판 에셀. 


스테판 에셀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맞섰던 전직 레지스탕스 투사이자, 외교관을 지낸 93세 노인이다. 전체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싸운 투사다. 


나아가 전 지구적 관점에서 인류가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을 제시해온 전 지구인의 스승이라고 회자된다.


그의 저서인 <분노라하>는 지난 2010년 가을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래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프랑스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분노 신드롬’을 일으키며 지성인의 경종을 울렸다.


그가 이 책에서 던진 화두는 단연 ‘분노’였다. 그는 전후 프랑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레지스탕스 정신이 반세기만에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프랑스가 처한 작금의 현실에 ‘분노하라’고 일갈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사회 양극화, 외국 이민자에 대한 차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금권 등에 저항할 것을 주문했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며, 인권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찾아가 기꺼이 힘을 보태라는 그의 뜨거운 호소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 분노한 사람들에게, 스테판 에셀, 유영미, 뜨인돌


이 책의 출발은 나치에 맞섰던 레지스탕스의 성지(聖地) 글리에르 고원이었다. 에셀은 2009년 ‘레지스탕스의 발언’ 연례 모임에서 “젊은이들에게 ‘분노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의 즉흥 연설로 대중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


그의 연설과 책이 프랑스 사회에 던진 충격은 실로 대단했으며, 현지 언론들은 그와 이 책에 대한 기사를 연일 쏟아냈다. 


그러나 에셀은 이듬해 말 프랑스와 독일에서 출간한 <분노-나의 결산>이라는 책에서 전작의 한계를 스스로 지적했다. “분노는 단지 시작일 뿐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다르게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관점, 새로운 의지가 필요하다”는 그의 설명이다.


<분노한 사람들에게>는 그 연장선상에 놓인 저작이다. 에셀은 이 책에서 ‘분노한 뒤엔 어떻게 할 것인가?’ ‘분노가 필요조건이라면 충분조건은 무엇인가?’ ‘무엇이 인류의 새로운 전진을 가능케 하는가?’와 같은 물음에 대해 답변한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인류는 일찍이 지금처럼 위험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더불어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바로 ‘1%의 독식’으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 지속불가능을 향해 치닫는 환경파괴, 서구사회의 그릇된 대응에서 비롯된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이 그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에 대해 날선 비판을 드러낸다.


현재 전 세계는 아무런 대안 없이, 신자유주의 자본만이 판을 치는 듯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아주 강하고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기에 이제 더 나빠질 일밖에 없어 보입니다.

신자유주의 경제가 종식되고, 존 M. 케인즈가 밀턴 프리드먼의 대항마로 다시금 부상할 날이 멀지 않았어요! 우리는 이 일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가 여기서 말하는 ‘노력’은 전문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브뤼셀 회담을 비롯한 각국 정부들의 노력 이상으로 그가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건 다름 아닌 ‘99%의 저항’이다.

 

그는 월가에서 시작돼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간 ‘점령시위(Occupy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다. 취리히 청중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파라데플라츠(스위스 금융중심가) 점령시위를 맨 먼저 언급하고 있을 정도다. 


벤 알리(튀니지)와 무바라크(이집트)를 몰아냈던 ‘아랍의 봄’ 역시 99%의 저항에 포함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무바라크 정권 당시 IMF가 권유했던 구조조정정책과 공공서비스 매각 등은 명백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이기 때문이다.

 

“아랍의 봄이 혹시 국제사회의 또 다른 겨울로 이어지지는 않을까?”라는 물음에 대해, 에셀은 “우리에게도 헌법과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선언했던 튀니지 이슬람 정당 ‘엔나흐다’를 언급하며, 아랍의 봄이 강경한 이슬람주의로 흐르지 않고 이슬람 민주주의로 흐를 가능성을 내비친다. ‘평화적 봉기’를 옹호하며 그 궁극은 민주주의임을 강조하는 공화주의자의 면모가 풍기는 대목이다.

 

시공을 초월한 '공감'이 필요한 때


분노와 참여는 내게 아주 중요합니다. 인간은 분노할 줄 알아야 비로소 인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분노하지 않는 한 완전한 인간이 아니에요. 그러나 분노와 참여는 시작일 뿐입니다. 단지 시작일 따름이지요. 

세계를 변화시키고, 공감하십시오. 진정한 글로벌 사회의 시민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분노합니까? 여러분이 지금까지 여러분의 삶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테판 에셀은 인류 앞에 놓인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출발점으로 국적과 계급, 인종과 종교를 뛰어넘는 ‘공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공감이란 만족하지 않는 감정이고, 존엄을 파괴하는 힘에 대한 반항이며, 고통 받는 타인들을 돕고자 하는 감정이다.

 

그는 그러면서 공감에 기초한 ‘글로벌 연대’만이 세상을 바꿀 유일한 힘이라고 단언한다.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의 행동가들이 월가 점령시위대에 보낸 ‘연대 서한’이 그 대표적인 방식이다. 


지구 전역에 흩어져 사는 한 세대 전체는 기존의 질서 앞에서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미래가 없다고 느끼면서 성장해 왔습니다.

인류는 공감이 그리 많이 필요치 않았던 옛 세계와 공감 없이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 새로운 세계 사이의 문턱에 살고 있어요.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 이것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우리의 사회참여를 진전시켜 줄 것입니다.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가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강조하는 점에서만 나는 낙천주의자입니다… 우리 앞에 많은 위험들이 존재합니다. 나는 이런 위험들이 쉽게 극복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낙천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극복하기 어렵기에 젊은이와 노인 모두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할 만큼은 낙천적이지요. 나의 낙천주의는 내게 말합니다. 우리 안에 잠재력이 있고, 우리가 가진 모든 가능성들이 아직 고갈되지 않았다고.


이 책에서 드러나는 스테판 에셀의 모습은 다양하다. 그리고 바로 그 다양성이 그의 진면목이다. 목숨을 건 레지스탕스 활동가로, 좌파 지식인으로, 유엔인권선언 작성자로, 외교관으로 평생을 ‘세상 바꾸기’의 최일선에서 살아 온 그에게 특정 이데올로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국내 출간된 책에는 에셀이 친필 서명과 함께 보내 온 서문이 실려 있다. 그는 ‘아직은 악(惡)과 고통의 시대, 공감과 참여로 세상을 바꾸십시오!’라는 제목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지구민들은 자신의 행동을 책임져야 합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미래를 좌우하는 투표에서 말입니다. 한국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힘을 얻기 바랍니다.”


진보와 개혁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2012년 가을과 겨울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글 김세헌 <함께하는 우리들의 세상이야기 ⓒ지데일리 gdaily4u@gmail.com>


Posted by have a Good story, gdaily 지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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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강여호 2012.11.13 2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찌보면 20대의 현실은 정치가 해결해야 할 우리사회 가장 어두운 부분 가운데 하나인데
    정작 20대의 정치 무관심은 정치권의 무사안일을 부추기는 게 또한 현실입니다.
    참여하면 바뀐다는 게 단순히 정치구호만은 아닐 겁니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20대 파워를 보여주길 기대해 봅니다.